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약 복용자 60% “비만 아니지만 살 빼려고”

김남영 2026. 3. 1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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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정모(33)씨는 지난해 병원에서 ‘다이어트약’이라고 불리는 경구형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다. 비만도 과체중도 아니었지만, 체중을 줄이고 싶어서였다. 약 한 달간 복용했으나, 두통·어지럼증 등의 부작용이 심해 복용을 중단했다. 정씨는 “전에도 다이어트 주사를 맞아보곤 했으나 주사형은 번거로워서 경구형 식욕억제제를 먹어봤다”며 “부작용이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경구용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는 사람 10명 중 6명가량은 정씨처럼 비만이 아닌데도 체중 감량을 위해 약을 먹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약 70% 이상이 다양한 부작용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의약품 남용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경구용 식욕억제제 복용자 중 59.5%는 복용 이유로 ‘비만을 진단받지 않았으나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응답했다. ‘의사에게 비만을 진단받고 치료하기 위해’(34.6%), ‘고혈압·당뇨병 등을 치료하기 위해’(8.6%) 등 의학적 치료를 위해 복용했다는 응답보다 많았다. ‘주위의 권유’(8.9%)나 ‘호기심으로’(3.9%) 먹었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연구진은 2022~2025년 경구용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적 있는 257명(19~64세)을 조사했다.

이런 경향은 응답자들의 첫 복용 당시 체질량지수(BMI)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BMI 25 미만, 즉 비만이 아닌 상태에서 약을 시작한 비율이 조사 대상자의 54.1%에 이르렀다. BMI 30 이상인 실제 비만 환자는 12.5%에 불과했다. 경구용 식욕억제제는 체질량지수(BMI) 27 또는 30 이상인 사람에게 단기간 사용해야 한다는 대한비만학회의 진료 지침에 어긋난다.

경구용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사람은 대체로 여성 직장인이었다. 조사 대상 중 82.5%가 여성이었고, 연령대로 보면 30대(32.7%)와 40대(35.0%)가 많았다. 복용한 이유로는 ‘체중 스트레스’가 압도적이었다. 응답자의 91.9%가 ‘체중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에 영향받아 복용했다’고 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마른 몸매를 선호한다’는 응답도 74.7%에 달했다. 응답자들은 ‘여자들은 모두 다이어트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다이어트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고, 최근엔 남자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응답자 10명 중 7명(73.5%) 이상이 경구용 식욕억제제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입 마름(72.0%), 두근거림(68.8%), 불면증(66.7%), 우울증(25.4%), 성격 변화(23.8%), 불안(22.8%) 순으로 부작용이 나타났다. 일부(1.6%)는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다이어트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의료기관의 경쟁 등이 맞물려 오남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의약품 성분별로 남용 예방·관리 전략을 마련하고, 오남용 위험 환자를 상담과 치료로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다이어트 약을 무분별하게 먹을 경우 오히려 살이 쉽게 찌는 체질로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상우 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일부 식욕억제제는 근육 손실을 유발해 살이 찌기 쉬운 상태를 만들고 심혈관 질환 위험도 높인다”며 “특히 신경전달물질에 관여하는 약물을 식욕억제제로 혼합 처방할 경우 부작용이 증폭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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