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화약고에 뛰어들면... 80년 간의 패턴 살펴보니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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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7일(현지시간) 쿠웨이트에서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미군 병사 6명의 유해가 미국으로 송환되는 가운데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열린 이송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야구 모자를 쓰고 서 있다. |
| ⓒ UPI.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쿠르드족의 참전을 '고맙지만 됐다'는 말로 사양하더니,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이 용이하지 않게 되자 한국·일본·중국·프랑스·영국에 군함 파견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에까지 요구할 정도로 다급한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 시각으로 지난 1월 23일 공개된 '2026년 미국 국가방위전략'에 "지금의 이란 정권은 지난 수십 년간에 비해 약하고 더 연약하다"라는 문구가 있다. 이처럼 미국은 이란 정권을 수십 년만의 최약체로 평가했는데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그 같은 과도한 자신감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미국은 이란 지도부의 리더십이 아니라 자국의 세계 리더십을 더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로 미국은 안정적인 석유 확보를 돕는 방법으로 동맹국에 대한 리더십을 유지해왔다. 이런 구도 속에서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막지 못하면, 동맹국들은 부득이 다른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런 빈틈을 이란 정부가 파고들고 있다. 14일 CNN은 '위안화로 거래되는 원유를 실은 선박에 한해 호르무즈 해협을 푸는 방안'이 이란 정부 내에서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동맹국들이 상황의 돌파구를 미국 밖에서 찾도록 하려는 유인책으로 볼 수 있다.
군사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렇게 보기 힘든 이 상황을 미국은 홀로 감당하지 못해 한국까지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한국이 트럼프의 확전에 휘말려 전쟁에 가담하면 시련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은 앞선 사례들을 통해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
국무부와 국방부가 주도하는 미국의 세계정책이 갖는 약점이 있다. 자국의 영향력을 세계 주요 지역에 골고루 안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미국이 어느 한 곳의 전투나 전쟁에 개입하면 그곳이나 다른 곳에서 혼란이 일어나는 양상이 지난 80년간 거의 예외없이 계속 되풀이됐다.
미국의 세계정책이 갖는 약점
미국이 그리스내전(1946~1949)에 참여하는 우파 군대를 지원하는 사이에, 동아시아에서는 1946년부터 중국공산당과 중국국민당의 국공내전이 전개됐다. 1947년부터 제주에서 반미 분위기가 고조되다가 1948년에 4·3항쟁이 발생했다.
여러 곳에 신경이 분산된 미국은 그리스 좌파와 제주도민들은 억눌렀지만, 전략적 이익이 가장 큰 국공내전에서는 실패했다. 중국대륙을 친미 지역으로 만들려 했던 미국의 의도가 수포로 돌아간 일은 세계질서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전쟁(1950~1953) 시기에 미국은 베트남과 프랑스의 전쟁인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1946~1954)에도 개입했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힘을 쏟아부은 결과로, 호찌민은 프랑스를 상대로 좀 더 유리하게 전쟁을 수행했다. 이 시기에 중국은 티베트 침공(1950.10.7.)을 개시해 대(對)서방 대결에 필요한 거점 하나를 확보했다.
미국이 1964년 8월부터 베트남전쟁(1960~1975,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에 신경을 집중하자, 북한은 사상 최대의 무장공비 침투작전을 벌여 1960년대 후반에 한반도 긴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또 미군의 푸에블로호를 나포하고 EC-121기를 격추해 미국의 관심을 일시적으로 한반도에 집중시켰다. 1968년과 이듬해에 발생한 이 두 사태에 맞서 미국은 금방이라도 전쟁을 벌일 듯이 했지만, 베트남에 발이 묶여 어정쩡한 모습으로 물러났다.
이런 시기인 1967년에 이스라엘은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을 일으켜 가자지구·서안지구·골란고원 등을 점령했다. 동맹국 이스라엘이 자국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데도 미국은 이를 억제하기는커녕 도리어 원조를 했다.
지미 카터 행정부가 인권외교를 수단으로 박정희 정권을 압박하던 때인 1979년 1월 16일에 친미 지도자인 팔레비 이란 국왕이 이집트로 망명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신경이 이란혁명으로 쏠린 사이에, 한국에서는 10·26사태와 12·12쿠데타가 연이어 발생했다. 두 사태의 당사자인 박정희·김재규·정승화·전두환 모두 미국의 동향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관심이 중동 쪽에 과하게 분산되지 않았다면 이런 사태가 쉽게 일어나기 힘들었다.
그해 12월 27일, 소련은 바브라크 카르말 전 아프가니스탄 총리의 쿠데타를 지원했다. 서방세계에서 '소련군의 아프간 침공'으로 과장되게 지칭하는 이 사건을 통해 소련은 중동과 남아시아의 경계인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켰다.
이란과 아프간 등에서 전개되는 이 같은 정세 변화는 한국 인권에 대한 카터 행정부의 열의를 떨어트렸다. 이는 다른 대통령도 아닌 카터 대통령 때의 미국이 5·18 광주 학살을 지원한 배경을 설명해 준다. 인권외교를 통해 한국 반공정권의 과속 질주를 막고 이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카터 행정부의 정책은 이로써 파탄을 맞이했다.
한국이 신경 써야 할 지역은 한반도
1990년대 초반은 탈냉전의 영향으로 인해 냉전국가인 미국의 절대적 국력은 약해졌을지라도, 소련 해체(1991.12.25.) 때문에 미국의 상대적 위상은 높아진 시기다. 이 시기에도 미국은 두 마리 토끼가 동시에 뛰어나가는 상황 전개 앞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걸프전쟁(1990~1991)으로 인해 미국의 관심이 중동에 집중되는 동안에, 동북아에서는 북한이 핵 개발을 진전시켜 1993년에 제1차 북핵위기가 시작됐다. 이보다 앞선 1992년에는 발칸반도의 보스니아에서 분쟁이 발발해 1995년까지 지속됐다.
2002년 10월 5일 개시된 제2차 북핵위기는 미국이 또다시 중동에 올인하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그해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전쟁(아프간전쟁)을 일으키고 뒤이어 2003년에 이라크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이 중동에 집중할 때 제1차 북핵위기를 일으켜 이 나라를 곤란에 빠트린 북한은 9·11 테러 이후에도 동일한 방식을 구사했다.
미국이 중동에 올인하는 사이에 한반도는 핵 위기를 두 번이나 겪었다. 이로 인한 미국의 손실도 적지 않지만, 아무래도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다. 한반도에 해빙 기운이 감돌던 199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초반에 한국은 평화정착의 기회를 놓쳐 냉전 비용을 여전히 지불해야 했다. 이 점은 북한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국을 무작정 따라가는 안보정책의 대가였다.
트럼프의 무역전쟁과 패권정책으로 인해 전 세계가 미국을 다시 생각하는 상황에서 이번 전쟁이 발발했다. 지금까지는 '이란전쟁'이지만 '중동전쟁'이 되기 쉬운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 여타 지역에서 대형분쟁이 촉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이 어느 한 곳에 집중하면 그곳이나 다른 곳에서 반드시 사고가 발생했던 지난 80년간의 패턴을 트럼프가 막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신경 써야 할 지역은 당연히 중동이 아니라 한반도다. 우크라이나와 전쟁하는 러시아 군대도 툭하면 동해에 나타나고, 중국과 일본의 긴장도 사상 최고로 고조되고 있다. 딸과 함께 미사일 발사를 참관하는 김정은의 동향도 주시 대상이다. 지금 한국이 미국을 뒤따라 중동 화약고에 뛰어들면 한반도에서 예측불허의 상황이 일어날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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