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설계하는 금융]①'돈 좀 있는' 시니어로 세대교체…기회 엿본 금융권

이은주 2026. 3. 1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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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부유한' 60대 가구의 등장
가족 의존보다 독립적 노후 선호
"믿을 만한 프리미엄 시설 원해"
금융권, 자본력과 신뢰도 앞세워
'시니어 머니' 선점 경쟁 본격화

"나중에 몸이 불편해지면 자식에게 의지하기보다 시설이 좋은 전문 요양기관에 들어가고 싶어요. 내 결정권이 존중되고 인권 침해 걱정이 없는 믿을 만한 곳이라면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생각입니다."

삶의 마지막까지 존엄성을 유지하려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면서 요양시설을 바라보는 노년층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과거 요양시설이 '가족으로부터 버려지는 곳'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전문적인 돌봄 서비스를 통해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지'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17일 아시아경제가 확보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보험사 실버산업 진출 활성화 방안'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실태조사 응답자의 31.3%는 돌봄·식사·생활편의 서비스가 제공되는 노인요양시설 등에서 거주하기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홍석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집에서 계속 거주하면서 재가(방문 지원) 서비스를 받기를 원하는 노인들도 있지만, 건강이 악화할 경우 요양과 치료 서비스를 받기를 희망하는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완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도 "신(新) 시니어층은 향후 노인요양시설 입소가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현실적인 선택지로 인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구소 조사 결과 노인 응답자의 69.9%는 향후 건강에 어려움이 생기면 노인요양시설에 입소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61.6%)'였으며 '전문적인 돌봄 서비스(24.1%)'가 그 뒤를 이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새로운 노인 세대로 편입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성과 자기 결정권을 유지하려는 '웰다잉'에 대한 의지가 높아지고 있다. 삶을 독립적으로 꾸려나가면서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려는 태도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질 높은 돌봄·요양 서비스를 소비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한 67세 여성은 "아직은 몸이 건강한 편이지만 시간이 흘러 거동이 불편해지면 갖고 있던 자산을 현금화해 서비스가 뛰어난 요양시설에 들어가고 싶다"며 "자식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있고, 인권 침해가 없는 곳이라면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든든한 경제력 뒷받침 '가장 부유한' 세대가 노인 됐다 

웰다잉을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인식의 바탕에는 이들 세대의 탄탄한 경제력이 있다. 아시아경제가 국가데이터처의 가계금융복지조사의 가구주 연령 계층별 재무건전성 데이터를 확인·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60세 이상 가구주의 자산은 9억674만원, 65세 이상은 8억9554만원으로 나타나 전 세대 중 가장 '부유한' 세대로 꼽혔다. 이는 50대(7억6930만원) 자산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2017년과 비교하면 변화는 더 뚜렷하다. 당시 60세 이상 자산은 3억8971만원 수준이었으나 10여년 전 부유했던 50대가 현재의 60대가 되며 자산 규모가 급증했다. 홍 교수는 "이들은 1980년대 경제 성장기에 부동산 상승과 성장의 과실을 누린 세대"라며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고품질 프리미엄 돌봄 서비스에 대한 강력한 수요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질 좋은 요양 시설을 이용하려는 노인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30년부터는 약 954만명 규모의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가 본격적으로 노년층에 편입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평균 가구소득은 7120만원으로 1955~1963년생까지인 1차 베이비붐 세대(5564만원)를 웃돈다. 2차 베이비붐 세대는 1차 세대보다도 소득과 자산이 많아 소비 여력이 높다. 자연히 독립적 생활에 대한 욕구와 질 좋은 시니어 서비스에 대한 선호도는 더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건강 어려워지면 요양시설 필요"…정작 프리미엄 시설은 부족 

문제는 우리나라 요양 시설 서비스의 전반적인 질이다. 우리나라 노인 요양시설 서비스는 질적으로 뒤처져 있는 편이다. 서비스의 질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수 있는 대형법인의 공급을 통해 확보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소규모 개인 사업자가 요양시설 운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노인요양시설 입소자의 6.4%는 정원 10인 이하 시설에, 21.3%는 10~29명 규모 시설에, 57%는 30~99명 규모 시설에 입소해 있다. 15.3%만이 100명 이상 시설에 입소해 있는 상황이다.

이는 강력한 규제의 벽 때문이다. 현행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정원 30명 이상 요양시설을 설치하려면 설치자가 토지와 건물을 직접 소유하고 시설도 직접 운영해야 한다. 수도권일수록 부지 가격이 높아 상당한 자금력을 갖춘 법인이 아니면 진입 자체가 쉽지 않은 구조다. 반면 정원 10인 미만의 소규모 시설은 이러한 규제에서 제외된다. 이 때문에 국내 요양시설 시장은 영세한 소규모 시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

이에 30인 이상 노인요양시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지속되어 왔다. 다만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규제 완화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입장이다. 임을기 복지부 노인정책관은 "과거에 요양시설 운영업자들이 노인들의 보증금을 가지고 잠적한 뒤 폐업한 사례들이 있었다"며 "규제를 완화할 경우 요양시설 입소자들의 불안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KB골든라이프케어의 서초빌리지(요양시설) 풍경 /KB골든라이프케어 홈페이지
금융권, 강력한 브랜드 신뢰도 바탕으로 시장의 불신 뚫는다

이러한 '신뢰의 공백'은 주요 금융지주들이 요양 시장을 정조준하는 배경이 됐다.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직접 토지를 매입해 운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금융업 특유의 엄격한 내부 통제 시스템이 요양 서비스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최적의 대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금융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노인 응답자의 54.4%는 요양시설 입소 시 인권 침해나 학대 가능성을 우려했다. 가족·사회와의 단절(40.2%), 자기 결정권 제한(36.3%) 등도 주요 걱정 요인이었다. 평판 리스크에 민감한 금융지주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는 이미 개인정보와 자산을 다루며 최고 수준의 윤리·보안 기준을 적용해 왔다"며 "이를 요양 서비스에 이식해 CCTV 사각지대 해소와 표준화된 돌봄 매뉴얼을 제공한다면 입소자들이 우려하는 인권 문제를 제도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금융권은 도심 요충지 부지를 확보해 '사회적 단절'이라는 문제도 해결하고 있다. 도심형 프리미엄 시설은 가족들이 수시로 방문하기 좋아 노후의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조사에서 시니어들의 선호도가 일반 요양시설(53.0%)보다 프리미엄 시설(61.9%)로 기울고 있는 것 역시 금융권이 제공하는 '브랜드 신뢰'와 '고품질 서비스'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제 막 요양사업 진출에 시동을 걸고 있는 금융지주들은 대부분 도심 부지를 확보해 시설을 건설한 뒤 대규모로 운영하는 프리미엄 시설을 사업 포트폴리오의 출발로 삼고 있다. 2012년 업계 최초로 고령층 전용 브랜드 'KB골든라이프'를 선보인 KB금융은 프리미엄 요양시설 공급에 가장 적극적인 곳으로 꼽힌다. 신한금융도 올해 1월 프리미엄 요양시설을 개소했다. 하나금융 역시 부지를 매입해 시설 개소를 준비 중이다. 삼성생명도 자회사 삼성노블라이프를 출범시키고 삼성생명 공익재단이 25년간 운영해 온 프리미엄 실버타운 '삼성노블카운티'를 인수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요양시설 선택에서는 브랜드 신뢰도가 중요한데, 금융지주만큼 강력하고 친숙한 신뢰 자산을 가진 기업도 드물다"면서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층으로 본격 편입되는 지금이 브랜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시니어 서비스 시장의 거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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