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재즈의 수호자’ 윈튼 마살리스가 온다

장지영 2026. 3. 1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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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6일 LG아트센터… 재즈 앳 링컨센터 오케스트라와 22년 만에 내한
재즈 거장 윈튼 마살리스 (c)FrankStewart

윈튼 마살리스(64)는 재즈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트럼펫 연주자다. 재즈와 클래식을 넘나들며 '미국 재즈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마살리스는 그래미상을 9차례나 받았다. 1983년과 1984년엔 그래미 재즈·클래식 부문을 2년 연속 동시 석권하는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특히 마살리스는 1987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최초의 재즈 콘서트 시리즈를 시작하며 ‘재즈 앳 링컨센터 오케스트라’(JLCO)를 창단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JLCO는 각 악기 파트의 최정예 멤버 15인으로 구성된 빅밴드다. 일반적인 재즈 콘서트 외에도 뉴욕 필하모닉과 베를린 필하모닉 등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와의 협업을 통해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들며 재즈의 매력을 보여줬다.

마살리스가 JLCO와 함께 오는 25~26일 LG아트센터 서울과 27일 평택아트센터를 찾는다. 마살리스가 JLCO와 함께 내한하는 건 2002년 이후 24년 만이다. 트럼펫·트롬본 등 금관악기와 색소폰 등의 목관악기, 피아노·베이스·드럼의 리듬 섹션이 어우러진 정교한 앙상블을 통해 빅밴드 재즈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특히 마살리스가 2026~2027시즌을 끝으로 JLCO 에술감독에서 물러나는 만큼 그의 리더십 아래 펼쳐지는 JLCO의 공연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재즈 앳 링컨센터 오케스트라(JLCO)가 지난해 독일 에센에서 연주하는 모습. (c)Gilberto Tadday/Jazz at Lincoln Center

마살리스는 1961년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저명한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엘리스 마살리스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다. 엘리사 마살리스의 여섯 아들 가운데 넷이 손꼽히는 거장이 되면서 마살리스 패밀리는 재즈에서 가장 유명한 가문이 됐다. 특히 차남 윈튼은 14세에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클래식 명문 줄리아드 음악원에 입학했다. 하지만 음악원 재학 중 저명한 재즈 드러머 아트 블레키가 이끌던 아트 블레키 밴드와 재즈 메신저의 멤버로 활동하며 진로를 재즈로 바꿨다.

학교를 중퇴한 마살리스는 19982년 데뷔 앨범 ‘윈튼 마살리스’와 이듬해 하이든·모차르트 등 협주곡을 담은 앨범 ‘트럼펫 콘체르토’을 잇따라 발표했다. 두 앨범은 1984년 그래미상 재즈 부문과 클래식 부문에서 마살리스에게 상을 안겼다. 특히 미국재즈의 최정상급 연주자인 허비 행콕(피아노), 브랜포드 마살리스(색소폰), 론 카터(베이스), 토니 윌리엄즈(드럼즈)과 함께한 ‘윈튼 마살리스’는 미국 내 재즈 판매량이 2만 장을 웃돌던 시절 15만 장이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이어 마살리스는 이듬해 재즈 앨범 ‘핫 하우스 플라워스’와 잉글리시 챔버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클래식 앨범 ‘헨델, 퍼셀, 코렐리, 파슈, 몰터’로 또다시 그래미상을 2개 받았다.

재즈 거장 윈튼 마살리스 (c)LawrenceSumulong

20대 초반에 이미 재즈계의 톱스타가 된 마살리스는 1987년 링컨센터가 여름에 재즈 콘서트 시리즈를 기획하는 것을 도왔다. 이 시리즈가 성공하자 ‘재즈 앳 링컨센터’ 부서가 만들어졌으며 1996년 아예 ‘재즈 앳 링컨센터 오케스트라’(JLCO)가 뉴욕 필하모닉이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처럼 독립적 단체가 됐다. 마살리스가 예술감독이 된 JLCO는 링컨센터 공연은 물론이고 투어와 방송, 학교 방문, 자체 레이블인 블루 엔진 레코드를 통한 앨범 제작 등을 통해 미국 재즈를 대표해 왔다.

다만 마살리스의 음악적 성취와 비례해 재즈계에서 그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JLCO 예술감독으로서 혁신적인 시도를 하는 연주자들에게 냉담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프리 재즈, 힙합, 퓨전, 유러피안 또는 아시안 재즈를 경시하고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등 뉴올리언스 재즈로 대표되는 본류를 중시하는 전통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재즈 거장 마일스 데이비스의 1987년 모습. 위키피디아 커먼스

1986년 밴쿠버 재즈 페스티벌에서 당시 ‘재즈의 신화’였던 마일스 데이비스(1926~1991)의 공연에 24세의 젊은 마살리스가 난입한 사건은 유명하다.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당시 미국 재즈의 상황을 상징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전자 사운드 등 다양한 음악을 받아들여 재즈를 혁신해온 데이비스에 대해 재즈의 핵심요소인 즉흥연주, 블루스, 스윙을 뒤로 하는 풍조를 비판하며 재즈의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마살리스의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찬반 논란은 있지만 현대 미국 재즈는 혁신을 강조하는 데이비스와 전통을 중시하는 마살리스가 양립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 특히 보수주의자와 형식주의자로 비판받는 마살리스가 있었기에 세계 클래식계 주요 공연장이던 링컨센터에 JLCO가 자리잡았으며 줄리아드 음악원에 재즈학과가 생겼다. 마살리스가 재즈의 중심을 단단히 지탱한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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