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트럼프는 왜 이란을 때리나

김찬희 2026. 3. 17.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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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희 논설위원

납부자 보호 서약 맺은 날에
쿠르드족 지도자와 통화하기도
다양한 이유, 모순된 논거 혼재
그 속에 ‘중국 견제·압박’ 보여

베네수엘라와 이란 이은 선에
석유, AI라는 퍼즐을 얹으면
전력 패권과 AI 경쟁이 드러나

세계 질서는 에너지 장악국 몫
치열한 전력 확보전 벌어질 것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한창인 지난 4일(현지시간)이었다. 미국 백악관에서 ‘납부자 보호 서약’(Ratepayer Protection Pledge)이라는 특이한 행사가 열렸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웹서비스, 오픈AI, 스페이스X 같은 빅테크의 경영진이 총출동했다. 이들은 서약식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모든 전력 생산과 사용 비용을 책임지기로 했다. 새 발전소를 짓고, 지역 전력망에 비상 전력도 제공하기로 했다. 데이터센터의 수요 폭증이 소비자 전기요금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빗발치는 ‘어포더빌리티(affordability·소비자가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논쟁’을 잠재우는 동시에 대규모 전력 확보로 AI 병목도 해소하는 일거양득의 포석이다.

같은 날, 미국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쿠르드족 지도자의 통화 사실을 발표했다. 여기에 맞서 이란 혁명수비대는 “중동 내 모든 군사·경제 인프라를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밝혔다. 전쟁의 포화가 주변국으로 확산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격렬하게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란은 전 세계 원유 수송의 목줄이라고 할 수 있는 호르무즈 해협을 틀어쥐고 있다. 한국 일본 대만 등으로 가는 유조선의 발이 묶였고, 국제유가는 불안하다.

하지만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인 중국의 사정은 좀 다르다. 이란은 지난달 28일 전쟁 발발 이후에도 중국으로 원유 1200만 배럴을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사회 제재를 받는 탓에 이란산 원유는 배럴당 8~12달러 싸다. 이란 원유는 위치 식별장치를 끈 선박에 실려 공해로 나간 뒤, 다른 배로 옮겨 원산지를 세탁한다는 의심을 받는다. 이런 식으로 미국 눈을 피하면서 중국은 이란 원유 수출물량의 90%를 사들이는 거로 추산된다. 지난 1월 기준으로 중국 원유 비축량은 약 12억 배럴에 이른다.

납부자 보호 서약, 미국의 이란 폭격, 중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이라는 세 가지 사건은 겉보기에 연결점이 없다. 흐릿한 점선은 가능해도, 실선을 긋기 모호하다. 그런데, 여기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작전을 끼우면 그림이 달라진다. 미국 앞마당에 자리한 베네수엘라는 중국과 각별한 관계였다. 중국개발은행은 석유 현물로 갚는 조건으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약 600억 달러에 이르는 차관을 제공했다. 위안화로 석유 거래를 하면서 남미에 위안화 결제시스템을 구축한 건 덤이었다. 미국이 2017년에 베네수엘라를 대상으로 경제제재에 착수하자, 중국은 군사 분야와 사회기반시설 건설에 기술·자본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기도 했다. 중국과 밀착한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이으면,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재현하겠다는 중국의 외교·안보·경제 전략인 ‘일대일로’가 겹쳐진다. 우연일까.

트럼프가 왜 이란을 공격했는지를 두고 분석과 추정, 반박이 어지럽다. 트럼프와 미국 정부는 다양한 이유, 모순된 논거를 아무렇지 않게 제시한다. 서로 충돌하는 의도들을 모두 깔고 행동에 나섰을 수 있다. 똑 부러지지 않는 목적들 가운데 중국 견제·압박은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혼돈의 판 위에 납부자 보호 서약과 석유, AI라는 퍼즐 조각들을 얹으면 더 큰 그림이 드러난다. AI 경쟁과 ‘전력 패권’, 그것을 움켜쥐려는 노골적 움직임.

인류 역사는 에너지를 얻고 쓰는 방식과 궤적을 같이한다. 에너지 체제(energy regime) 변화는 생산성 혁명과 군사 혁명을 동반했고, 세계 질서는 새 에너지를 장악한 나라의 몫이었다. 본질적으로 AI 경쟁은 전력 확보 경쟁이다. 대형 AI 모델은 훈련과 추론 과정에서 엄청난 규모의 연산을 수행하고,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그래서 빅테크들은 소형모듈원전(SMR), 금속-공기 전지를 활용한 에너지저장장치(ESS), 재생에너지 등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중국은 초대형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를 짓고 원자력·풍력·태양광·화석연료 등 가능한 모든 자원을 끌어모으는 중이다.

AI는 전력을 대량의 지식과 생산성으로 전환한다. 경제·산업부터 정치·사회까지 모든 걸 바꿀 것이다. AI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전력 패권의 작은 조각이라도 쥐어야 한다. 이미 서막은 올랐다. 우리가 에너지에 ‘이념의 꼬리표’를 달고 우왕좌왕하는 동안에도 톱니바퀴는 매섭게 돌아가고 있다.

김찬희 논설위원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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