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에 향수 바르던 그 시절 이야기
[최수안 기자]
향수의 역사를 조사하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 고전 문헌 아카이브에서 눈길을 끄는 문서 하나를 발견했다. 1601년,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에 인쇄된 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의 <박물지(Naturalis Historia)> 영문 초판본이다.
비록 내 손이 직접 누런 종이의 질감을 느끼거나 400년 된 잉크 냄새를 맡은 것은 아니었지만, 고해상도로 스캔된 이미지 속 거친 종이의 결과 고풍스러운 서체는 그 자체로 압도적인 세월의 무게를 전달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려다 생을 마감한 플리니우스.
그가 남긴 방대한 라틴어 기록이 1500년의 세월을 건너 17세기의 언어로, 그리고 다시 21세기의 픽셀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 고요한 기록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뜻밖에도 '향기'에 압도된 로마인들의 지독한 욕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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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리니우스의 <박물지(Naturalis historia>를 영어 번역본 <세계의 역사> 필레몬 홀랜드 번역, 런던, 1601년. (출처: 인터넷 아카이브) |
| ⓒ 퍼블릭 도메인 |
플리니우스는 이 방대한 작업을 위해 무려 2000권 이상의 고대 문헌을 참고했으며, 500여 명의 저자를 인용했다. 비록 현대 과학의 잣대로 보면 황당한 미신도 섞여 있지만, 당시 로마인들에게 이 책은 곧 세상의 모든 것에 관한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사치스럽고 논란이 되었던 주제가 바로 제13권에 기록된 '향수'다.
플리니우스는 향수를 향해 서슬 퍼런 독설을 내뱉는다. 그는 향수가 인간이 고안해낸 가장 비합리적인 소비라고 믿었다.
"향수는 사치 중에서도 가장 쓸모없는 것이다. 보석은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고, 옷은 오래 입을 수라도 있지만, 향기는 뿌리는 즉시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 짧은 즐거움을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한다. 심지어 향수를 사용하는 본인보다, 그 향기를 맡는 타인이 더 이득을 본다. 정작 향기를 풍기며 지나가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향을 내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는 심지어 향수를 사용하는 본인보다, 그 향기를 맡는 타인이 더 이득을 본다는 점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당시 로마 귀족들은 플리니우스의 충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향수를 사용하는 부위에서 기상천외한 창의성을 발휘했다.
"이제 로마인들은 몸에 향수를 바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해, 발바닥(Soles of the feet)에까지 향수를 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군가의 연회에 초대받았을 때, 자신의 발에서 향기가 나게 하여 타인의 코를 즐겁게 하려는 의도이다."
이는 당시 로마의 연회 문화와 관련이 깊다. 비스듬히 누워 음식을 즐기던 로마인들에게 발은 타인의 코와 가장 가까운 신체 부위 중 하나였고, 그곳에서조차 향기가 나길 원했던 것이다. 당시 로마의 노예들은 주인의 발을 씻긴 뒤, 고가의 향유를 정성스럽게 발라주어야 했다.
전쟁터의 칼 끝에도 서린 향기
사치는 단지 민간에만 머물지 않았다. 죽음이 오가는 전장조차 향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플리니우스는 군대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보라, 군인들조차 투구와 창끝에 향수를 묻혀 전장에 나간다. 승리의 기쁨을 고통의 현장에서도 향기로 즐기겠다는 오만함이다. 로마의 위대한 승리가 향유 냄새에 가려지는 꼴을 보라."
거친 땀 냄새 대신 화려한 향료 냄새를 풍기며 적을 베는 행위, 그것은 자신이 단순한 병사가 아닌 고귀한 로마 시민임을 증명하려는 몸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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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 시대의 유리 향수병 웅구엔타리움(Unguentarium). 플리니우스가 기록한 끈적한 향유인 '웅구엔툼'을 담았던 용기다. 로마인들은 이런 작은 병에 든 향유를 몸뿐만 아니라 발바닥에까지 발랐다. (출처: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Open Access) |
| ⓒ 퍼블릭 도메인 |
고대 로마의 향수는 '웅구엔툼(Unguentum)'이라 불리는 형태였다. 이는 오늘날의 연고나 걸쭉한 오일에 가까운 제형으로, 올리브유나 발라노스유 같은 식물성 기름에 향료를 녹여 만든 것이었다. 액체처럼 공중에 뿌리는 것이 아니라 피부에 직접 바르고 스며들게 했기에, 그 향기는 훨씬 묵직하고 은밀하게 신체에 머물렀다. 특히 플리니우스가 기록한 '레갈레 웅구엔툼(Regale Unguentum, 왕의 향유)'의 레시피를 보면 왜 그것이 금값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향유에는 무려 27가지 성분이 들어간다. 베이스가 되는 발라노스유를 비롯해 코스투스, 아모뭄, 카시아, 시나몬, 몰약 등 희귀한 약초들이 아낌없이 섞인다. 여기에 색을 내기 위해 주홍색 염료까지 더해지니, 이는 그 자체로 액체로 된 보석이나 다름없다."
로마인들이 이토록 끈적이고 점성이 높은 웅구엔툼 형태를 선호한 이유는 지속성 때문이었다. 플리니우스는 이러한 복잡한 혼합물이 결국은 자연의 순수함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독설을 내뱉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료를 끓이고 숙성 시키는 기술적인 정교함에 대해 수 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서술했다. 비난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 마치 현대의 럭셔리 브랜드를 바라보는 냉소적인 전문가의 시선과도 같다.
고서를 통해 들여다본 로마의 풍경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종이는 디지털 픽셀로 변했지만, 사라질 무언가에 영혼을 맡기는 인간의 본능은 변하지 않았다. <박물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당신이 지금 뿌리고 있는 그 향기는, 진정 당신을 증명하고 있는가?
*이 글은 시카고 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 Penelope 프로젝트 의 고전 문헌 디지털 아카이브를 참고하여 플리니우스의 <박물지(Naturalis Historia)> 1601년 영문 번역본(Philemon Holland 역)을 바탕으로, 필자가 직접 주요 대목을 발췌하고 현대적 의미로 편역 하여 작성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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