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에서 강원도까지, 가슴 떨리는 마지막 압권

나일영 2026. 3. 1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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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선택한 도전이 주는 쾌감에 대하여... 함께 '별바라기볼렛길'을 걷다

[나일영 기자]

지난 12일, 충청북도 충주에서 국토 종주의 마지막 도인 강원도 땅 원주시 부론면에 들어섰다. 해남 땅끝점에서 도보 국토종주를 시작한 지 34일 만이다. 강원도 땅을 밟은 다음날인 13일은 문막읍까지 걷는 일정이었다. 문막으로 가는 정해진 길이 있음에도 국토종주의 뜻을 보다 더 진하게 충족하기 위한 결정을 했다. 지금은 잊힌 길을 통해 문막에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전국의 길을 여기저기 찾아 걷던 나로선 오래 전부터 많이 궁금했던 길이 '별바라기볼렛길'(2019년 여주시 조성)이다. 세종천문대가 있는 청정 지역의 특징을 길 이름에 녹여낸 길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잘 모르는 길이 되었다. 수풀이 덮이고 새 장애물이 생겼을 수 있다.

목적지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면 이 같은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한발 한발 내딛는 '걷기'라는 행위는 목적지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목표를 완성하기까지 제한된 거리와 시간 안에 어떻게 걸었고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가 중요하다. 그것이 힘든 과정일수록 성취감은 증폭된다. 그래서 고민 끝에 용단을 내렸다. 같이 걷는 단원들께 취지를 설명하니 힘든 모험길이 될 줄 알면서도 오히려 더 좋아했다.

물길 따라 모여들던 곳
▲ 부론독립만세기념비 물길 따라 경제와 여론의 중심이 됐던 부론면은 원주의 3.1 독립만세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 (사)한국사람길
부론초등학교 앞에서 출발해 부론면사무소 앞길로 들어섰다. 부론면은 1919년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원주시 전역으로 확산되는 시발점이 된 곳이다. 면사무소 앞엔 '부론독립만세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세상에 우연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 일은 없다. 부론면이 원주 독립만세운동의 시발점이 된 분명한 이유가 있다.

충청북도, 경기도, 강원도의 3도의 접경지인 원주 부론면은 경기도와 충청북도를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위 아래로 걸친 중심에 있다. 강을 통한 수운이 절대적이던 옛날, 영서 영동의 남부 지방의 세곡을 모아 저장하던 흥원창이 부론면에 있었고 자연히 경제의 중심이 됐다. 사람이 모여들다보니 여론도 모여 나라의 정책 입안에 이 지역의 여론을 듣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면 이름이 '부할 부(富)'와 '논할 논(論)'의 부론면이 된 이유다.

사람 따라 소식이 가장 먼저 도착하고 여론이 가장 먼저 형성되던 곳에서 3.1운동 소식을 들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분이 끓어올라 만세 운동에 나섰을 것이다. 부론면의 법천리, 손곡리, 노림리가 남한강, 섬강, 청미천의 세 물이 모이는 세물머리의 흥원창이 있던 중심 지역이라는 것이 원주 독립만세운동의 시발점이 된 이유를 말해준다.

면 소재지 거리에서 남한강변으로 나서면 둑방길에서 여주를 대표하는 테마길인 여강길(2코스 세물머리길)을 만난다. 하늘은 더없이 화창하다. 한없이 들뜬 기분으로 걷다 보니 이내 흥원창 조운선전망대에 도착했다. 이곳은 떠나기 싫을 만큼 가슴이 확 트이는 전망을 선사한다. 남쪽에서 올라온 남한강이 북쪽에서 내려온 섬강을 만나 서쪽으로 돌아 흘러가는 이곳에서 서쪽 방향인 정면에 끝간데 없이 앞으로 뻗어있는 물줄기를 바라보니 이 물길을 따라 가면 한달음에 서울일 것 같다.
▲ 여강길 2코스 세물머리길 원주시 부론면의 둑방길은 남한강이 섬강과 만나고 다시 청미천과 만나 서울로 흘러가는 세물머리의 경승을 볼 수 있는 길이다.
ⓒ (사)한국사랆길
▲ 세물머리 돈도, 사람도, 여론도 모였던 세물머리에서 남한강을 바라본다. 좌편에 남쪽에서 올라온 남한강과 우편에 북쪽에서 내려온 섬강이 만나 정면(서쪽) 방향인 서울로 흘러간다.
ⓒ (사)한국사람길
별바라기볼렛길

이곳에서 남한강과 작별하고 섬강변으로 걷는다. 둑방길이 아닌 섬강변 고수부지의 오븟한 길에서 어느 길보다 편안함을 느낀다. 이 길로 섬강교를 건너면 편안함은 끝나고 오늘 작정한 모험이 시작된다.

