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지 못한 삶의 비밀'에 질문하는 마이너리티 정신

이은규 2026. 3. 1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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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학이 말을 건넬 때] 마이너리티 연대를 꿈꾸며

2026년 3월 27-29일간 DMZ와 파주 인근에서 열릴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은 전쟁과 분단, 혐오와 차별,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연속 기고 '다시 문학이 말을 건넬 때'는 분단과 경계, 평화, 민주주의, 디아스포라, 마이너리티라는 다섯 가지 의제를 중심으로, 세계의 문학이 경유해 온 고통의 역사와 그 너머의 가능성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어보고자 기획되었습니다. <기자말>

[이은규]

 자료사진
ⓒ 연합=OGQ
마이너리티(minority)는 단순히 인구학적 소수를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 관계 속에서 비지배적 위치에 놓인 집단을 의미한다. 사회 내에서 수적으로 열세이거나 또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권력의 측면에서 비지배적 위치에 놓여 있으며, 그 결과 차별적 대우를 받는 집단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정의에서 핵심은 '수적 소수성'이 아니라 '권력의 비대칭성'이다. 또한 지배집단에 의해 신체적·문화적 차이를 근거로 구별되고, 그 차이가 열등성의 근거로 해석되면서 차별이 정당화된다. 나아가 이러한 차별 경험은 집단 내부에 공통의 역사적 의식과 연대감을 형성하게 하여 집단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마이너리티 이슈는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비정규 노동자, 청년 여성, 고령 빈곤층 등 각각 고유한 맥락을 갖는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구조적 배제와 낙인, 제도적 공백, 정동의 고립이라는 층위에서 만난다. 이 지점에서 연대는 단순한 도덕적 요청이 아니라, 사회를 재구성하는 실천적·이론적 조건이 된다. 연대적 사유에 대한 다양한 지향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고립된 권리 요구를 넘어서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마이너리티 집단은 개별적으로는 특수적인 이익으로 축소되기 쉽다. 그러나 서로의 경험을 교차적으로 연결할 때, 그것은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가시화된다. 예컨대 성소수자 차별 문제는 가족제도·노동권·주거권과 연결된다. 그리고 이주민 문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복지 배제와 맞닿아 있다. 연대적 사유는 개별 고통을 공적 의제로 전환하는 장치인 것이다. 즉 특수성의 병치가 아니라, 구조적 공통성의 발견이 핵심이 된다.

둘째 피해의 경쟁을 넘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속에서 누가 더 약자인가를 둘러싼 경쟁적 담론이 강화되고 있다. 이 구도는 소수자 내부를 분절시키고, 상호 불신을 심화시킬 위험과 함께한다. 연대적 사유는 이 경쟁적 프레임을 해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고통의 서열화가 아니라, 차별이 작동하는 방식의 유사성을 읽어내는 일이다. 연대는 동일성을 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조건을 사유하는 능력일 것이다.

셋째 정동의 정치학을 떠올려본다. 두려움에서 돌봄으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할까. 전환 논리는 공동체 구성원의 내면에 이미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마이너리티를 둘러싼 담론은 종종 공포·혐오·불안의 정동을 동원한다. 연대적 사유는 이러한 부정적 정동의 순환을 중지시키고, 돌봄과 책임의 정동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하게 해줄 것이다. 보다 현실적 차원에서의 공공정책의 방향 탐색과 미디어의 서사, 시민적 감수성을 재조정하는 문화적 실천이 이어지기를 그려본다.

넷째 민주주의의 심화 조건의 측면을 살펴보자. 다수결 중심의 형식적 민주주의는 소수자의 권리를 자동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수자의 목소리가 제도 안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연대와 참여가 필요하다. 제도적 장치에 대한 마련은 현실을 구성하는 토대가 된다. 연대적 사유는 단순한 어깨동무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갱신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할 때 사회 구성원들의 어깨동무는 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는 언제나 그랬듯이 더 바람직한 공동체를 설계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 문학적 차원에서의 함의의 측면이다. 문학은 타자의 경험을 상상하게 하는 장르이다. 마이너리티 서사는 단지 재현의 문제가 아니라, 독자의 감수성을 확장시키는 장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문학은 가장 부드럽고 가장 파괴적인 힘을 갖는다. 연대적 사유는 여기서 대변이 아니라 청취와 응답의 윤리로 나타난다. 즉, 타자의 언어를 빼앗지 않으면서도, 그 목소리가 공명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공명하는 장으로서의 문학은 언제나 옳다.

