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재 목사의 후한 선물] 고난이 약재료 될 때

해마다 3월 17일이면 세계 곳곳이 초록빛으로 물든다. 바로 성 패트릭의 날이다. 사람들은 녹색 옷을 입고 축제를 즐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 소년의 눈물과 기도가 숨어 있다.
5세기 초 열여섯 살의 패트릭은 아일랜드 해적에게 잡혀갔다. 노예가 된 그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들판의 양을 쳐야 했다. 의지할 사람도 돌아갈 길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그 자리에서 하루에 백 번씩 기도하며 하나님을 깊이 만났다. 훗날 그는 성령께서 그 시간에 자기 안에서 뜨겁게 역사하셨다고 고백했다.
6년 후 패트릭은 기적처럼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아일랜드를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꿈에서 아일랜드 사람들의 음성이 들렸다. ‘거룩한 소년이여, 와서 다시 우리 가운데 걸어 주십시오.’ 놀랍게도 패트릭은 그 땅으로 돌아갔다. 그를 움직인 것은 원한이 아니라 복음이었다. 상처 입은 그의 순종이 아일랜드 복음화의 시작이 됐다.
필자가 저서 ‘최고의 유언’에서 다룬 야곱의 인생이 바로 그렇다. 속이고 도망치며 험악한 세월을 온몸으로 통과한 야곱은 죽음 앞에서 자식들을 분별하며 그들의 앞날을 예언하는 유언을 남겼다. 잘나서 남긴 축복이 아니었다. 고난 가운데 회개한 사람만이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언이었다.
야곱의 장례 후 요셉도 형들에게 말했다. “형님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많은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창 50:20) 해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그러므로 용서도 내 결심으로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내 고난을 다른 사람을 살리는 약재료로 쓰실 때 우리는 비로소 용서하는 자리에 설 수 있다.
한 성도의 이야기다. 그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고 결혼 후에도 사업에만 매달려 8년 동안 가정을 떠나 살았다. 그새 아내는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갔다. 그럼에도 그는 돈 잘 버는 자신은 옳고 예배드리며 공동체에 붙어 있는 아내는 틀렸다고 여겼다.
그런데 잘되던 사업이 갑자기 무너져 그는 8억원 넘는 빚만 지게 됐다. 죽고 싶을 만큼 막막할 때 초등학생 딸이 말했다. “아빠가 평생 일만 하다 구원 못 받으면 안 되잖아. 이제 집에 들어와 함께 살자.” 아내도 “피투성이라도 살아만 있으라”며 남편을 위로했다. 그렇게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자기를 병들게 한 사람을 다시 품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말씀을 듣고 믿음의 공동체에서 양육받은 아내를 통해 하나님이 하신 용서였다. 무너진 사건이 도리어 한 가정을 살리는 구원의 사건이 됐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딸은 좋아하던 태권도와 같은 학원을 그만둬야 했다. 친구들이 학원에 가는 것이 부러울 때도 있고 추운 날 버스를 탈 때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매일 큐티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고난이 아니라 아빠가 예수님을 믿게 된 사건이지. 진짜 가족을 만들어 주신 사건이야.” 한 달에 한 번 오시던 아빠가 매일 집에 있고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평범한 일상이 아이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 됐다. 지금 이 성도는 입주 청소일을 하며 교회에서 소그룹 부목자와 중등부 교사로 섬긴다. 현실은 여전히 어렵지만 공동체에서 다른 지체들을 살리고 있다.
에스겔서 말씀처럼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과실나무에 닿을 때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겔 47:12) 패트릭의 노예 생활, 야곱의 험악한 세월, 요셉의 억울한 사연, 그리고 한 성도의 파산 역시 주님의 말씀을 만났을 때 사람을 살리는 약재료가 됐다. 지금 우리 인생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상처를 지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주님은 상처 많은 우리를 구속하신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우연은 없다. 말씀 안에서 붙들린 고난은 생명의 흔적이 된다. 이 땅에는 별 인생이 없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 머무는 사람의 상처는 별이 된다. 그래서 오늘 내가 흘리는 눈물도 헛되지 않다. 주님이 만지시면 그 눈물은 빛이 되고 그 고난은 누군가를 살리는 약재료가 된다.
김양재 목사(우리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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