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힘’ 알리고 떠난 현대철학 거장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를 대표하는 하버마스가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AFP=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6/joongang/20260316000314007sjkp.jpg)
‘공론장’ 이론을 정립한 독일의 대표 현대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세상을 떠났다. 96세. 독일 출판사 주어캄프는 14일(현지시간) 하버마스가 이날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 주 슈타른베르크에 위치한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하버마스는 유럽 진보 운동의 사상적 뿌리인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다. 신마르크스주의 기반의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주장한 ‘비판이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했다.
1929년 독일 뒤셀도르프의 중산층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난 하버마스는 나치 독일 치하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스위스 취리히 대학, 독일 본 대학 등에서 철학·심리학·독일 문학·경제학 등을 공부했고, 1950년대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1903~1969)가 이끌던 프랑크푸르트사회연구소에 들어가며 학문적 경력을 시작했다. 하이델베르크대와 프랑크푸르트대뿐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등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하버마스가 마르부르크대에 교수자격 논문으로 제출한 『공론장의 구조변동』(1962)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하버마스는 이 책에서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부르주아 사회에서 형성된 ‘공론장’(Public Sphere)의 변화 과정을 좇으며 시민의 토론과 여론 형성이 민주주의의 중요 기반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후 하버마스는 사람들의 의사소통 과정에 주목했다. 그는 저서 『의사소통 행위 이론』(1981)을 통해 우리 사회가 정치적 또는 경제적 힘뿐 아니라 합리적 대화와 소통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고 민주주의와 통합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언어와 의사소통에 관심을 둔 데에는 선천적 구순구개열로 언어 장애를 겪은 자신의 개인적 경험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하버마스는 이상적 개념만 제시하는 철학자는 아니었다. 타계 직전까지도 현실 정치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현실 참여형 지식인이었다. 1980년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역사적 과오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과거사 청산’을 독일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9년 독일 통일 당시엔 동독을 서독의 틀에 맞추는 방식으로 급속히 이뤄진 통일 과정에 결함이 있다는 소신을 밝혔다. 또 자신이 박사 논문 지도를 한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가 200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자 서울지법에 송 교수 석방을 위한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유럽연합(EU)의 정치적 통합을 강조해 온 ‘유럽주의자’로도 불렸다. 2007년엔 EU 전체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투표를 할 것을 제안했다. 뉴욕타임스는 “하버마스는 세계 자본주의와 민족주의의 파괴적 영향력에 맞설 수 있는 최선의 균형추는 EU가 대표해야 할 통합된 국가 연합이라고 믿었다”고 분석했다.
![2024년 5월,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왼쪽)는 하버마스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오는 5월 하버마스의 최근 저술을 기반으로 열릴 국제학술대회에 관해 이야기했다. [사진 한상진 교수]](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6/joongang/20260316000315266nzhc.jpg)
1996년 하버마스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았다. 서울대를 시작으로 대구·광주 등의 학회에서 일곱 차례 발표했고 학생·교수들과 대화를 나눴다. 하버마스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내한 당시) 소탈하고 개방적이었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며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합의가 형성되면 그에 기초하여 나아야 한다는 ‘담론윤리’를 확립에 그치지 않고 실천했던 지성인으로 기억한다”고 소회했다.
하버마스의 이론은 지금 한국에도 유효할까. 1990년대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국내 학계에 소개한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의미에 대한 탐구는 하버마스 평생의 화두였다”며 “(그것이) 이 과학기술혁명 시대에 어떻게 지속 가능할 것인가는 하버마스의 시각에서 던질 수 있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버마스의 유족으로는 슬하의 두 자녀가 있다. 역사학자이자 교사인 아내 우테베셀회프트는 지난해 별세했고, 자녀 중 막내딸은 2023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최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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