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전 3월, 서울 성남고 학생들이 거리로 나선 까닭

최진섭 2026. 3. 1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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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17일 서울 성남고 학생 민주의거... 3.15 부정선거 이후 서울서 벌어진 최초의 학생시위

[최진섭 기자]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마산 3.15 민주의거가 일어난 지 66년이 흘렀다.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집권 자유당은 온갖 부정선거를 자행했으며 경남 마산의 시민, 학생은 이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7명이 사망하고, 87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날 시위에 참여했던 김주열 마산상고(입학 예정) 학생이 실종됐는데, 4월 11일 마산의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어부의 갈고리에 걸려 발견됐다. 김주열의 눈에는 최루탄이 박혀 있었고, 그의 참혹한 주검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의한 3.15 마산 의거 직후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집단시위를 벌인 성남고 학생들. 4백여 명의 학생이 "부정선거 다시 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 100여 명이 경찰서로 연행됐다.
ⓒ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
마산의 3.15, 서울의 3.17 의거

인간에게 역사의식은 중요하다. 사회적 존재라 할 수 있는 인간에게 역사의식이 있고 없음에 따라 인생관, 가치관은 크게 차이가 난다. 역사의식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떠한 사회현상을 역사적 관점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악하고 그 변화 가운데 주체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의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제대로 된 역사의식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교육이나 독서, 특별한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세대에 따라 역사의식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사건도 상이하다. 1950년 한국전쟁, 1960년 초의 4·19혁명과 5.16쿠데타, 1980년 5월 광주항쟁, 1987년 6월항쟁, 2025년 소위 '빛의 혁명'을 겪은 사람은 그 사건에서 촉발된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갖게 된다.

1977년 초 서울 동작구 대방동의 성남고에 입학한 나는 몇 가지 계기를 통해 '4월 혁명'의 세례를 받았다. 4.19를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간접 체험과 독서를 통해 4월 혁명에 관한 역사의식을 갖게 됐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교과서와 선전물을 통해 강제로 주입한 반공 이데올로기, 허위의 역사의식으로 세뇌됐던 10대의 까까머리 학생은 4.19의 진상을 알게 되면서 참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역사의식을 지닌 청소년으로 거듭나게 됐다.

필자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에는 국어나 국사, 그 어느 과목의 교사도 4.19를 언급할 수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면 학도호국단의 일원으로 총검술을 배우던 그 시절엔 오직 반공만이 지고지순의 가치였으며, 교과서 속에도 진정한 민주주의는 없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민주주의는 한국식 민주주의 즉 박정희 독재를 넘어설 수 없었다.

이처럼 권력이 눈과 귀를 가리던 시절 성남고등학교 정문 옆에는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의 기념물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바로 '3.17 의거탑'이었다. 교과서를 통해 제대로 된 4·19 정신을 배울 수는 없었지만 몇몇 동문 선배 교사를 통해 3.15 부정선거에 맞섰던 선배들의 무용담을 살짝 전해 들을 수 있었다.
 2023년 늦가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성남고등학교 교정에 있는 3.17민주의거 기념탑(1961년 건립)을 방문한 필자. 필자는 성남고 재학시절 3.17 의거탑을 통해 4.19에 대한 역사의식을 지니게 되었다.
ⓒ 최진섭
침묵이 강요되던 유신정권 시절에 제대로 듣지 못했던 3.17의거의 활약상은 그 후 50년 가까이 흐른 뒤 접한 < 3.17 민주의거 65년사 >(인물과사상사, 2025)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학업에만 전념하던 성남고 학도들은 3.15 부정선거 뒤 삼삼오오 모여서 "불의가 정의를 짓밟는데 보고만 있어야 하나?" , "우리나라가 비민주국가의 나래로 떨어지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목숨을 던져 자유당 독재정권에 항거하자" , "마산 학생 살인사건에 책임을 묻자"며 울분을 토해내고 목소리를 드높였다. < 3.17 민주의거 65년사 >에 나오는 내용을 적어본다.

성남고 4백여 학생 "부정선거 다시 하라" 외치며 시위

선언문 작성, 플래카드 제작, 구호문 전단지 작성, 선언문 낭독자 지정 등 준비할 사항들이 많았는데, 선언문과 구호는 운영위원장(박효성)이 학생회 임원들의 협조를 받아 현 시국 상황에 맞는 내용으로 작성하기로 하였다.
결국, 플래카드는 "의에 살고 의에 죽자", "백만학도여 총궐기하자"고 광목천에 쓰고, "경찰은 마산 학생 사살사건을 책임져라", "부정선거 다시 하라" 등의 구호를 만들었는데 구호문(전단지)은 학생과 시민 등에게 뿌려야 하기에 많은 양이 필요했다.
플래카드와 구호 전단지는 극비리에 만들어야 하므로 등사나 인쇄를 할 수도 없어서 결국 손으로 직접 쓰기로 했다. 3월 17일 오전 수업 시간 중에 공책을 잘라 여러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쓰도록 했으며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도록 열심히 썼다.(124~125쪽)

이렇게 교훈 "의에 살고 의에 죽자"를 적은 플래카드와 전단지를 준비한 학생들은 3월 17일 오전 수업이 끝난 뒤 영등포 영보극장 앞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집회 시작 후 20분 정도 지나 도착한 경찰은 공포탄 3발을 쏘고 방망이를 휘두르며 무자비하게 진압을 시작했는데, 참여 학생 400여 명 중 100여 명이 경찰서로 연행됐다.

4월 혁명 1년 뒤 교정에 세운 3.17민주의거탑

3.17의거는 3.15 부정선거 이후 서울에서 벌어진 최초의 학생시위였다. 이는 4·19 혁명이 타오르게 한 불씨 중의 하나라 하겠다. 성남고는 4·19 혁명 다음 해인 1961년 봄, 학교 교정에 3.17민주의거탑을 건립했으며, 이렇게 건립선언문을 적었다.

