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우리가 잊고 있던 이야기

주환선 2026. 3. 1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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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그림쟁이의 기록실] 조선을 도운 일본인을 알리려는 이유

[주환선 기자]

독립운동가 일러스트를 그리며, 자연스레 외국인 독립운동가들 역시 조사하게 되었다. 당시 조선을 도운 외국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서양에서 온 선교사들이었다. 여기에 더해 중국 군벌과 장제스를 포함한 국민당 인사들까지, 조선의 독립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인물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서양의 선교사들은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고, 병원을 세워 마을의 건강을 돌봤다.

선교사로, 교사로, 의사로, 그리고 간호사로 헌신한 이들은 단순한 푸른눈의 이방인이 아니라 조선을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많은 이는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투옥된 조선인을 면회하거나 은밀히 도왔다. 양화진에 남은 묘비는 그들의 흔적이다. 일부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지만, 이름 없이 기억에서 사라진 이들이 훨씬 많다. 직접 독립운동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조선과 조선인을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일본인도 있었다는 사실에 자연스레 관심이 향했다.
▲ 그 시절 조선인을 도운 일본인 조선의 고아를 보살펴준 소다 가이치와 다이치 치즈코. 관동대지진때 조선인들의 목숨을 구해준 오카와 스네키치, 조선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선교한 노리마쓰 마사야스와 오다 나리지. 조선인을 아낀 교육자 죠코 요네타로. 경성제국대학에서 반제국주의를 외친 미야케 시카노스케. 조선의 도예를 사랑한 아사카와 다쿠미
ⓒ 주환선
박열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 변호인이자 인권운동가였던 후세 다쓰지는 이미 잘 알려진 이름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기억해야 할 일본인들이 있다. 조선의 고아를 평생 돌본 소다 가이치와 아내 우에노 다키에, 목포에서 고아들의 어머니라고 불린 다우치 치즈코, 윤학자 여사, 관동대지진 때 약 300여 명의 조선인을 학살로부터 구한 요코하마 쓰루미 경찰서장 오카와 스네키치. 조선의 도예를 사랑한 아사카와 다쿠미와 노리타카 형제, 조선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선교한 노리마쓰 마사야스와 오다 나리지, 조선인을 아낀 교육자 죠코 요네타로, 조선 노동자들과 함께하며 식민정책을 비판한 이소가야 스에이지, 경성제국대학에서 반제국주의를 외친 미야케 시카노스케. 학교를 세우고 조선인들 편에서 교육했던 이마무라 타다오는 지금도 그 학교에 3대째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제국의 국민이면서도 제국에 저항했다. 조선을 사랑했고, 조선인과 함께했다.

그들의 행동은 과격하거나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확실한 양심의 표현이었고 행동이었다. 역사는 언제나 거대한 사건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름 없는 누군가의 양심과 실천이 시대를 조금씩 바꿔간다. 오늘의 한국은 과거와 다르다. 'K–'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문화와 예술, 기술과 과학이 세계를 무대로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장은 외형만이 아니라 과거를 바라보는 깊이에서도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근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깊은 상처와 피해의식을 떠올린다. 그것은 당연한 감정이지만, 동시에 그 상처를 통해 이루어낸 결과로 바라볼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

우리는 더 이상 세계 속에서 과거의 피해자로만 남아있지 않다. 긴 어둠을 지나온 우리는 이제 타인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문화의 힘은 단순히 인기나 유명세를 넘어선 정신과 생각에 미치는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진 그 힘으로 과거를 정직하게 마주하고, 한일 관계를 조금 더 온기 있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일본 안에서도 일제의 부당함을 직시하고,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진실을 기록하고, 사과를 외친다. 정치와 외교가 갈등의 틀 안에서 정체될 때, 그들은 조용히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가고 확장해간다.
▲ 하야시 에이다이 일러스트 일제 강제동원의 만행을 추적하는 일본인 기록작가 故 하야시 에이다이
ⓒ 주환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들의 진심이다. 역사를 직시하는 용기, 그것이 바로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믿는다. 과거를 부정하거나 지워버리는 대신, 사실 위에서 서로의 선택과 책임을 분명히 보는 일, 그 위에서 관계를 새로 짜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과정 자체가 두 사회를 성숙하게 만든다.

독립운동가와 조선을 도운 외국인들의 삶을 그림으로 남기는 일은 단순한 예술 행위가 아니다. 잊히지 말아야 할 마음의 흔적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특히 당시 일본인이 식민지 조선을 위해 자신의 나라에 반대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리는 한 장의 엽서가 그런 의인들을 잠시라도 현세로 불러내어, 그들의 시선과 선택을 오늘의 독자 앞에 다시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이미지들이 한일 양국이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특히 우경화 되는 일본인의 마음에 미미하더라도 힘이 된다면, 이 작업을 계속할 이유로는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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