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백화점 바이어 사표 던지더니...성수동 줄 세우는 300억 CEO 되다
한 백화점 패션 담당 바이어가 있었다. 싹싹하고 트렌드도 잘 읽어서 그가 기획한 공간은 늘 손님이 많았다. 일은 재밌었지만 마음 한편엔 늘 스포츠로 치면 ‘후보 선수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란 내적 갈등이 있었다. 그러다 국내 패션 브랜드, 그중에서도 여성 패션은 왜 ‘뉴 페이스’가 안 나올까라는 고민이 생겼다. 그 길로 당시 디자이너였던 아내와 창업에 나선 것이 지금은 300억원대 패션 브랜드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매김했다. 곽한별·심희원 제이엔케이코퍼레이션 공동대표 얘기다.
제이엔케이코퍼레이션 어떤 회사?
제이엔케이코퍼레이션은 여성복 브랜드 ‘틸아이다이’를 운영하는 패션 기업이다. 2018년 선보인 틸아이다이는 클래식한 무드에 모던한 감각을 더한 디자인으로 2030 여성에게 큰 호응을 얻는다. 초기 W컨셉, 29CM, 무신사 등 이커머스 플랫폼을 중심으로 성장해 2023년 매출 170억원, 2024년 280억원, 지난해 33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430억원 달성을 목표로 둔다. 패션 업계 평균 영업이익률이 8~12% 수준인 데 반해 20% 이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급성장 비결은 감각이 아닌 구조에 집중한 데 있다. 곽 대표는 갤러리아백화점 바이어 시절 롱런하는 브랜드 공통점을 분석했다. 일시 히트 상품에 의존하지 않고 니트, 코트, 셔츠 등 반복 판매되는 핵심 상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창업 후 바로 브랜드를 내지 않고 10년간 의류 생산 대행(OEM·ODM) 사업에 뛰어든 이유다. 브랜드를 길게 이끌어가려면 생산과 원가 통제력을 갖춰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단 소싱부터 공장 관리, 리오더 대응 시스템을 직접 구축해 보통 4~6주 걸리는 디자이너 브랜드 리오더 기간을 대폭 줄였다. 내부 원가 통제력은 가격 대비 높은 품질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됐다. 상품을 핵심 매출 상품, 시즌 트렌드 상품, 브랜드 이미지 상품으로 나누고 핵심 상품이 매출 50~60%를 담당하도록 기획 구조를 짰다.

오프라인 공간을 대하는 철학도 확고하다. 매장을 단순한 판매 채널이 아닌 브랜드를 각인하는 장치로 활용한다. 최근 성수동에 이어 한남동에 두 번째 단독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더현대서울 등에 이은 6번째 오프라인 유통 채널이다. 한남 매장은 모던한 외관과 절제된 내부 구조로 브랜드 정체성을 담아냈다. 조명과 집기를 활용해 옷 소재와 질감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연출했다.
이런 오프라인 전략은 국내외 고객 마음을 사로잡았다. 성수동 매장에는 연일 외국인 고객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매장을 방문한 외국인이 다른 지인에게 추천하며 방문객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 회사 측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성수 매장과 백화점에서 외국인 고객 방문이 늘면서 글로벌 수요도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플랫폼과 해외 팝업 스토어 진출을 준비 중이다.

물론 향후 넘어야 할 과제는 있다. 사업 다각화와 시스템 고도화가 꼽힌다. 단일 브랜드를 넘어 멀티 레이블 체제로 확장을 시도하는 행보도 이와 무관치 않다. 2023년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을 겨냥한 ‘노운베러’를 선보인 데 이어 지난해 감도 높은 캐주얼 브랜드 ‘프리버07’을 잇달아 내놓은 것이 대표 사례다. 브랜드별 타깃과 가격대를 명확히 분리해 자사 브랜드 간 판매 간섭을 막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연 매출 500억원 도약을 목표로 한 조직 개편도 주요 과제로 거론된다. 브랜드 기획, 상품 개발, 유통 전략 세 축으로 나눠 내부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업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상장(IPO) 가능성에는 아직 선을 긋는 분위기다. 안정된 멀티 브랜드 구조와 매출 성장, 탄탄한 수익 구조를 먼저 갖춘 뒤 상장을 검토하겠다는 것이 곽 대표 입장이다. 좋은 브랜드를 한 번 띄우는 건 운일 수 있지만 여러 번 성공시키는 건 구조라는 철학 아래, 제이엔케이코퍼레이션이 감각보다 시스템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설계하는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업계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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