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곤의 퍼스펙티브] 이란전쟁의 늪과 한반도…‘피로한 패권국’과 무너지는 세계질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단기전을 공언하며 지난달 28일 이스라엘과 시작한 이란 전쟁이 확전 일로다. 전쟁 초반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옛 국방부) 장관은 “군사 공격에는 끝이 있다”며 “네이션 빌딩(국가건설)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란은 오히려 강경파인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새로운 최고지도자로 옹립하고, 결사 항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특히 이란은 미국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호르무즈해협을 사실상 봉쇄하며 유가를 끌어 올리는 전략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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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전에 또 발 담근 미국
미·러, 국제 질서 흔들기로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일상화
북한에 위험한 교범 될 수도
」
![지난 14일(현지시간) 이란의 드론 공격을 받은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의 석유 시설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인도양에 접한 푸자이라는 호르무즈해협을 통하지 않고 석유 수출이 가능하다. [AP=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7/joongang/20260317001549399gmlx.jpg)
트럼프의 단기전 오판
그 결과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전쟁 첫 주 대비 20% 급등하며 갤런당 4달러 선에 근접했다. 유가 상승은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과 정권 심판론에 즉각 반영되는 가장 민감한 ‘체감 경제지표’다. 단기전으로 이란을 제압하려던 트럼프의 계산이 이란의 전략에 휘말리는 양상이다. 예측 불허로 빠져드는 이번 전쟁이 세계질서와 한반도에 끼치는 영향은 세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근간을 훼손한다는 점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엔을 중심으로 구축된 주권존중, 영토보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모든 유엔 회원국의 무력 위협과 사용을 금지한 유엔헌장(2조 4항)은 집단안보의 핵심이다. 자위권이 발동되는 경우를 제외하곤 군사력을 동원한 공격을 허용치 않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란을 “임박한 위협”이라거나 “2주 안에 (이란이)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란과 협상을 진행하던 중 군사행동을 선택하며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나섰다.
문제는 국제 질서를 수호해야 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파괴의 주체가 됐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미국의 베네수엘라 및 이란 공격은 유엔 체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대전의 참화 끝에 강대국 간 협력으로 전쟁을 예방하려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구상이 종언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미국의 ‘과잉 팽창’이 재개될 가능성이다. 미국은 2001년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20년 가까이 함몰돼 있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격 철군을 단행한 건 중동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다시 중동에 깊이 개입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유가 급등을 경험한 미국이 다시 중동 문제에 장기적으로 얽힐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과 올해 1월 국방전략에서 서반구와 인도·태평양을 핵심 전략 지역으로 규정했다. 인도·태평양에서는 중국을 힘으로 억제한다는 전략방침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인 유럽, 중국과 대치하는 인도·태평양, 그리고 다시 중동까지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처지다.
이는 미국이 절대적 우위를 가진 패권국이라기보다, 여러 전선에서 전쟁을 끝내지 못한 채 국력을 소진하는 ‘피로한 패권국’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패권의 힘이 분산된 공백을 틈타 도전국들이 현상 변경의 기회를 엿보는 ‘무질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규범이나 공공재 제공 측면에서 미국을 대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에, 현재 정세는 다극화라기보다 관리되지 않는 연쇄 위기에 가깝다.
셋째, 이란의 ‘수평적 확전’ 전략이 주는 위험한 시사점이다. 약소국이 강대국에 맞설 때 전장을 주변으로 확대하는 이 전략은 일단 효과를 보고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걸프 전역의 미군 기지, 항만, 정유시설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타격해 최소 9개국을 전장으로 끌어들였다. 안전한 금융·관광 허브였던 두바이와 도하 상공에 미사일이 교차하는 순간, 전쟁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과 투자 심리를 흔드는 전 지구적 위기가 된다.
이 모델은 러시아나 중국뿐만 아니라 북한에도 매력적인 교범이 될 수 있다. 특히 북한은 유사시 전장을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 내 미군기지나 괌, 하와이 등 태평양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을 고도화할 것이다.
안보 공백 노리는 도전들
이런 변화는 한반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우선 동맹 정치의 피로와 균열이 나타날 가능성이다. 여러 전선에 동시에 개입하는 미국은 동맹국에 더 많은 부담 분담과 역할 확대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유럽에는 우크라이나 지원과 재무장을, 중동에는 해상 안보와 에너지 안정 비용을, 인도·태평양에서는 중국 억지의 최전선 역할을 요구하게 된다.
이미 트럼프는 지난 14일(현지시간) 한국을 포함한 5개 국가에 호르무즈해협으로 함정 파견을 요구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미국과 함께 해협을 개방되고 안전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인도·태평양에서 한국의 역할 확대 요구도 더욱 거세질 수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과 국방전략은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일본·인도 등의 협력을 강조하며 이들 국가가 필요한 역량에 투자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한국은 인·태 안정에 기여할 능력과 경험, 전략적 위치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핵심 동맹국에 역할과 책임 요구가 이미 현실이 된 것이다. 동시에 동맹 내부에서는 ‘미국의 전쟁에 언제까지, 어디까지 동참할 것인가’라는 피로와 회의가 커질 수 있다. 동맹을 더는 절대적인 안보 울타리로 보지 않는 시각도 확산할 수 있다.
이번 전쟁은 단순한 중동 분쟁을 넘어 전후 국제질서가 균열되는 또 하나의 분기점이다. 강대국이 규범을 약화시키고, 약한 국가는 전쟁을 수평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 결과 국제정치는 다극화라기보다 질서를 관리할 중심이 부재한 ‘무질서의 체제’로 기울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지역 분쟁이 서로 연결되며 연쇄 위기로 확대될 위험도 커진다. 한반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전략적 부담이 커질수록 동맹국에 대한 역할 요구는 더욱 강해질 것이며, 동시에 북한은 전장 확대 전략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것이다. 결국, 이번 전쟁은 한국이 동맹, 안보 전략, 그리고 한반도 위기관리 방식을 다시 점검해야 하는 계기인 셈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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