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환대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문턱 낮추는 것”

김동규 2026. 3. 16.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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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 신목회열전] <108> 김강현 우리좋은교회 목사
김강현 우리좋은교회 목사가 지난 11일 서울 강동구 교회 본당에서 교회 역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강동구 우리좋은교회(김강현 목사) 1층 카페에 들어서자 빵과 커피의 향기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한쪽에는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이 놓여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신앙 서적과 에세이, 인문 신간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학생들은 노트북과 책을 펼쳐 놓고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 몇몇 주민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교회라기보다 동네 문화공간에 가까운 풍경이다.

우리좋은교회 카페 모습.


김강현(56) 우리좋은교회 목사는 교회의 이 공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끼리만 좋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또 이웃에게도 좋은 교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목사는 교회사를 전공한 학자이자 성경교육 사역자였다. 2013년부터 성경 교육 기관 사역에 합류했고 이후 광신대 신학대학원 교수직도 병행했다. 김 목사는 “교회사에 따르면 한국교회의 힘은 성경 우선, 성경 중심의 토대에서 나왔다”며 “그 철학이 지금의 목회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기관 사역과 대학 강의에 힘써온 그가 한 교회 담임목회자로 방향을 튼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목회를 늘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생터성경사역원의 대표 역할을 맡아 조직을 정비하고 목회자 네트워크를 세우며 사역 기반을 넓혀 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구조적 한계를 절감했고, 2024년 그 사역을 정리했다.

이후 김 목사 앞에는 여러 선택지가 놓였다. 국내외 한인교회와 사역 현장에서 제안이 이어졌다. 그 무렵 김 목사에게 외부 설교 요청으로 연락해 온 곳이 지금의 교회였다.

한 차례 설교로 끝날 줄 알았던 인연은 예상보다 훨씬 길게 이어졌다. 당시 교회는 한동안 재정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담임목사가 공석인 기간이 이어지면서 공동체 분위기도 다소 위축된 상태였다. 성도 수는 20명 남짓으로 줄어든 위기였다.

김 목사는 교회 개척을 포함해 여러 목회 방향을 고민했던 터라 청빙 요청을 고사할 생각이 컸다고 했다. 그러나 교회의 상황과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움직였다. 결국 그는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2024년 11월 김 목사는 이 교회에 부임했다.

‘우리 이웃에게 좋은교회’ 명패와 사진이 전시된 공간.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기존 이름에 얽힌 갈등의 기억을 털어내고, 교회의 방향을 새로 세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교회 이름을 ‘우리좋은교회’로 정했다. 우리끼리만 좋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좋은 교회, 이웃에게 좋은 교회가 되자는 뜻이다.

교회가 수직적 신앙만 강조한 채 지역사회와 단절돼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도 있었다. 김 목사는 “예수님이 찢으신 휘장을 우리가 다시 이어붙이며 높은 울타리를 쌓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동네 안으로 더 낮게, 더 편하게 스며드는 교회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변화도 뒤따랐다. 교회는 건물을 공동체 회복과 지역 개방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수개월간 리모델링을 거쳐 만든 ‘드림하우스’에는 현재 청년 2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목회자 자녀와 선교사 자녀가 다수다.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올라온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주거 공간과 신앙 공동체를 함께 제공하려는 취지다.

교회 분위기도 달라졌다. 20명에 머물던 성도는 1년 만에 100명 규모로 늘었고, 그중 절반가량이 청년층이다. 청년 주거 공간은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예배와 공동체의 마중물이 됐다. 청년들이 찬양팀과 여러 사역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면서 예배 분위기도 한층 유연해졌다.

주일 오전 11시 예배와 별도로 드리는 주일 오후 2시 청년 중심 예배는 더욱 자유로운 찬양과 기도로 채워진다. 동시에 교회 운영에서도 청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별도 기획위원회를 만들었다. 당회 구조 밖에서도 실제 교회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려는 시도다.

1~2층 카페와 세미나실은 주민과 기관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간이 됐다. 구청의 시니어 일자리 면접, 주민 모임, 각종 워크숍과 출판 행사도 이곳에서 열렸다. 김 목사는 “상대방이 편안히 머물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는 것, 굳이 묻지 않아도 될 것들을 묻지 않는 것,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것이 교회의 환대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의 미래가 이런 ‘강소형 지역교회 모델’에 달려 있다고 봤다. 거창한 이벤트나 숫자를 목표로 삼는 성장주의보다, 지역 안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한 결과로 부흥이 따라오는 교회가 건강하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교회가 동네 사랑방처럼 기능하면 좋겠다”며 “동네가 교회를 편하게 여기고 먼저 찾아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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