3도 접경지를 온 몸으로 느낀다고 해야 할까. 어제 남한강대교로 충북에서 강원도로 들어왔고, 오늘 섬강교를 따라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들어선다. 섬강교 남쪽으론 섬강의 고요한 물줄기가 흐르고, 북쪽으론 자산과 푸른산 사이의 절벽을 뚫고 나온 영동고속도로가 섬강 위를 시원스레 달리고 있다. 우리는 북쪽 절벽 아래 섬강변으로 길을 헤치고 걸어가야 한다.

"길이 어딘지 보이지가 않네."
"사람들이 다녔던 길이니 가면 있을 거야."

뒤에서 들리는 기대 반 걱정 반의 단원들이 대화를 뒤로 하며 섬강교를 건너자마자 교각 쪽으로 유턴한다. 강변으로 내려서는 계단이 남아 있다. 일부는 깨진 가파른 길을 내려서 강변가 돌밭 사이로 요즘은 좀처럼 걷기 힘든 자연 강변을 걷는다. 청정 섬강이 바로 한발자국 옆에 어떤 인공의 장애물도 없이 친구가 되어 흐르고 있다. 자연 강변을 맛보는 모험의 첫 번째 쾌감에 빠져든다.
▲ 별바라기볼렛길 섬강을 피부로 체감하는 자연 강변을 걷고 강안 절벽 위에 1971년 세워진 성락정에 들른다.
ⓒ (사)한국사람길
돌밭을 지나니 사람들이 걸었던 옛길의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앞엔 강가에 돌출된 암반 절벽 위에 세워진 정자가 보인다. 옛길의 흔적을 쫓아 비탈을 오른다. 풀이 무성한 여름과 가을엔 길을 찾기 힘들 것 같았다.

절벽 위 성락정

정자에 올랐다. 시멘트 골조로 단단히 지어진 정자다. 기둥에 머릿돌처럼 박아넣은 돌판에 '1971년 5월 25일 준공, 설립자 농장주 동보 김종락(東寶 金鍾洛)'이라고 한자로 쓰여있고, 성락정(聖洛亭)이라고 쓴 현판도 도리에 박혀 있다.

어렵던 시절, 길도 없는 이곳 섬강변의 암벽 위에 정자를 세운 사연은 모르겠지만 우린 강 바로 위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특혜 같은 경관을 즐긴다. 옛부터 변함 없었을 섬강 주변의 푸르디 푸른 우리 산천의 일품 경치가 펼쳐진다.
▲ 성락정에서 바라본 섬강 태기산에서 발원한 섬강이 영동을 잇는 영동고속도로와 섬강교 밑을 흘러 남한강에 합류하는 강 하류의 풍경을 여과 없이 바라본다.
ⓒ (사)한국사람길
오른편엔 이 정자를 세울 땐 없었을 영동고속도로가 섬강 위를 가로지르고, 그 밑을 흘러 남한강과 만나는 섬강의 모습을 여과 없이 바라본다. 문경 고모산성에서 영강과 준령들로 꽉 찬 자연 속에 문명의 상징 철도와 도로를 함께 내려다보던 진남교반의 감동이 되살아나는듯 하다. 아무도 올 수 없는 강변에 서서 순수한 우리 산천과 문명의 길을 동시에 바라보는 감동이 이 길에서 얻은 두번째 쾌감이다.
가시나무가 주인 자리를 찾은 비탈을 헤치며 다시 강가로 내려선다. 이번엔 폭신폭신한 풀밭길이 반긴다. 멀리서 볼 땐 상상할 수 없었던 포근함이다. 우리는 문명에 익숙해져 실내에서 인위로 만들어진 포근함을 찾지만, 설렘이 더 강력한 자연이 준 포근함을 느낀다. 아, 이렇게 자연 강변이 준 세번째 쾌감을 맛본다.
▲ 별바라기볼렛길3 문명이 주는 인위적 포근함이 아닌, 설렘이 더 강력한 자연이 주는 포근함을 느끼며 섬강변을 걷는다.
ⓒ (사)한국사람길
과거엔 우리 고유의 각종 꽃풀들이 채웠을 가마섬유원지 쪽으로 들어서니 발밑이 온통 가시박으로 점령돼 있다. 가시박은 2009년 6월 환경부에 의해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된 외래 식물이다. 한해살이라 비록 지금은 죽어 있지만 오뉴월이 되면 이곳에 잠자던 수십수백만의 가시박 종자가 다시 줄기를 뻗어 올릴 것이다. 이곳만 아니라 하천을 따라 흘러 식생 지역을 빠르게 확산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가시박 줄기를 밟으며 예전에 볼렛길을 조성할 때 설치했던 데크 전망대에 올라섰다. 가마섬의 너른 들판 끝에 섬강이 보이고 그 뒤를 섬강을 호위하듯 가루개능선이 서 있다. 우리 산천의 변함없는 아름다움에 다시 빠져든다. 횡성과 평창의 경계인 태기산(1261m)에서 발원한 섬강은 심한 감입곡류를 이루며 수많은 경승지를 만들어내는 강원 영서 지방의 대표적 강이다. 섬강의 하류에서 자연 유원지를 형성한 하중도의 경관을 맛봤다.
▲ 가마섬유원지 없어진 길의 데크전망대에 올라 차박 성지였던 가마섬유원지와 섬강을 바라본다. 우리의 풍요롭고 포근한 자연을 지키는 것이 급선무가 되었다.
ⓒ (사)한국사람길
조선 후기 실학의 선구자 한백겸

