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 <고향>에 나오는 동척 대구지점은 지금 어디?

김명희 2026. 3. 1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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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동문동 4-16 신용보증기금 대구지점 건물

[김명희 기자]

 동양척식주식회사 본사
ⓒ 독립기념관
김윤식·김현 공저 <한국문학사>에 '한국 단편소설의 아버지'로 우러름을 받은 작가가 있다. 이 소설가는 장덕순의 <한국문학사>에도 '한국의 모파상'으로 극찬되었다. 그는 누구일까?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 〈빈처〉, 〈고향〉, 〈B사감과 러브레터〉, 〈술 권하는 사회〉 등과 장편소설 〈무영탑〉, 〈적도〉 등을 쓴 현진건이다.

현진건은 미완의 장편 〈흑치상지〉도 남겼다. 국가보훈부 누리집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현진건이 "1939년 소설 〈흑치상지〉를 연재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힘을 쏟았다"면서, "〈흑치상지〉는 백제 장군 흑치상지가 자기의 모국 백제가 망하자, 국가를 회복하려고 의병 3만을 결합해 당장 소정방에 항거하여 2백여 성을 회복했던 사실을 소재로 한 것이다. 〈흑치상지〉는 일경의 탄압으로 인해 52회로 게재 중지되어 미완으로 남았다"라고 소개한다.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현진건의 민족문학가다운 면모는 단편 〈고향〉에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소설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노래'가 바로 그 대표 사례이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독자는 이 노래 바로 앞에 현진건이 붙여 놓은 설명을 주목해서 읽어야 한다. "그는 쓸쓸하게 입을 다문다. 나 또한 너무도 참혹한 사람살이를 듣기에 쓴물이 났다. '자, 우리 술이나 마저 먹읍시다.' 우리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우리가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리었다"라는 서술에는 현진건이 '한국의 모파상'으로 떠받들어지는 절묘한 수사법이 숨어 있다.

'조선의 얼굴'을 그린 현진건 단편 〈고향〉

노래는 첫째, 1920년대 당시의 우리나라가 〈술 권하는 사회〉라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노래를 통해 우리나라 사회가 그렇게 된 근본 까닭을 부연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는 볏섬이나 수확되던 논밭을 신작로로 만들었고, 비판과 저항의 언사를 일삼는 한국인들을 투옥과 고문으로 억눌렀다. 상류층 한국 노인들마저 다 빼앗기고 공동묘지로 추락하게 만들었고, 유곽을 조성해 한국 여성들을 그곳에 수용했다.

다른 하나는,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라는 표현의 속뜻이다. 지금은 안다는 말을 뒤집어서 강조한 수사이다. 본래 그의 가족은 "넉넉하지는 못할망정 평화로운 농촌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는데, 세상이 뒤바뀌자 땅이 전부 동양척식회사 소유로 들어가고 말았"고, 어쩔 수 없이 생계를 도모해 만주로 갔던 부모는 병과 굶주림 끝에 죽고 말았다.

일본과 중국을 떠돌며 노동을 하던 그는 마지막으로 고향에 들렀다가 다시 일자리를 찾아 서울행 기차를 탔다. 고향마을에서 그는 자신과 결혼 이야기가 오갔던 여자를 만났다. 그녀의 부모가 딸을 유곽에 팔아먹는 바람에 혼담은 없던 일이 되었다. 9년 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아직 26세 불과한데도 "유산을 끼얹은 듯한 얼굴"로 망가져 있었다.

아사와 병사, 살아도 너무나 처참한 한국인

현진건은 식민지로 전락한 탓에("세상이 뒤바뀌자") 땅이 전부 일본 소유("동양척식회사 소유")가 되고, 그 결과 한국인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조선의 얼굴"로 묘사했다. 한국사회의 황폐화가 일본 침탈 탓이고,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제국주의의 첨병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놓고 거론했으니 일제가 현진건을 두고만 볼 리 없었다.

1926년 3월 20일 〈고향〉, 〈운수 좋은 날〉 등 11편의 단편을 담은 현진건 창작집 <조선의 얼굴>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즉각 판매 금지 조치되었다. 1936년 일장기 말소 의거를 일으켜 투옥되었던 현진건은 직장 동아일보사에서 강제 퇴직당한 뒤에도, 〈적도〉와 〈무영탑〉 등의 장편소설로 독립정신을 고취하지만 〈흑치상지〉는 끝내 강제 연재 중단을 맞았다.
 현진건 단편소설 <고향>에 등장하는 '동척'의 대구지점 터(신용보증기금 대구지점)
ⓒ 김명희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는 국사편찬위원회 누리집 '우리 역사넷'이 "일제가 일본인의 조선 이민 및 척식 사업 수행, 식민지 수탈을 위해 세운 국책 회사"로 정의한 기관이다. 국책은 국가 정책, 척식은 다른 나라를 개척해(침탈해) 식민지로 삼는다는 뜻이다.

1908년 12월 28일 설립된 동척은 토지 매수를 통한 일본 농민의 조선 이민 추진에 초기 사업의 중점을 두었다. 일본은 한국으로 대량 이주시킨 자국 소농들을 자작농으로 키움으로써 한국의 일본화를 이루려 획책했다. 동척은 강제 병합 뒤 각종 특혜 속에 토지 확대를 밀어붙여 1914년 총 7만 143정보를 보유함으로써 조선의 최대 지주가 되었다.

대구읍성 진동문 터 바깥에 있었던 동척 대구지점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은 부산, 대전, 목포 세 곳 지점이 남아 있다. 대구지점은 중구 동문동 4-16번지, 현 신용보증기금 대구지점 자리에 있었다. 〈고향〉에 나오는 '그'의 가족을 파산과 죽음으로 내몬 일본인과 그 앞잡이들이 위세를 부리며 근무했던 바르 그 자리를 지난 14일 답사했다.

동문동은 대구읍성의 동문 밖 동리라는 뜻이다. 동문의 공식 이름은 진동문으로, 진동문은 조선의 지방 주둔군 진위대 병영의 동쪽에 있는 성문을 가리킨다. 1906∼1907년 대구읍성이 파괴되고 그 바로 앞에 동척 건물이 들어섰으니 당시 대구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동척 대구지점 터에 서 있으니, 약 120년 전 앞시대를 살았던 '조선의 얼굴'들이 하늘에서 오늘의 우리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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