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중동발 쇼크… 원유 도입선 넓히고 에너지원 다변화 시급
설비 인프라 구축 등 전환 비용 만만찮아
재생에너지 확대도 풀어야 할 과제 산적
정부 원전 재가동 속도 전기료 인상 차단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로 중동산 원유 수급길이 막히며 ‘에너지 다변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국내 원유 수입량 70%를 차지하는 중동산 비중을 줄이고 미국, 중남미 등으로 도입선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발전용 에너지도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국무회의에서 “이번 기회에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신속하고 대대적으로 하는 게 어떨까 싶다. 좋은 기회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중동 정세 변화로 인한 에너지 수급 위기는 여러 차례 반복됐다. 1970년대 ‘석유 파동’부터 에너지원 다변화 목소리도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나 중동 전쟁이나 산유국 감산 등이 발생할 때마다 에너지 위기는 되풀이됐다. 에너지 다변화는 왜 구호에만 그쳐온 걸까.

원유 도입처 다변화 앞엔 ‘전환 비용’이란 돈의 딜레마가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와 수출 산업의 성공 방정식은 중동산 원유에 맞춰 설계된 구조였다. 중동산 원유인 두바이유는 찌꺼기가 많고 황이 섞인 중질유다. 한국은 이를 수입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구축한 ‘고도화 설비’로 이를 정제해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으로 탈바꿈시켜 왔다. 국제 제품가격 기준인 유럽 북해 브렌트유와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가볍고 맑지만 가격이 비싼 경질유다. 한국은 중질유를 최고급 석유제품으로 바꿔 국제 시세에 맞게 팔아 이익(정제 마진)을 남겨 왔다.
물류를 포함한 수입 전반도 중동산 원유에 맞춰 편성됐다. 중동에서 아시아로 오는 초대형 유조선(VLCC)을 통해 한국 일본 등 자원이 없는 아시아 국가들의 ‘규모의 경제’가 형성된 상태다. 미국의 셰일오일 혁명 이후 미국산 원유 생산량이 늘면서 WTI 가격이 두바이유보다 비슷하거나 낮은 국면이 최근 수년간 이어졌고, 일시적으로 미국산 원유 비중이 늘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중동 국가들의 증산으로 두바이유 가격이 낮아지면 다시 중동산 비중이 늘어나는 현상이 되풀이됐다. 중동산 비중은 코로나19 시절인 2021년 59.8%까지 떨어졌지만 지난해 말 70%까지 반등했다.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전환 흐름도 원유 다변화의 걸림돌로 거론된다. 미국산 원유 등을 늘리고 중동산을 줄이기 위해선 정제설비를 기존 중질유에서 경질유 등으로 재편해야 한다. 설비 인프라 구축에 다시 막대한 재원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산업계 모두 석유 등 화석연료 감축에 나서면서 ‘비용 투입’의 손익계산서가 맞지 않는 상황이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탈탄소가 대세인 상황에서 정유업계도 기존 중동산 원유에 맞춘 생산 설비를 큰돈을 들여 뜯어고칠 경제적 요인이 부족하다”며 “이런 상황에선 원유 다변화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흐지부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안으로 떠오르는 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원전이다. 재생에너지는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석유·액화천연가스(LNG) 같은 화석연료와 달리 자체 생산이 가능하다. 다만 날씨 등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 주력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려면 생산된 전기를 쌓을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전국으로 실어 나를 전력망이 필수다.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비용과 기간이 필요하다. 노남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장기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지만 송배전망 보강, 전력 계통 강화 문제 등 풀어가야 할 과제들이 많다”고 말했다.
중국에 집중된 재생에너지 공급망도 변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풍력 발전·전기차 등에 투입되는 영구자석형 희토류 공급망의 94%를 차지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 광물 공급망도 중국이 쥐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가 중국의 광물 자원 무기화로 모습만 바뀔 수 있다. 원전 역시 건설 기간이 10년 안팎으로 장기간 필요하고, 향후 정치 상황에 따라 재차 ‘탈원전’ 논란 등 부침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우선 중동발 오일 쇼크가 전기요금 인상으로 번지지 않도록 원전 재가동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현재 원전 15기가 가동 중으로, 오는 5월까지 6기를 추가 가동한다. 앞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 2022년 2월 말에 킬로와트시(㎾h)당 100원 수준이던 발전 원가가 270원까지 급등한 바 있다. 고유가가 지속하고 LNG 도입에 차질이 발생하면 이번에도 유사한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동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선 원유의 핵심 소비처인 운송업과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 원유를 정제해 얻는 ‘납사(나프타)’는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로 플라스틱과 합성고무(타이어) 등 주요 공산품의 뼈대 역할을 한다. 원유 수급이 막히면 석유화학 공장의 가동이 멈추고 제조업 전체가 연쇄 타격을 입는다. 자동차와 화물 트럭, 항공기 등의 연료로 사용되는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등의 수급도 끊기며 수출 기업들의 운송비 부담도 치솟게 된다. 발전 에너지원을 다변화하는 것만으로는 반쪽짜리 대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계 각국은 화석연료 비중을 낮추면서도 특정 도입처와 에너지원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절충안’을 속속 선택하고 있다. 독일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며 재생에너지 비중을 크게 늘렸지만, 발전량이 날씨에 따라 급변하는 문제를 겪었다. 최근 이를 보완하기 위해 LNG 발전소 건설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은 러·우 전쟁을 겪으며 40%에 달했던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10% 수준까지 낮추고 미국 카타르 등 가스 도입선을 다변화했다. 일본은 석유·가스 등 해외 에너지 자원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전체 수입량 중 자원 개발로 확보한 비중(자주개발률)이 40%를 웃돌고 있다.
우리 정부도 원유 도입처 및 발전 에너지원 다변화에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다. 한·미 관세 합의에 따른 미국산 원유·LNG 도입 확대와 재생에너지·원전 추가 도입 등이 예상된다. 유 교수는 “에너지 자원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상황”이라며 “재생에너지와 화석연료의 상호 보완 관계를 고려하며 장기적 차원의 구조 전환과 공급망 다각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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