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총리, 미국만 가면 왜 이러나…한 달 반만에 또 '순방 잔혹사' [정국 기상대]
돌아선 트럼프, SNS로 "한국 군함 보내라"
투자특별법 선물에도 안보청구서 돌아와
북한 도발까지…외교 리스크 동시 분출

김민석 국무총리의 이번 미국 순방이 또다시 무거운 외교적 숙제를 남기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동 이후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 등 실질적인 군사 기여를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1월 김민석 총리의 방미 직후 불거진 '관세 폭탄' 사태의 판박인 상황이다. 당시 김 총리는 '한미 핫라인 구축'을 성과로 꼽았으나, 김 총리 귀국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산 자동차 등에 부과하는 상호관세 25%를 예고하며 강도 높은 통상 압박을 개시했다. 결국 워싱턴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실제 국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괴리가 한 달 반만에 다시 노출된 셈이다.
16일 정치권과 외교가에 따르면 김 총리의 순방 직후 매번 미국의 고강도 요구가 잇따르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의 무력시위까지 겹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리스크는 더욱 복합적으로 전개되는 모습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동맹 관계에 있어 안보와 경제를 분리된 영역이 아닌, 하나의 협상 패키지로 다루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미국의 안보 우산 제공과 방위비, 통상 문제를 동시에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방식이다.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순방길에 오른 김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 등을 만나는 대미 일정을 소화하는 한편, 유엔 인공지능(AI) 허브 유치를 위한 관련 기구 수장들과의 면담도 이어가고 있다.
김 총리는 방미 첫째날인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밴스 부통령과 만났다. 지난 1월 밴스 부통령과의 첫 회담 이후 약 50일 만에 개최된 회담이다.
김 총리는 밴스 부통령에게 "대미투자 특별법이 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하고, 이는 우리의 강력한 투자합의 이행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번 입법을 계기로 한미 공동설명자료(JFS) 이행에 더욱 박차를 가해나갈 수 있는 추동력을 얻은 만큼 핵추진 잠수함, 원자력, 조선 등 안보 분야 합의 사항도 조속히 이행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김 총리가 순방 첫 일정부터 대미 투자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는 최근 미국 행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15개국과 유럽연합(EU)을 상대로 무역법 301조 조사에 착수한 데 있다.
지난달 미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는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반격 카드로 무역법 301조를 꺼내 들고 상호관세를 대체할 관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외국의 부당한 무역 관행을 문제 삼는 조치이지만, 행정부가 자의적 판단에 따라 관세 등을 통해 상대국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 정부는 최근 국회를 통과한 '대미투자특별법'을 협상 카드로 활용해 추가 관세 인상 부과 명분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고 하고 있다. 즉 미국 경제 기여도를 강조함으로써 관세 압박 수위를 낮추려는 전략이다.
김 총리는 1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도 예정에 없던 면담을 하고 한미 현안을 논의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 상당 부분은 북한 문제에 대한 김 총리의 견해를 묻는 것이었던 걸로 전해졌다.
김 총리는 한국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김 위원장이 미국이나 나와 대화를 원하는지 궁금하다"고 김 총리의 의견을 물었다고 했다. 이에 김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로 치켜세우며 화답했다.
김 총리는 "기본적으로 북한 김 위원장과 대화한 유일한 서방 지도자가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말씀드렸고,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피스메이커로서 유일한 역량을 지닌 리더라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며 "내 언급에 대해 굉장히 의미 깊게 생각하고 만족해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김 총리가 백악관에서 '대화'와 '평화'를 논한 직후, 북한은 전혀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의지를 보이고 난 뒤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0여 발을 발사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지난 1월 27일 동해상으로 발사한 이래 47일 만이자 올해 들어 3번째다. 한 번에 10여 발이나 발사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대외적 무력시위 성격이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선중앙통신은 이튿날인 15일 인민군 서부지구 장거리포병구분대의 화격 타격훈련이 전날 진행됐으며, 600㎜ 초정밀다연장방사포 12문과 2개의 포병중대가 동원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420㎞ 사정권'을 언급하면서 해당 무기가 대남 타격용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과적으로 워싱턴에서 연출된 우호적 분위기가 북한에는 도발의 명분으로 작용한 셈이다. 북한이 곧바로 무력 시위에 나서면서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이 다시 부각됐다.

우리 안보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더 직접적인 압박도 백악관에서 터져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4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중국·일본·프랑스·영국 5개국을 특정해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을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른바 '안보 무임승차' 문제를 제기하며 동맹국들의 더 큰 군사적 기여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이 과정에서 패권 경쟁국인 중국까지 언급한 것은 중국으로 가는 석유의 상당 부분이 호르무즈를 거친다며 '수익자 부담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번 김 총리와의 면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콕 집어 군함 파병을 요구한 것은 단순한 해상 협력 차원을 넘어선 사안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총리가 미국에 체류 중인 상황에서 이러한 요구가 공개적으로 제기되면서 우리 정부의 외교적 부담도 한층 커진 모습이다.
무엇보다 김 총리가 미국 땅을 밟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요구가 공개적으로 분출됐다는 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에 실질적인 '비용'과 '기여'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인식을 또다시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 군함이 호르무즈 해협 작전에 참여할 경우 단순한 항로 보호 임무를 넘어 사실상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내포한 작전에 투입될 수 있다는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파병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정치적 논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소말리아 아덴만 일대에 파견된 청해부대 대조영함의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대해 투입하는 방안이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다.
현재 중동 해역에서 활동 중인 청해부대의 기존 임무가 해적 대응과 선박 보호 중심이었던 것과 달리, 이번 호르무즈 상황은 미군과 이란 간 군사 긴장이 직접적으로 얽혀 있는 해역이라는 점에서 위험 수준이 이전과 다른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국회 동의 여부와 교전 가능성, 국내 여론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파병 요구를 받은 다른 국가들도 현재로서는 즉답을 피한 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의 신중 검토 기조를 두고 안보 리스크를 떠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야당인 국민의힘 중진들은 이번 사안을 안보 문제로 규정하며 김민석 국무총리의 방미 행보와 정부 대응을 동시에 겨냥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성일종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김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을 만난 이후 '이란 관련 구체적인 얘기나 군사적 지원 요청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고 밝혔고,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에 함정 파견을 요청했다"고 직격했다.
이어 "김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북미 정상회담을 논의했다고 자랑삼아 언급할 때, 북한은 대한민국을 사정권으로 두는 미사일 도발을 또다시 감행했다"며 "이 정도면 국민들은 이재명 정권이 한미관계를 정권 관리나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위한 입지 확보 수단 정도로 여기지 않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나경원 의원도 "비상시국에, 국정 2인자인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들고 온 보따리가 고작 '김정은과의 만남 주선'이냐"라며 "그저 정권의 정치적 이익, 지방선거용 이벤트를 위한 '브로커' 역할을 자처한 것인지 개탄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급박한 세계 정세 속 '평화 쇼'를 기획할 때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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