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명창이 많아져야 국악이 산다" 해금 연주자의 공개 고백

김성훈 2026. 3. 1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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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광주 전통문화관 서석당에서 열린 박선호 해금 독주회 <산조 + 더하기>

[김성훈 기자]

▲ 공연이 끝난후 단체 사진 지난 14일 광주 전통문화관에서 박선호 산조 해금 독주회가 열렸다. 사진은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 함께 찍었다.
ⓒ 김성훈
3월의 바람은 여전히 옷깃을 여미게 할 만큼 매서웠지만, 광주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전통문화관 서석당 안은 해금의 따뜻한 숨결로 가득 찼다. 지난 14일, 해금 연주자 박선호의 열다섯 번째 독주회 <산조 + 더하기>가 80여 명의 관객이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필자는 공연의 사회를 맡았는데, 이날 가장 눈에 띈 것은 무대 위에 흔한 마이크나 스피커 등 음향 장비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본래 사랑방이나 마당에서 관객과 가까이 호흡하며 연주하던 옛 국악의 모습을 복원하고자 한 박선호 연주자의 의도적인 기획이었다.

기계적인 증폭 없이 해금 통의 울림과 명주실의 마찰음이 서석당의 공기를 타고 관객의 귀에 직접 가 닿았다. 인위적인 가공을 걷어낸 '생음'은 관객들로 하여금 연주자의 미세한 숨소리와 손가락이 줄 위를 훑는 소리까지도 오롯이 느끼게 했다.

전통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 지영희에서 김영재까지

박선호 연주자는 이날 공연을 통해 우리 국악사의 굵직한 줄기들을 하나씩 짚어냈다. 첫 무대를 장식한 지영희류 해금 산조는 현대 국악의 기틀을 세운 선구자 지영희 명인의 결정체다. 평택 세습무 집안 출신으로 경기 시나위의 화사하고 경쾌한 가락을 해금에 이식한 이 곡은, 남도 음악의 깊고 슬픈 계면조와는 또 다른 '경드름(경기 지역 특유의 맑고 명랑한 가락)'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특히 다른 유파에서 보기 힘든 '굿거리' 악장이 연주될 때, 객석에서는 마이크 없이도 충분히 빛나는 해금의 생동감에 찬사가 터져 나왔다.

이어지는 무대는 지영희의 제자이자 '천생 국악인'이라 불리는 김영재류 해금 산조였다. 박선호는 이 곡을 통해 전통이 어떻게 계승되고 변주되는지를 증명했다. 김영재 명인은 스승의 그늘에 머물지 않고 해금이라는 좁은 틀 안에 거문고의 웅혼한 기백과 가야금의 섬세한 떨림을 초대했다. 엇모리와 단모리 등 복잡한 엇박의 리듬 속에서 무려 열두 가지가 넘는 다채로운 조(調)의 변화를 표현해낸 박선호의 손끝은,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수많은 생의 표정을 닮아 있었다.
▲ 귀명창이 많아야 국악이 삽니다. 국악 연주도 중요하지만 귀명창이 많아질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되어야 한다고 박선호 해금 연주자는 말했다.
ⓒ 김성훈
연주 도중 직접 목소리를 전한 박선호 연주자는 관객들에게 특별한 당부를 전했다. 그는 "좋은 연주자만큼이나 '귀명창'이 많아져야 한다"며 운을 뗐다. 국악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현실 속에서, 대중이 우리 음악을 낯설어하지 않고 일상에서 익숙하게 들을 수 있는 '판'과 그 가치를 알아주는 '귀'가 절실하다는 고백이었다.
그의 말처럼, 이날 서석당을 채운 80여 명의 관객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귀명창'으로서 연주자와 함께 호흡했다. 마이크가 없는 만큼 관객들은 더 깊이 몰입했고, 추임새 하나에 힘을 얻고 해금의 떨림에 함께 숨을 참는 과정 자체가 국악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공적 행위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 서용석 구성 산조합주 기악독주곡인 서용석 구성 산조합주 장면, 왼쪽부터, 성수봉(대금), 박지용(아쟁), 박선호(해금), 이진(가야금), 박준호(소리북)
ⓒ 김성훈
'더하기'로 완성된 조화의 성찬

공연의 대미는 서용석 구성의 산조합주가 장식했다. 1980년대 서용석, 박종선 명인이 고독한 길이었던 산조들을 하나로 묶어 만든 이 곡은, 박선호(해금)를 필두로 성수봉(대금), 이진(가야금), 박지용(아쟁), 그리고 박준호(소리북)가 모여 거대한 소리의 강물을 이루었다.

음악학에서 말하는 '헤테로포니(Heterophony)', 즉 같은 줄기를 공유하되 각자의 기법으로 다르게 노래하는 이 합주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조화의 극치였다. 가야금의 명쾌함 뒤를 아쟁의 애잔함이 받치고, 대금의 맑은 소리가 해금의 서정성을 부축하며 나아가는 모습은 이번 공연의 주제인 '더하기'의 진짜 얼굴이었다.

박선호 연주자는, "오늘 서석당에서 들은 이 조화로운 소리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여러분의 마음 구석을 다정하게 지펴주길 바란다"며 공연 소감을 밝혔다. 80여 명의 '귀명창'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큰 박수로 화답하며, 정직한 예인이 빚어낸 오후의 봄 소리를 마음속에 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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