조국의 민주주의를 무참히 도살하고 겨레의 자유와 민권을 유린하던 이승만 독재의 횡포가 드디어는 3.15 정·부통령 선거의 협잡으로 또다시 폭군정치를 꾀하려 하던 단기 4293년 3월 15일 독재에 항거하여 봉기한 마산의거 학생들에게 무자비한 경찰은 총검으로 그들을 사살 투옥하기에 이르자 이에 격분한 성남학생들이 다음날인 3월 17일에 수도 서울에서는 최선봉으로 정의와 민주 수호의 깃발을 높이 들고 경찰의 잔인성과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의거를 감행하였음은 역사적인 4월 혁명의 도화선이었으니 이는 정의에 살고 정의에 죽는 민주 수호이 전위 성남 의거 학도들의 그 찬연한 보람과 갸륵한 혁명 정신을 영세에 기념하고 후세에 귀감이 되게 하기 위하여 여기 성남 학도 3.17민주의거탑을 세우는 것이다.
-단기 4294년 성남 중고등학교

고등학교 입학할 당시 나의 정치의식은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러했듯 백지상태와 마찬가지였다. 3.17의거탑의 영향으로 '4.19 학생의거'에 우호적이었고, 4.19의 역사에 대해 어렴풋하게 떠올려보기도 했지만,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그 생각이 깊이 있는 역사의식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다 고2 때 헌책방에서 < 4·19혁명 1주기 기념문집 >이라는 제목의 책을 구해 읽은 뒤 4.19는 내게 진리의 푯대와 같은 역할을 했다. 기념문집에는 1년 전 4.19 시위에 앞장선 대학생, 대학교수의 선언문과 시위 전개에 관한 기록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5.16이 일어나기 한 달 전에 나왔기에 언론출판의 자유를 맘껏 누리고 펴낸 문집이었다.
 2025년 3월 서울 동작구 성남고등학교 강당(밀레니엄홀)에서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 당시 4대 회장 최윤재)가 주최한 3.17민주의거 65주년 기념식이 재학생과 동문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당시 느낌은 "전율을 느꼈다", "감전됐다", "피가 역류했다"라는 말이 어울렸다. 그날 이후 4.19는 내게 절대선이었고, 3.17 의거탑은 성스럽고 자랑스러운 상징물이었다. 거꾸로 4.19를 짓밟은 5.16과 박정희 장군은 악의 표상이 되었다. 서점에 가서 4.19 관련 책을 뒤지다 참여파 대표 시인인 김수영의 시집 <거대한 뿌리>를 발견했고, 스무 살까지는 이 시집을 끼고 살았다. 시 '거대한 뿌리'에 나오는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라는 구절을 되뇌이며 민주주의를 희망했다.

성남고 동문들은 2014년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를 세웠다. 기념사업회는 창립 회장 이종석(1, 2, 3대), 4대 최윤재, 5대 조범구 회장을 거치는 동안 3.17민주의거사료집을 발간하고, 기록 동영상을 제작했으며, 3.17민주의거상 제정, 3.17민주장학금 지급 등의 활동을 꾸준히 벌이고 있다. 2021년 서울시의회는 3.17 민주의거를 서울시 기념일로 하는 조례를 공포했으며, 2024년 12월에는 3.17 선언문을 낭독했던 구 영보극장(현 영보주차장) 앞에 '3.17민주의거 터' 표지석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기념사업회는 창립 직후부터 3.17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제정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 중인데, 2025년 11월 이광희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현재 국회 행안위에 계류 중이다.

새로 쓴 교가 "3.17의 정신 받아 자라나는 우리들"
 2024년 12월 서울 영등포 시장 부근(구 영보극장 앞)에 설치된 ' 3.17민주의거 터' 표석. 1960년 3월 17일 영등포 영포극장 주변에서 성남고 학생 4백여 명이 "의에 살고 의에 죽자"라는 교훈을 적은 플래카드를 앞세운 채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현 5대 회장 조범구)는 해마다 성남고 강당(밀레니엄홀)에서 재학생과 동문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매년 신입생에게 3.17민주의거의 의미와 정신을 알려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며칠 전 3.17의거기념사업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선배에게서 3월 17일에 열리는 66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기념식에 참석하기 전에 2022년 새로 가사를 정했다는 교가부터 배워야겠다. 새 교가 2절에는 3.17의거를 기리는 "의에 살고 의에 죽는 자랑스러운 성남인, 삼일칠의 정신 받아 자라나는 우리들"(김정호 작사)이란 가사가 새로 들어갔다. 역사의 주체로 4월 혁명의 불씨가 된 선배를 떠올리며, 후배 학생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가사가 아닐 수 없다.

작년(2025년)에는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당시 4대 회장 최윤재)에서 65주년을 기념하여 < 4·19 혁명의 도화선-3.17민주의거 65년사>라는 책을 발간했다. 책의 맨 앞에는 동문 시인 박철이 쓴 '이것은 신화가 아니다'라는 시가 실렸다. 시의 일부를 옮겨 본다.

그날 교문을 나서고
그날 거리를 누비고
4.19의거의 씨앗은 잎을 틔웠다.
우리는 자유와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
그것은 신화가 아니다.
 서울 성남고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에서 2025년 펴낸 <4.19혁명의 도화선-3.17민주의거 65년사>(인물과사상사). 330쪽의 이 책에는 3.17 민주의거의 역사적 배경, 1960년 3.17의거 주역의 증언, 기념사업회의 활동 등에 대해 상세히 실려 있다.
ⓒ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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