별바라기볼렛길이 끝난 이곳 부평리 입구엔 우리나라 역사 지리서의 창시인 <동국지리지>(1615)의 저자 한백겸의 묘와 신도비가 서 있다. 한백겸은 주체적 합리적 역사 인식에 기반해 고증과 실증적 방법으로 역사를 연구해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조선 정치사에서 가장 잔혹한 피바람을 불러왔던 기축옥사의 발단인 정여립 모반사건의 주인공 정여립의 시신을 거둬 정성스럽게 장사 지내 준 인물이다. 이 때문에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당쟁에 끼어들지 않고 관직도 사양하고 학문 연구에만 전념했던 그를 기리는 신도비를 뜻하지 않게 마주할 수 있었던 행운이 이 길을 걸으며 얻은 네 번째 쾌감이다. 부평리 어귀의 버스 정거장 부스를 바람막이 삼아 좌판을 깔고 단원들이 둘러앉아 간식을 먹었던 행복한 쾌감도 빼놓을 수 없다.

42번 국도가 등골산 아래의 부평터널(1999년 준공)로 지나가면서 이곳 등골산과 삿갓봉의 등골고개를 구불구불 넘어 강원도로 들어서던 운치는 사라졌다. 대신 우린 빈 채 남아있는 옛 도로를 전세 낸듯 걸으며 고개 넘어 다시 원주로 들어섰다.

섬강이 넓고 기름진 충적평야를 형성한 곳의 중심에 문막읍 반계리가 있다. 드넓은 들판 한가운데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인다. 길게 뻗은 원문로를 따라가다 원심천을 넘으면 왼쪽에 반계리 은행나무가 있다. 높이 32m(아파트 11층 높이), 나무 둘레 16m에 이른다.

삼국시대부터 살아온 은행나무

단풍철이 아니어도, 멀리서도 그 큰 위용에 경외감이 저절로 인다. 수령을 800~1000년으로 추정하다 과학의 발달로 2024년에 1317살로 밝혀졌다. 올해 나이 1320살로 삼국시대부터 살아온 국내 최고령 은행나무다. 그런데도 시들어가기는 커녕 줄기와 가지가 균형미를 이루고 해마다 무성하게 단풍을 피우며 자라는 기상이 압권이다.

은행나무는 공룡보다 일찍 신생대에 지구에 나타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화석' 같은 나무다. 수령도 길어 많은 전설을 간직하며 신목으로 역할해 왔다. 경외심을 갖고 영험한 기운을 받으러 단원들이 은행나무 돌이에 나섰다.

돌이를 하고 있는데 감격으로 가슴이 뛴다. 땅끝 해남에서 걸어와 만났으니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존재 자체만으로 영감과 감동, 위로와 위안을 줄 수 있는 개체를 만나는 것, 이날 이 길 위에서 얻은 마지막 쾌감이다. 이 길을 선택해서 오지 않았다면 경로 상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 반계리 은행나무 1320년 수령의 반계리 은행나무를 만나는 것은 단풍철이 아니어도 경외감과 영험한 기운을 받기에 충분하다. 잎이 없어 힘차게 뻗어간 맨 얼굴의 나무 줄기를 보는 맛이 일품이다.
ⓒ (사)한국사람길
▲ 은행나무돌이 한트 국토종주 단원들이 반계리 은행나무의 영험한 기운을 받는 은행나무돌이를 하고 있다.
ⓒ (사)한국사람길
많은 감흥을 남기며 걷기가 종료됐다. 우리는 살면서 동기가 무엇이든 예정에 없던 선택을 할 경우가 많다. 그 선택이 뜻밖의 경험과 감동을 주는 것은 기존에 알지 못했던 새로움이 주는 것일 수 있지만, 예상되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벗어난 미지의 도전이 주는 보상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이 원래 그렇다. 하루 앞,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을 살면서 모든 걸 아는 듯 자만하는 인생의 궤적에서 나와 가끔은 아무것도 의지할 것 없는 벌거숭이가 돼볼 필요가 있다. 모르는 것, 가보지 않았던 것을 열어젖히는 도전이 바로 그런 것이다.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길로 모험을 택했던 도전은 참 많은 것을 주었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 느낀 감동과 자연이 준 포근함, 뜻하지 않은 위인을 추억할 수 있었던 행운, 길가에 앉아 단원들과 느낀 행복, 영감과 위로를 주는 비상한 존재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었다. 힘들게 해서라도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경험하며 더 많이 기억에 남기는 도전은 결국 나의 일부가 되어 내 삶의 자양분으로 살아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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