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마다 여자 숙소에 오는 남자...고흥 굴까기 작업장서 벌어진 일
'계절노동자 제도'는 한국 농어번기의 고질적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단기 외국인 고용 제도입니다. 하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 브로커의 불법 개입과 부당이득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계절노동자들이 인권침해와 임금체불 등으로 고통받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계절노동자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기획은 계절노동자 제도의 문제점을 열 편에 걸쳐 심도 있게 다루면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고기복 기자]
"A가 매일 밤마다 찾아와서 인원 확인해."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로즈(가명)는 설마 했다. 여자가 열다섯이나 함께 사는 숙소에, 그것도 매일 밤 10시 넘어서 삼십 대 초중반의 남자가 찾아온다고? 긴급한 이유가 있어서 어쩌다 들를 수는 있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었다. 밤마다 여자 숙소를 찾아오는 남자는 자신을 "Sir(써)"라고 부르라며 계절노동자 관리자 노릇을 하던 브로커 A였다. 굴까기 작업장에서 일일 할당량을 채우려면 손을 잽싸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하던 그의 방문은 '이해할 수 없는 관리'였다. 새벽 2~3시에 다시 일어나야 하는 계절노동자들에게 밤 10시는 막 단잠에 들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몇 명이 누웠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며 "이사, 달라와, 따뜰로..." 따갈로그어로 '하나 둘 셋...' 머릿수를 헤아리는 순간은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여자들이 빽빽하게 자고 있는 숙소에 아무렇지 않게 젊은 남자가 밤마다 드나드는 사실에 점차 익숙해졌지만, 불이 꺼지면 CCTV 불빛이 여전히 깜박인다는 사실이 가져오는 불쾌함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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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 숙소 누군가 인기척이 나면 계절노동자들은 담요로 얼굴을 가렸다. 8인이 1인당 월 31만원을 주고 사용하는 방이다. |
| ⓒ 로즈 |
계절노동자들이 머무는 숙소 거실에는 CCTV가 달려 있었다. 누가 언제 나가고 들어오는지, A의 허락 없이 밖에 나가는 사람이 있는지, 모두 그의 감시망에 놓여 있었다. 지난 설을 앞두고, 로즈는 단지 마트에 혼자 갔다 왔다는 이유로, 다시 한 번 단독행동을 할 경우 '필리핀으로 추방시켜 버리겠다'는 말을 들었다.
8개월을 한국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입국했는데 석 달도 지나지 않은 상태라, 이는 로즈에게는 미래를 쥐고 흔드는 협박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버스를 타고 고흥읍내에 갔다 왔다는 이유로 혼이 난 적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일터로 향하고, 돌아와 잠든 순간까지 감시당하는 생활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문밖을 한 번 나설 때마다, CCTV에 A의 눈이 따라왔다. 심지어 A는 누가 어떤 포스팅을 올리는지 개인 소셜미디어까지 살펴보았다. 동료들은 불만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도록 학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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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절노동자 숙소 CCTV 계절노동자들의 출입을 브로커가 항상 감시했다 |
| ⓒ 로즈(익명) |
입국 전부터 이상한 기색은 곳곳에 있었다. 브로커는 근로계약서를 두 명의 고용주와 작성하게 했다. 왜 두 개를 쓰는지, 왜 서로 다른 내용이 있는지 정확히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이건 한국 정부용, 이건 회사에서 필요해서"라는 말만 돌아왔다.
근로계약서에 적힌 근로개시일 전에는, 사용자가 노동을 시켜서 안 되고, 계절노동자도 노동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계절노동자들은 그 시간에도 일을 했다. 근로개시일보다 열흘이나 빠른 입국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계절노동자들을 일찍 입국시킨 브로커는 인력사무소 사장처럼 계절노동자들을 불법 파견하며 돈을 벌었다.
실제로 로즈의 첫 달 급여 내역서에는 네 군데 사업장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같은 사업주라도 근로계약서의 굴까기 작업장만 아니라 유자 농장에서 일을 시키기도 했다. 어업 계절노동자에게 농장 일을 시키기도 했을 정도로 근로계약은 무의미했다.
그 구조는 강제노동이자 인신매매에 가까운 것이었다. 취업을 알선해 주겠다며 빚을 지우고, 비자와 체류를 빌미로 "말을 안 들으면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하고, 실제로는 법이 허용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일을 시키는 것. 브로커와 고용주가 계절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동안, 공공기관은 뒤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근로계약서는 요식행위였다. 서류상으로는 보호처럼 보였지만,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막아 주지 못했다. 브로커는 로즈가 필리핀에 있을 때부터 출국 준비를 이유로 온갖 서류를 요구했다. 여권, 가족관계 증명, 학력, 건강검진, 통장 사본까지. 로즈는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한국행 여부를 쥐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는 로즈만 관리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와 같은 날 입국한 79명, 그리고 그보다 먼저 들어와 있던 사람들까지, 브로커는 100여 명의 계절노동자를 한꺼번에 관리하고 있었다.
브로커 A가 개설한 채팅방에는 100여 명의 계절노동자들이 모여 있었다. 매일 밤, 알림 소리가 울렸다. 불법파견을 지시하는 문자였다. 브로커는 작업장마다 들어오는 작업 물량을 보고, 그날그날 사람 수를 정했다. 오늘은 이 작업장으로 몇 명, 내일은 저 작업장으로 몇 명. 계절노동자들이 어느 작업장에서 일하게 될지, 몇 시에 시작할지, 심지어 언제 끝날지까지 그가 결정했다.