생명·평화·인권 지향의 문학적 실천의 길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
ⓒ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 조직위원회
이러한 연대적 사유를 떠올리는 새봄, 설레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이 개최된다는 소식 말이다. 이 페스타는 '생명·평화·인권 세계작가 네트워크'는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문학적 담론을 형성하고, 전 세계 문학인들의 문학적 연결과 교류를 위해 개최될 예정이다. 3일간 분단과 평화, 민주주의, 디아스포라, 마이너리티 등 다채로운 주제로 대담이 열린다. 국내외 작가들이 공동으로 마련한 '생명·평화·공존을 위한 대회 선언문'을 통해 '문학적 연대'를 도모한다.

이번 행사는 전지구적 전쟁과 분쟁에 대한 세계 작가들의 문학적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세계 유일의 분단 휴전 지역인 DMZ에서 본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세계인의 관심 속에서 전쟁·분쟁·혐오·차별에 저항하는 세계 작가들의 심도 깊은 대화와 교류의 장을 통해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세계 문학인들의 언어가 공유될 것이다. 그리하여 분단체제 극복과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이 함께하는, 생명·평화·인권 지향의 문학적 실천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일환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핵심은 세계문학 질서의 바깥에서 활동한 작가들이 참여하고 연대한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첫날 기조 강연을 하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떠올려본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그는 다성악적인 글쓰기로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담아낸 기념비적 문학을 완성하고 있다. 특히 '목소리 소설'이라는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를 개척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다년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질의응답 형식이 아닌, 일반 논픽션의 형식으로 써서 다큐멘터리 산문, 영혼이 느껴지는 산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가는 전쟁에 참전하였거나 전쟁을 목격한 수백 명의 여인들을 만나 그들의 처절하고 가슴 아픈 사연들, 그들의 고통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은 전쟁 이야기, 전쟁의 민낯,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두려움, 적대와 혐오 그리고 전쟁 이후의 삶을 생생한 목소리로 가감 없이 들려준다.

제2차세계대전 중에 백만 명이 넘는 여성이 전쟁에 가담하여 싸웠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의 이름과 얼굴도 기억되지 못한다. 이 책은 전쟁에 참전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여성들은 참전하여 저격수가 되거나 탱크를 몰기도 했고, 병원에서 일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전쟁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 전쟁을 겪은 여성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들은 전쟁 이후 어떻게 변했으며,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우는 건 어떤 체험이었을까.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해 목소리로 등장하는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전쟁 가담 경험을 털어놓는다. 여성이 털어놓는 전쟁 회고담은 그간의 역사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온 이야기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전쟁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때로 어떤 첫 문장은 작가와 그와 함께 꿈꾼 이들의 운명처럼 다가온다. 쓴다는 행위에 대해 그리고 전쟁이라는 주제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전쟁 이야기를 들려준 한 목소리는 말한다. "사람은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지나온 세월이 바로 자신의 삶이었으며, 이제 그 삶을 받아들이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상처를 받은 채 떠나고 싶지는 않은 법. (중략) 지난 삶을 돌아보는 사람의 마음속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욕구뿐만 아니라, 풀지 못한 삶의 비밀까지 알아내고픈 욕구도 숨어 있다"고 말이다.

위의 목소리처럼 모든 마이너리티 정신은 '풀지 못한 삶의 비밀'에 대해 질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이너리티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위치로 이해되어야한다. 이는 고전적 정의 즉, 마이너리티를 차별과 배제의 구조 속에서 형성되는 집단으로 보는 입장과도 맥을 같이하면서도 그에 머물지 않는다. 따라서 문학 텍스트에서의 마이너리티는 단순히 등장인물의 인구학적 속성이 아니라, 서사적 배치와 담론적 재현을 통해 구성되는 층위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오고 있는 문학, 연대적 사유를 통해 무엇에 대해 써야 하고 또 쓸 수 있게 될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은규 시인입니다. [DMZ세계문학페스타 홈페이지 바로 가기] https://dmzwl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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