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택시왕의 ‘복지 3종 세트’, 운전 할 사람 줄 세웠다

이상재, 장서윤 2026. 3. 1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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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기업人사이드


김복태 동일운수 회장이 인천 학익동 본사 정비장에서 택시 내부를 점검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아버지는 머슴이었다. 지리산 자락, 전라북도 남원에서 막일을 하며 품삯을 받았다. 1945년생 해방둥이, 7남매 중 둘째였던 소년 김복태(81)는 늘 배를 곯았다. 송아지한테 먹일 꼴을 베면서 ‘차라리 네 팔자가 낫다’고 부러워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한 번은 체육시간에 홀로 교실에 남아 당번을 섰다. 책가방 속 급우의 도시락 냄새가 코끝을 어지럽혔고, 거기에 손을 댔다. 한 입만 넣으려고 했지만 숟갈질을 멈출 수 없었다. 그날 담임 교사에게 뺨을 맞았다. “그땐 다른 건 다 참아도 배고픔은 참기가 힘들었어요. 하지만 ‘나 때문에 친구는 한 끼를 굶어야만 했다’는 걸 알았지요. 도둑질이었고, 매를 맞는 건 당연했지요.”

이즈음 소원이 생겼다. ‘나중에 크면 동네 들판에 무쇠솥을 걸어 놓고 밥을 지어 혈육과 동무들을 배 터지게 먹이겠다.’ 그리고 40여 년-, ‘소년 복태의 꿈’이 이뤄졌다. 인천에서 ‘택시왕’으로 불리는 김복태 회장이 경영하는 동일운수와 검단교통은 모든 임직원에게 ‘공짜 밥’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90년대 초 사내에 무료식당을 열었다.

사내식당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식사. 그는 1990년대부터 직원 대상으로 무료 식당을 운영 중이다. 김현동 기자

인천 시내 60여 개 택시회사 중 사내식당, 그것도 공짜로 식사를 제공하는 데는 여기 밖에 없다. 기본은 1식 4~5찬, 메뉴 선정과 조리는 4명의 급식원이 전담한다. 집밥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조리식품을 사용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데는 월 2000만원쯤 든다. “제가 오랫동안 택시 운전을 해봐서 알아요. 밥때를 놓치기 일쑤고, 식사를 해도 길바닥에서 허겁지겁 때우는 수준이지요.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 끼니는 반드시 챙겨야지요. 물론, 어릴 때부터 품어왔던 소원도 있고요.”

인천 학익동에 본사를 둔 동일운수는 보유 차량이 145대다. 택시기사 150여 명이 근무한다. 검단교통을 포함해 두 회사에서 운행하는 택시가 240여 대. 지금은 매각했지만 그가 처음 창업한 삼우운수까지 합쳐 한때는 보유 택시가 300여 대, 근무 인력은 500명 이상이었다. 인천에서 첫손에 꼽혔다.

동일운수·검단교통은 차량 가동률과 기사 충원, 고객 만족도 등에서 ‘특별한 회사’로 통한다. 두 회사의 지난해 평균 택시 가동률은 90% 안팎. 전국 1600개 택시업체의 주요 도시별 가동률이 30~60%라는 것과 견줘 월등히 높다. 택시 기사 구인난 때문인데, 한때 10만 명을 웃돌던 법인택시 기사는 지난 1월 7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런데 회사는 ‘구인난 무풍지대’에 가깝다. 직장을 옮겼다가 재입사하는 경우도 여럿이고, 가끔은 다른 회사에 다니는 기사로부터 ‘빈자리가 없느냐’는 연락이 온다. 쉽게 말해 ‘번호표’ 뽑아 놓고 대기한다는 얘기다. 가족 친화적 경영 덕분인지 장기 근속자도 유독 많다. 근속연수 10년 이상은 50여 명, 20년 넘게 재직한 이도 10여 명이다. 업계에 따르면 법인택시 기사의 평균 근속연수는 3~6년쯤 된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건 장애인 기사 채용이다. 동일운수·검단교통 소속 기사 중 10%가량은 장애인이다. 한쪽 팔이 없거나 두 다리가 불편한 기사가 각각 10년 넘게 운전대를 잡고 있다. 열 손가락이 모두 없는 기사도 근무했는데 지금은 개인택시로 ‘독립’했다. 회사는 장애인고용공단의 지원을 받아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손으로 작동하게 하는 등 개조 차량을 제공한다. 2008년 사옥을 지을 땐 장애인용 엘리베이터·화장실 설치, 식당 동선 등을 우선 고려했다. 그는 이런 채용관에 대해 “일하겠다는 마음이 존경스럽지요”라고 짧게 답한다.

김 회장이 처음 운전대를 잡은 건 스무 살, 군에 입대해서다. 절박함과 기지 덕분이다. 논산훈련소에서 대기하는데 운전 경력이 있는 훈련병을 찾았다. 운전 면허증도 없던 그는 번쩍 손을 들었다. “나중에 평생 먹고살 만한 기술을 배워서 제대하겠다는 일념이었어요. 어머니가 ‘다급할 때 쓰라’며 팬티 안쪽을 꿰매고 챙겨준 500원이 떠올랐고, 그걸 시험관 병장에서 찔러주면서 ‘살려 달라’고 애걸했습니다. 이때 운명이 바뀌었어요.”

제대할 무렵 강원도 화천에서 면허증을 땄다. 이때가 1968년 말이다. 처음엔 지입제 택시를 몰던 아는 형이 식사하는 시간에 차를 빌려 하루 1~2시간씩 영업을 했다. 부동산으로 치자면 전전세 같은 격이다. 이때 택시 소유주를 소개받았고, 그에게 계를 들어 3년 새 25만원을 모았다. 여기에 저축한 돈 3만원을 보태 소형세단 코로나를 뽑았다.

이후 지입택시 소유주의 권유로 택시 사업을 시작했다. 1983년 그동안 모아둔 예금 3000만원과 사채·융자 1억6000만원을 합쳐 삼우운수를 세웠다. 낮에는 사장이지만, 밤에는 정비사로 일했다. 부인인 김남준(76)씨도 서울 서대문 집에서 인천을 오가며 직원 식사를 챙겼다. 김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영감의 고집을 이길 수가 없다. 남들이 안 하는 것만 우직하게 찾아서 했다”고 말했다.

배고픔의 기억 때문일까. 그의 고향 사랑은 유별나다. 여력이 될 때마다 고향인 남원 운봉읍에 기부를 한다. 얼마 전엔 신생아 출생 때 축하금 500만원을 지급하는 마중물로 3000만원을 내놨다. 이번에도 그의 대답은 “보잘것없어요”라는 게 전부다. 그런데, 약간 뜸을 들이던 김 회장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한 번은 지역 라이온스클럽 회장 출마를 했는데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이 부족하다고 누군가 수군거리더군요. 그때 ‘나는 지리산대학 지게학과 나왔다’고 큰소리를 쳤어요. 어쩌면 대학에서보다 많은 걸 배웠지요.”

◆기업人사이드=‘어떻게 리더가 되나’ ‘리더의 고민은 무엇일까’…. 직장인에게 습관처럼 따라붙는 질문입니다. 10년 이상 한우물을 파고, 자기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고수에게서 펄떡거리는 답을 찾아드립니다.

■ 더중앙플러스-기업人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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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재·장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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