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지른 절벽 위, 멋진 자세 취하면 박수 쳐주는 곳

문진수 2026. 3. 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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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서부 탐방기 ①] 영험한 기운이 샘솟는 치유의 땅, 세도나

낯선 세상을 향한 동경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인지 모릅니다. 인간의 때가 덜 묻은 태고의 자연을 느끼고 싶어 2026년 3월 3일부터 10일까지 미국 중서부 지역의 협곡(canyon) 여러 곳을 다녀왔습니다. 현지에서 보고, 관찰한 것들을 몇 차례 나누어 소개하려 합니다. <기자말>

[문진수 기자]

세도나(Sedona)는 애리조나주에 있는 인구 1만 명의 작은 소도시다. 애리조나주는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약 3배(29.5만㎢)에 달하며, 남쪽은 사막이 북쪽은 고원지대가 펼쳐져 있다. 세도나는 사막과 고원 사이에 있고, 평균 고도가 1300미터라 연중 온화한 날씨를 유지한다. 그랜드 캐니언, 엔텔로프 캐니언 등 미 서부 지역을 탐방하는 여행객들이 빠뜨리지 않고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연간 방문객 수가 4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 세도나 위치 구글 지도에 표시
ⓒ 문진수
피닉스(Phoenix)에서 차로 두 시간을 달려 세도나에 들어서자 거대한 바위산들이 병풍처럼 도시를 감싸고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붉은 바위의 나라'라는 별칭답게 산과 바위들이 온통 오렌지색이다. 사암(砂巖) 속에 들어있는 철 성분이 공기에 노출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과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암석층이 대략 3억 5천만 년을 거쳐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1900년 초 백인들이 발을 들이기 전, 이 지역은 나바호, 야바파이, 아파치 등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던 땅이었다. 몸이 아프면 이곳을 찾아와 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특별한 기운을 느꼈다는 사람도 많다. 일행 중에도 배에서 내렸을 때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울렁증을 호소한 이가 있었는데, 모두가 같은 증상을 경험하진 않았다.

과학적으로 엄밀히 검증된 건 아니지만, 지역 곳곳에서 볼텍스(vortex)라 불리는 에너지 파동이 감지된다고 알려져 있다. 볼텍스는 유체의 난류 회전운동을 지칭하는 물리학 용어다. 지구가 내뿜는 강력한 에너지가 회오리바람처럼 소용돌이치며 상승한다는 뜻이다. 이 영향 탓인지 몰라도 이곳에서 자생하는 향나무들은 나선형으로 자란다고 한다.
▲ 종 바위(bell rock) 인근에서 자라는 향나무 몸통이 나선형으로 휘어 있었다.
ⓒ 문진수
아침 일찍 일어나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악마의 다리(Devil's bridge)로 향했다. 깎아지른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다리에서 찍은 사진들이 사회관계망을 통해 유포되면서 유명해진 장소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시간 반쯤 걸었을까. 평탄한 탐방로가 끝나고 가파르고 좁은 길을 따라 바위산을 10분쯤 오르니 길게 늘어선 인간 띠가 보인다. 순서를 기다리는 줄이다.
절벽 사이에 좁고 긴 다리가 놓여 있다. 아래는 수직 절벽이다. 모골이 송연하다. 자기 차례가 된 사람이 다리로 건너가 자세를 취하면 다음 차례가 사진을 찍어준다. 무서울 법도 한데 사진을 찍는 표정들이 무척 밝고 편안해 보인다. 다리 중간에 선 후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멀리서 볼 때와 달리 다리 폭은 상당히 넓은 편이었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도 아닌데 지레 겁을 먹고 있었던 거다.
▲ '악마의 다리' 위에서 찍은 사진 다리 아래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 설지원
멋진 자세를 취하는 이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격려하며 응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세도나에 들릴 기회가 생기면 꼭 방문해 보시길 권한다. 짜릿한 기분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덤으로 인생 사진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비수기에다가 아침 일찍 서두른 탓에 대기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방문객이 많은 계절에는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인파가 많다고 한다.

석양빛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하산길에, 탐방로 한쪽 모퉁이에서 사람들이 쌓아둔 것으로 보이는 돌탑을 발견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돌로 탑을 쌓는 건 공통된 습성인 모양이다. 조심스레 돌 하나를 집어 탑 위에 올렸다. 모래로 만들어진 사암인데도 돌은 무척 단단했다. 탑 주변에서 메뚜기들이 뛰었다. 메마르고 건조한 땅에서도 키 작은 야생화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 악마의 다리 탐방로에서 발견한 돌탑들 모래로 만들어진 돌임에도 무척 단단했다.
ⓒ 문진수
거대한 바위 틈새에 세워진 예배당(Chapel of the Holy Cross), 세도나에서 가장 기(氣)가 센 곳이라는 종 바위(bell rock)를 둘러보고 해 질 무렵 석양으로 유명한 전망대(Airport Mesa)를 찾았다.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기울면서 맞은편 바위산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붉은 산이 붉게 물드는 장면이 일품이었다. 이윽고 하늘에 붉은 양탄자가 길게 띠를 이루며 펼쳐졌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 에어포트 메사 전망대에서 촬영한 노을 사진 붉은 양탄자를 겹겹이 깔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 설지원
석양빛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일행은 주변이 어두워질 때까지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다가 전망대를 내려왔다. 늦은 저녁을 먹으며 세도나에서 경험한 일들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층 건물들 사이로 뉘엿뉘엿 사라지는 밋밋한 석양빛만 보다가 진한 빨간색 물감으로 칠한 하늘을 보니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든다고, 누군가 말했다.

세도나는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치유의 땅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누군가는 신비한 영적 체험을 위해, 누군가는 도시 생활에 찌든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단학(丹學) 창시자인 이승헌 선생이 설립한 명상센터도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해마다 이곳에서 요가 축제가 열리고 명상 등 웰니스(wellness) 관련업이 성황이다.

유명 관광지들과 마찬가지로 세도나도 과잉 관광(over tourism)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집값 상승, 교통 혼잡,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보러 온 사람들로 자연이 망가지는 현상은 어디서든 쉽게 발견된다. 지구의 역사를 간직한 땅. 자연이 만든 붉은 바위의 고장이 인간에 의해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길.
▲ 세도나 관광청이 추천하는 숨겨진 명소 탐방 위치 (sedona’s secret 7) www.visitsedona.com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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