"내일 새벽 2시, 로즈, 토레스, ㄱ작업장.
새벽 2시 반, 크리스, 산토스, ㄴ작업장.
새벽 3시, 아리엘, ** 사장네 작업장"
브로커는 계절노동자들을 '한 농장 노동자'가 아니라, 굴까기 작업장들의 물량에 따라 이리저리 배치하는 인력풀처럼 다루고 있었다.
로즈가 일하던 곳은 굴까기 공장이었다. 굴 껍데기의 납작한 쪽을 위로 향하게 손바닥에 놓고, 두 껍데기 사이를 칼로 비틀어 생굴을 꺼내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고무장갑 위에 고무로 코팅된 목장갑까지 껴도 손가락은 시렸고, 날카롭고 뾰족한 칼로 굴 껍데기 안의 속살을 긁어내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손가락에는 마비가 왔고, 손등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산더미같이 쌓인 굴 꾸러미 앞에 열 시간 넘게 자리 잡고 앉으면 엉덩이는 차갑고 허리는 끊어질 듯이 아팠다. 익숙지 않은 작업을 반복하면서도 월급을 생각하며 참았지만, 결과는 허무했다.
근로계약서에는 월 209만 원이 적혀 있었다. 로즈는 그 숫자를 보고 큰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첫 달 급여는 20만 원대였다. 첫 달에 실제 일한 날이 18일 정도라 해도, 하루 12시간이 넘고, 12시간 중 3시간은 야근이었으며, 손가락이 저리는 고통을 참으면서 굴을 깠는데도, 수중에 들어온 돈을 보고 실망을 금할 길이 없었다.
A는 일한 만큼 받는 도급제라고 말했다. 1킬로그램의 생굴을 까면 3150원이던 단가는 두 번째 달부터는 3000원으로 깎였다. 연도가 바뀌며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하지만, 브로커는 계절노동자들이 받는 단가를 후려쳤다. A는 1일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로즈에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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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달 급여 네 개 사업장 이름이 적혀 있고, 브로커에 의해 매일 배정되었다. |
| ⓒ 로즈 |
'한국에서 모두의 임금이 오르고 있다는데, 왜 우리의 임금만 내려가고 있을까.'
최저임금법. 국적이나 체류자격으로 차별해서는 안 되며, 임금 지급 방식이 시급이든 월급이든, 성과급이든, 최저임금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강행규정은 현실과 달랐다. 무엇보다 잔인했던 것은, '1일 목표치'라는 숫자였다. 그는 매일 목표량을 들이밀며, 미달이면 근무처를 바꾸거나 사실상 해고할 수 있다고 했다. 도급제, 성과에 따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지급하면서 1일 할당을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아무도 항의할 수 없었다.
"성과가 안 나온다."
"목표치 못 채우면 필리핀으로 돌려보낸다."
이 말은 A가 자주 쓰던 말이었다. 근로기준법에는 해고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인사권도 남용해서는 안 된다. 고용주가 아닌 제3자가 인사권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계절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에서 정당함을 판단하는 사람은 A 한 사람뿐이었다. 로즈에게 법은 종이에 적힌 의미 없는 문장이었고, A의 말은 당장 내일 강제 귀국 비행기 표가 되어 돌아올 수 있는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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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굴까기 작업장 계절노동자들이 1킬로그램당 3000원을 받고 일하면서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했다 |
| ⓒ 로즈(익명) |
'계절노동자'라는 제도적 착취, 누가 만들었나
A는 직업안정법상 허가 없이 이주노동자를 알선하고, 숙소·출퇴근·실적을 통제하면서 사실상 감시·구금에 가까운 지배력을 행사했다. 그럼에도 행정기관은 이들을 적극 적발·처벌하기는커녕, 계절노동자 제도 운영의 파트너처럼 대우하며 현장을 사실상 방치해 왔다.
시민단체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관리감독을 해야 할 고흥군청은 현재까지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주무부서인 법무부는 반복적인 인신매매 피해자 발생에도 브로커의 온상일 수밖에 없는 전문기관 설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계절노동자 제도의 주무부처인 법무부와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지자체가 근로개시일 이전 입국-불법 파견 노동 강요–최저임금 미만 도급제–성과 미달을 빌미로 한 해고와 강제귀국 협박이라는 전형적인 인신매매 패턴을 알고도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이는 단순한 '관리 소홀'이 아니라 제도적 공범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특히 시민사회가 이 사안을 '현대판 노예제이자 인신매매'라고 규정하며 고용노동청, 수사기관에 고소·고발을 진행한 상황에서도, 관계 기관이 여전히 제도 개선과 엄정한 형사 처벌에 소극적이라면 국가 스스로 인신매매금지 의무를 위반하는 수준의 인권 후진국 행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사건은 예외적 사고가 아니라 전국 곳곳의 계절노동자 고용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후 '지도·점검'이라는 요식 행위가 아니라, 브로커 이익 구조를 해체하고 도급제 오남용을 금지하는 등 피해자 구제와 브로커 처벌 등에 관한 실천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계절노동자제도는 국가가 공인한 인신매매 플랫폼 구조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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