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근 (6) 전도지 무료 나눔으로 첫 사역… 대구 천금중앙교회 개척

전병선 2026. 3. 1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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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금선교회의 첫 사역은 전도지 배포였다.

개척 교회와 미자립 교회에 전도지를 무료로 나누어 주는 일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기도해야 합니다." 얼마 뒤 부목사님이 나를 찾아와 "집사님, 교회를 개척하려 합니다.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렇게 마련한 3000만원으로 대구 외곽 신흥 개발지에 120여평 규모의 예배 공간을 얻어 교회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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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미자립교회 무료 전도지 봉사
어려운 신학생들에겐 장학금 지급
섬기던 교회 부목사 도와 교회 개척
1980년 6월 8일 천금중앙교회 창립 예배를 드리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이종근 장로.


천금선교회의 첫 사역은 전도지 배포였다. 개척 교회와 미자립 교회에 전도지를 무료로 나누어 주는 일이었다. 당시 대구에는 세 개의 큰 신학교가 있었다. 장로교 합동 측의 대구신학교(현 대구대신대학), 통합 측의 영남신학교(현 영남신학대학), 고신 측의 경북신학교(현 고신대와 통합)였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신학생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농어촌 교회나 개척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신학생들이 선교회 사무실 앞으로 찾아왔다. 주말 사역지로 내려가기 전에 전도지를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사무실 앞에는 전도지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전도지는 큰 인기를 끌었다. 전국적으로 1200여 교회가 이 전도지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생활이 어려운 신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했고 미자립 교회 32곳도 꾸준히 지원했다.

그 무렵 나는 본 교회인 대구서문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1978년 청·장년회 회장을 맡아 섬기고 있었다. 그때 청년회를 지도하던 부목사님이 있었다. 설교와 목회 방향이 담임목사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었다. 밥으로 비유하면 한 분은 쌀밥을 주셨고 다른 한 분은 잡곡밥을 주시는 것 같았다.

교회 안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성도들은 담임 목사의 말씀이 좋다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부목사의 말씀이 좋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목사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한 장로님이 전화를 해왔다. “청년회를 잘 부흥시키고 있는 청년 담당 목사님을 교회가 내보내려 하는데 청년회가 가만히 있으면 되겠습니까?” 장로님은 청년회가 나서서 이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부목사는 담임목사의 목회 방침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회 임원들에게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기도해야 합니다.” 얼마 뒤 부목사님이 나를 찾아와 “집사님, 교회를 개척하려 합니다.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했다.

개척 장소를 물었더니 본 교회 근처라고 했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개척을 하시려면 교회에서 멀리 가시고요. 그것도 3년 정도 담임을 해보시고 개척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때 돕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 후 부목사님은 다른 교회로 부임했고 교회는 다시 평안해졌다. 2년 뒤 그 목사님이 다시 찾아왔다. “집사님, 개척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셨지요.”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오신 탓에 불평이 있었지만 “좋습니다. 해봅시다”라고 답했다. 여러 곳에 부탁해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련한 3000만원으로 대구 외곽 신흥 개발지에 120여평 규모의 예배 공간을 얻어 교회를 개척했다. 천금중앙교회로 지금의 대구경운교회다. 교회는 빠르게 성장했다. 1년쯤 지나자 장년 성도 150명이 모였다. 그러나 오해도 따랐다. “저 집사, 장로 되려고 교회 개척했대.” 이런 말들이 교회 안팎에서 돌았다. 나는 변명하지 않고 이렇게 기도했다. “세상 사람들이 몰라도 하나님만 알아주시면 됩니다.”

시간이 지나자 교회는 안정됐고 나는 본 교회로 돌아갔다.

정리=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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