[르포] 1년 지났지만…'7평 컨테이너' 생활 산불 이재민 4000명 육박

김정석, 한은화 2026. 3. 1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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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한 야산이 산불 피해로 고사한 나무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한 야산은 피해목 제거사업으로 '흙산'으로 변한 모습이다. 김정석 기자

지난 16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명진리. 사철나무가 뒤덮었어야 할 산은 온통 검게 그을려 있었다. 이파리 하나 없이 말라 죽은 나무들이 묘비처럼 산등성이마다 빼곡히 서 있었다. 일부 산은 불에 탄 고사목을 모두 베어내 누런 흙산으로 변해 있었다.

이날 경북 영천에서 안동을 찾은 김용덕(58)씨는 골프를 치러 남안동CC를 향해 가다 깜짝 놀랐다고 한다. 김씨는 “오랜만에 왔는데 골프장 주변 나무들이 다 말라 죽어 있어 충격을 받았다”며 “산불이 꺼진 지 1년이 지났는데 흔적이 사방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남안동CC로 향하는 길가 주변의 나무들이 산불 피해로 말라 죽어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 16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에서 산불 피해 고사목 제거 작업이 한창이다. 김정석 기자


지난해 의성에서 시작해 안동, 영양, 청송, 영덕 등 경북 5개 시·군을 덮쳤던 ‘괴물 산불’은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남겼다. 오는 25일이면 산불 발생 1주년을 맞는다. 봄은 다시 찾아왔지만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에 멈춰 있다. 시선이 닿는 산마다 검게 그을린 고사목이 숲을 이루고 있고, 아직 귀가하지 못한 이재민도 4000명에 육박한다.

지난해 3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진 괴물 산불은 내륙인 의성부터 동해안 영덕까지 불이 번지며 건국 이래 최대 규모 피해를 냈다. 17일 행정안전부와 경북도에 따르면 산불 피해면적은 축구장 약 14만개 면적과 맞먹는 9만9417㏊로 집계됐다. 의성의 피해가 2만8853㏊로 가장 컸고 안동 2만6702㏊, 청송 2만798㏊, 영덕 1만6208㏊, 영양 6856㏊로 뒤를 이었다.

지난 16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원리 산불 이재민 임시조립주택 주거단지 모습. 김정석 기자


인명 피해도 컸다. 사망자 27명을 비롯한 183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은 3358가구 5545명에 달했다. 주택 3819동, 농지 2003㏊, 농기계 1만7265대, 문화유산 31곳 등 재산 피해가 이어졌고, 총 피해액은 1조505억1800만원으로 집계됐다. 복구 비용은 1조8310억7800만원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내년 1월까지 추가 피해 조사를 진행 중인 만큼 피해액과 복구 비용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산불 이재민 가운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귀가하지 못한 인원은 지난 2월 말 기준 3823명이다. 임시조립주택을 제공받은 4354명 중 주택 신축·매입·임차 등을 통해 퇴거한 인원은 531명으로 약 12%에 그친다. 다수가 고령층인 데다 주택 마련 여력이 부족해 7평(24㎡) 규모 임시주택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명진2리 산불 이재민 임시조립주택 주거단지 모습. 김정석 기자

정부는 전소 주택에 1억~1억2000만원, 반파 주택에 5000만~6200만원을 지원했지만, 최근 급등한 공사비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안동시 일직면 명진2리 임시조립주택 단지를 찾아 이재민들을 만났다. 이곳에는 총 19동의 임시주택이 설치돼 있다. 이호운(65) 이장과 주민들은 주택 신축 비용 부담, 부지 확보 문제, 실거주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 보상에서 제외되는 문제 등을 호소했다.

주민 이수룡(91)씨는 “인근 산의 나무가 모두 불에 타버려서 비가 많이 오면 토사가 흘러내린다”며 “하루빨리 축대 보강 공사를 서둘러 달라”고 말했다. 한 70대 여성은 “지난 설 연휴에 자식들이 온다고 하기에 ‘집이 너무 좁으니 오지 말라’고 했다”며 “정부에서 주택을 지원해준 것을 고맙지만 한 가족이 편히 눕기도 힘들 정도로 좁아 불편하다”고 했다.

지난 16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명진2리 산불 이재민 임시조립주택 주거단지 내 한 주택 내부 모습. 김정석 기자

산림 복구도 더디다. 장마철 산사태 예방을 위한 복구 사업은 지난 1월 기준 64%에 머물고 있다. 위험목 제거 사업 역시 70% 수준이다. 이날 안동 곳곳에서는 고사목 벌목 작업이 한창이었다. 잘게 쪼갠 나무들이 길가에 쌓여 있고, 굴착기들이 고사목을 옮기거나 땅을 파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령 농가를 중심으로 복구를 포기하거나 지역을 떠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농촌 공동체 붕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산불 피해가 컸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주민 김수정(45)씨는 “교통이 불편하고 일자리가 적어 이미 젊은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형 산불이 직격탄이 됐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 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6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명진2리 산불 이재민 임시조립주택 주거단지에서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정석 기자


이와 관련해 행안부는 피해 지역을 ‘사라지는 마을’에서 ‘살아나는 마을’로 전환하기 위한 재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농·임업인 맞춤형 지원을 통해 산불로 인해 생육이 저하된 농산물, 임산물 피해를 보전하고, 단순한 나무 심기를 넘어 지역 경제 거점으로 만드는 혁신적 재창조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또 산림투자 선도지구로 지정되는 지역은 용적률·건폐율을 최대 120%까지 완화해 민간투자를 유도하기로 했다.

윤 장관은 “과거로 돌아가는 단순 복구를 넘어 미래를 설계하는 혁신적 재건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피해 주민이 일상으로 완전히 복귀할 때까지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며 세심한 지원을 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한 마을 뒤로 보이는 산에 산불 피해 고사목들이 가득하다. 김정석 기자

안동=김정석 기자, 한은화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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