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집 통해 사람을 보여주다… “냉장고 보면 먹고 사는 건 다 똑같아”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추억과 함께 취향의 내공이 겹겹이 쌓여있는 집.’
‘브랜딩의 귀재’ ‘외식업계 미다스의 손’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브랜드 전문가 노희영의 집을 소개한 영상엔 이런 제목이 붙어 있다. 노희영은 이 영상에서 추억과 취향이 한가득 담긴 자신의 집을 소개한다. 소박하지만 진귀해 보이고, 평범하지만 독특한 사연을 간직한 물건들이 잇달아 소개되고, 영상 아래엔 구독자의 호평이 담긴 댓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노희영의 집을 다룬 영상 외에도 이 유튜브 채널엔 누군가의 독특한 개성과 범상치 않은 안목을 엿볼 수 있는 콘텐츠가 수두룩하다. 유튜버 홍혜주가 운영하는 이 채널의 이름은 ‘소비요정의 도시탐구’(이하 도시탐구). 특별해 보이는 이들의 평범한 일상까지 확인할 수 있어서인지 도시탐구의 구독자는 20만명이 넘고, 대다수 영상은 수십만회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홍혜주는 어쩌다 유튜버의 길로 들어섰으며 도시탐구의 ‘운영 철학’은 무엇일까.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인생 스토리부터 들려줬는데 간추리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과거 홍혜주는 대기업에서 홍보·마케팅 분야를 담당한 직장인이었다. 그는 회사에 다니면서 취미 삼아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회사원들이 흔히 하는 말 중 하나가 ‘나 유튜브 할 거야’잖아요. 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유튜브를 운영하려면 정말 부지런해야 하기에 쉽게 엄두를 낼 수 없죠. 저 같은 경우엔 이것저것 사는 걸 좋아했는데, 그런 걸 걸 아카이브 형태로 촬영해놓고 싶다는 생각에 채널을 만든 케이스예요. 누구랑 약속한 것도 아닌데 일과가 끝나면 혼자 8편씩 찍고 그랬죠.”
이런 성실함 덕분인지 구독자는 늘었고 그 수가 5만명쯤 됐을 때 홍혜주는 회사를 그만뒀다. 구독자 5만명으로는 큰 이익을 거둘 수 없었지만 당시 그는 반나절 고민하다가 퇴사라는 ‘인생의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회사를 계속 다니거나 유튜브를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회사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유튜브를 선택하게 됐죠. 아침에 출근해 고민하다가 퇴사를 결정한 뒤 그날 오전에 바로 사직서를 냈어요.”
홍혜주의 이 같은 추진력은 타고난 낙관적인 태도에서 기인했다. 직장 생활을 할 때 그는 무슨 일을 겪든 ‘어떻게든 잘 되겠지’라고 생각하곤 했다.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했던 셈이다. 그랬기에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심한 불안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고 한다. 출근을 하지 않아 생긴 아침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도시탐구가 처음부터 ‘온라인 집들이’ 형태의 콘텐츠에 집중했던 건 아니다. 시작은 명품 리뷰였다. 홍혜주는 당시 촬영에 쓸 명품을 사는 데만 수억원을 썼다고 한다. ‘소비’가 좋아서 시작한 유튜브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쇼핑=노동’처럼 느껴졌다.

“제가 진짜 사고 싶어서 산 물건을 기록해 놓으려고 만든 채널인데 보여주기 위해 소비하게 되니 물건 사는 일에 질리게 되더군요.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데도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구매가 늘었어요. 필요 없는 물건을 계속 샀던 거죠. 이것들을 처분하려고 플리마켓도 많이 했지만 집에는 계속 물건이 쌓였어요. 결국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홍혜주는 나름의 소비 철학을 세우게 됐다. ‘잘 산 제품이 집에서 잘 사는’ 형태를 띨 때 ‘좋은 소비’가 완성된다는 것. 그는 자신을 “실용성을 따지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원해서 산 물건을 실제로 잘 사용하는 경우가 ‘좋은 소비’라고 생각해요. 물론 남들 말만 듣고 필요 없는 물건을 사는 경험도 해봐야 그런 소비를 할 수 있게 되는 거겠지만요.”
명품 리뷰 콘텐츠에 스스로 흥미를 잃을 때쯤 떠오른 게 집 소개 콘텐츠였다.
“사람이 물건을 사는 데엔 저마다 이유가 있잖아요. 그 이유를 파헤치는 데 어떤 영상이 좋을까 고민했어요. 집 소개 영상을 찍으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서부터 집에 있는 모든 걸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전엔 어떤 물건을 ‘언박싱’하는 영상을 만들었다면 그때부터는 집을 언박싱하기 시작한 거죠.”
홍혜주는 집을 통해 누군가의 소비 생활과, 이를 통해 드러나는 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집을 도구로 사람을 인터뷰하겠다”는 생각이 지금의 도시탐구를 만든 셈이다.
유튜브에는 누군가의 집을 소개하는 채널이 넘쳐난다. 그렇다면 도시탐구가 이들 채널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홍혜주가 꼽는 차별점은 바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저는 누군가를 깊이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구독자에게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명품을 리뷰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써보지도 않고 단순히 예쁘다고만 하는 리뷰는 안했어요. ‘써보니 이렇더라’하는, ‘진짜 생활’이 담긴 이야기를 했었죠.”
실제로 영상에 담긴 그의 리액션에서 거짓된 반응은 느껴지지 않는다. 홍혜주는 출연자의 집을 둘러보면서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와아” “오오” 같은 감탄사를 내뱉곤 하는데, 이렇듯 자연스러운 반응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그가 세운 철칙은 이렇다. 촬영 장소가 정해지더라도 취재를 위해 미리 방문하진 않는 것. 즉 인테리어나 가구 등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촬영에 들어가는 것이다.
촬영이 시작되면 값비싼 사치품부터 소소한 식료품까지, 출연자의 일상 속 물건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이 방의 책상을 살피다가 교육관을 묻기도 하고, 대용량 칫솔을 발견한 뒤엔 생필품만큼은 넉넉히 사두는 편인지 질문하곤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출연자들은 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가령 집에 들어설 때부터 발가락 모양이 드러나는 실내화를 꺼내주고 집 곳곳에 발 모양의 장식품을 두고 사는 출연자가 있었다. 홍혜주는 “곳곳에 발 모양의 물건이 왜 이렇게 많아요?”라고 물으니 출연자는 “어머 정말! 내가 발을 좋아했나봐요”하며 놀라워했다.
출연자의 사연을 이끌어내기 위해 아는 걸 모른 척하는 경우도 많다. 홍혜주는 “출연자가 돋보여야 한다”며 “내가 아는 물건도 많이 나오지만, 그 물건에 관한 정보를 내 입으로 먼저 말하려고 하진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도시탐구에 담긴 영상들을 자세히 살피지 않은 이라면 이렇게 넘겨짚기 쉽다. 부유층이 자신이 가진 것을 과시하는 채널일 뿐이라고. 하지만 홍혜주는 “부자만 나오는 채널이 되는 걸 지양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쪽(부유층 콘텐츠)이 주목 받으면서 서운할 때도 있는데, 조회수가 적은 영상 중에 왜 이 채널을 만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그가 촬영할 때마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일까. 답은 “냉장고를 열어보는 순간”이다.
“100억원짜리 집이든 30만원짜리 월세방이든 먹고 사는 건 다 똑같잖아요. 부잣집 언니도 화장대를 자세히 살펴보면 엉망진창일 때가 많아요. 제가 이 채널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굳이 꼽자면 ‘누구나 똑같다’는 거예요.”
구정하 기자 g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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