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예루살렘의 야드바셈

2026. 3. 16.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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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산길을 오르면 예루살렘 언덕에 유대인 희생자 추모관 '야드바셈'이 자리하고 있다.

'이름의 전당(Hall of Names)'에는 600만 희생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의 삶이 역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음을 증언하는 공간이다.

야드바셈의 마지막 출구처럼 우리 역시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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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영삼
전 주이스라엘대사
고려대아연연구위원


텔아비브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산길을 오르면 예루살렘 언덕에 유대인 희생자 추모관 ‘야드바셈’이 자리하고 있다. 외관은 밝고 단정하지만 내부는 의도적으로 어둡고 절제된 공간이다. 그 안에는 한스럽고 가슴 저린 유물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이름의 전당(Hall of Names)’에는 600만 희생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의 삶이 역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음을 증언하는 공간이다. 조용히 촛불이 반사되는 ‘어린이 추모관(Children’s Memorial)’에서는 꽃다운 나이에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이 차례로 불린다. 추모관 전체가 한목소리로 말한다. “잊지 말자.”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있다. 음침하고 무거운 전시관을 빠져 나와 출구에 서는 순간, 푸른 하늘과 넓은 광야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인다. 그 강렬한 대비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잊지는 말되, 용서하자.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자.”

유대 민족의 생존 전략과 이스라엘의 외교 노선은 이 정신 위에 서 있다. 다당제 구조 속에서 단독 과반 정당이 등장한 적이 없고, 연립정부와 정권 교체가 반복되어 왔다. 국민의 정치적 스펙트럼도 극좌에서 극우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다. 그럼에도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말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기본 방향에는 여야 간 근본적 차이가 없다.

상징적인 일화도 있다. 과거 이스라엘 외교부는 외국 귀빈을 맞는 의전용 리무진으로 독일산 차량은 사용하지 않았다.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독일과의 외교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며 전략적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기억은 정체성으로 간직하되 외교는 오늘의 선택으로 내일의 지도를 그려야 한다.

이제 시선을 우리에게로 돌려보자. 기미 독립선언 107주년을 맞는 3월,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떠올린다. 일제의 만행과 민족의 수난, 의병과 독립군, 임시정부 요인들의 희생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들의 헌신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서 있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우리의 기념관도 과연 미래지향적인가? 혹시 원한과 복수의 과거 회귀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과거사가 국내 정치의 도구로 사용되며 국민 감정을 자극했던 시기가 있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일 정책의 기조가 흔들렸고, 일관성과 신뢰는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다. 외교가 국내 정치의 연장선에서 요동칠 때 국익은 쉽게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제 우리의 대일 외교도 중심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외교는 감정이 아니라 국익의 함수다. 물론 ‘잊지 말자’는 원칙은 분명하다. 군 위안부 문제나 독도 주권 문제에 있어서는 역사적 진실을 분명히 하고 추호의 양보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용서하고 함께 나아가는’ 결단도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외교 정책의 큰 틀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과거의 패자심리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한국의 1인당 소득은 이미 일본을 추월했다. 양국 간 상호 방문객은 연간 1000만명을 넘어섰고,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 역시 역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어쩌면 양국 국민은 이미 심리적 장벽을 허물었는지도 모른다. 정부만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카이치 정부가 국민의 절대적 지지 속에 우경화로 회귀할 가능성을 경계하되, 협력의 틀은 미래지향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야드바셈의 마지막 출구처럼 우리 역시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다만 잊지는 말자. 그러나 증오에 머물지 말자. 용서하고,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 우리의 외교 전략도 성숙한 국민 의식에 걸맞은 방향으로 정립해 나가야 한다.

마영삼
전 주이스라엘대사
고려대아연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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