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대만보다 타격 컸다…전쟁 장기화에 '동네북' 된 원화

중동 사태의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다시 1500원 선을 넘나들고 있다. 주요 통화 대비 원화 약세가 두드러지면서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환율 1500원 시대가 뉴노멀로 굳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15일 서울외국환중개 등에 따르면 이달 들어 2주간(3일~13일) 원·달러 평균 환율(주간 거래 종가 기준)은 1477원으로 월간 기준 1998년 3월(1488.87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13일 주간 거래 종가는 1493.7원이었고 야간 거래에서는 환율이 1500원 선에서 오르내렸다. 특히 9~13일 주간 평균 환율은 1481.2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하루 평균 환율 변동 폭도 16.1원으로 2010년 이후 가장 컸다.
이달 들어 원화 약세는 주요국 통화와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원화가치 하락률은 13일 기준 약 3.84%로 유로(-3.29%), 일본 엔(-2.39%), 영국 파운드(-1.85%)보다 컸다. 대만 달러(-2.43%), 중국 역외 위안(-0.79%), 인도 루피(-1.69%) 등 주요 아시아 통화보다도 하락세가 가팔랐다.
특히 같은 기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 상승 폭은 2.92%에 그쳤다. 이번 원화 약세가 단순한 전쟁 충격에 따른 달러 강세 영향만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선 중동 전쟁 여파로 치솟은 국제유가가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유가(브렌트유)는 13일 기준 배럴당 100달러(103.14달러)를 넘어섰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중화학공업 비중이 높고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도 70% 수준”이라고 말했다.
원화가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대표적인 ‘위험자산 통화’로 분류된다는 점도 약세 요인이다.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고 금융시장 개방도가 큰 개방경제로 글로벌 경기와 자본 흐름 변화에 민감하다. 전쟁이나 금융시장 불안이 커질 경우 투자자들이 먼저 매도하는 통화라는 의미다. 외환시장에서는 원화가 사실상 ‘동네북’ 취급을 받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국인 자금 흐름도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 최근 국내 증시는 반도체 수퍼사이클을 바탕으로 상승했지만, 과열 우려도 제기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중동 전쟁과 유가 급등이 겹치자 외국인 자금 이탈이 확대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이달 들어 외국인은 코스피시장에서 13조원 넘게 순매도했다.
문제는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한국 경제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국제유가 상승과 맞물리면 기업 생산비 부담도 커진다. 원자재와 중간재를 수입해 가공 수출하는 산업 구조에서는 환율 상승이 수출 경쟁력보다 비용 증가로 먼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에서는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환율이 1500원대에서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유가가 추가로 급등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돌파할 가능성도 크다”며 “다만 정부의 시장 개입 가능성도 있어 1500원 부근에서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환율 상승 흐름이 일방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LS증권은 보고서에서 “이란 사태 이후 환율이 1600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상승 우려가 커진 상황”이라면서도 “변동성 확대는 예상되지만, 펀더멘털 측면에서는 여전히 하락 압력도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이 유지되고 있고, 물가 상승이 아직 경기 둔화로 이어지는 단계까지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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