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초콜릿 뒤의 씁쓸한 역설…이재명 정부 '디테일 외교'는 어디로

김은지 2026. 3. 15.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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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최고급 바둑판 준비 정성 어디에
가나 정상에 '이름만 같은' 초콜릿 선물
현실은 농가 빈곤·아동 노동 문제 지속
"상징성 고려 부족한 외교 선택" 지적
존 드라마니 마하마 가나 대통령 숙소에 비치한 웰컴 키트. 이재명 대통령은 방한한 존 드라마니 마하마 가나 대통령과 11일 정상회담을 가졌다.ⓒ청와대 제공

초콜릿의 원재료인 카카오빈 생산국에 초콜릿이 건네졌다. 지난 11일 서울에서 열린 한·가나 정상회담을 계기로 마련된 선물이다. 정상외교에서의 선물은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상대국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고도의 외교적 장치다. 겉으로는 '달콤한 외교'의 한 장면처럼 보였지만, 정작 가나 카카오 산업의 현실을 고려하면 상징적으로 미묘한 장면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14일 정치권과 외교가에 따르면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존 드라마니 마하마 가나 대통령의 정상회담 과정에서 오간 이른바 '가나 초콜릿' 선물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선물의 이면에는 서아프리카 카카오 생산 농가가 마주한 빈곤과 불평등한 산업 구조라는 무거운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중 "어젯밤 내가 가나에서 수입된 코코아 원료로 만든 가나 초콜릿을 따로 선물해 드렸는데 괜찮으셨는지 모르겠다"고 물었고, 마하마 대통령은 "Very much(매우 좋았다)"라고 화답했다. 청와대는 이번 선물을 위해 초콜릿 표지에 양국 국기와 가나 대통령의 이름을 넣은 특별 세트를 제작하며 공을 들였다. 이 대통령이 과거 야당 대표 시절 단식 투쟁 중 초콜릿 하나에 큰 힘을 얻었던 개인적 인연까지 더해지며, 이는 국내에서 달콤한 외교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카카오 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고려하면 이 장면은 또 다른 맥락에서 읽히기도 한다.

마하마 가나 대통령은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닷새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마하마 대통령의 방한은 이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을 찾은 첫 아프리카 정상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이번 방한 기간 동안 핵심 광물 협력과 농업 협력(K-라이스벨트) 등 양국 간 경제 협력 현안이 논의됐지만, 대중의 가장 큰 관심을 끈 장면은 뜻밖에도 청와대의 가나 초콜릿 선물이었다.

가나는 코트디부아르에 이은 세계 2위 카카오 원두 생산국이다. 청와대는 앞서 마하마 대통령 숙소에 '가나 초콜릿' 특별 세트를 비치한 사실을 알리며 "가나는 한국에서 가나 초콜릿 제품으로 널리 알려진 나라이고, 해당 제품에는 카카오 원두의 80% 이상이 가나산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이와 별도로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 S26 울트라'와 조선시대 수군이 바다에서 군사 훈련을 하는 모습을 그린 '수군조련도' 민화도 선물했다.

카카오(코코아)는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등 서아프리카 국가들이 세계 생산의 중심축을 차지하고 있지만, 생산 단계에서 재배 농민이 손에 쥐는 수익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같은 불평등한 수익 배분 구조 속에서 서아프리카 카카오 농장의 아동 노동 문제도 국제 사회의 대표적인 논란으로 꼽혀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대표적인 것이 2001년 체결된 '하킨-엥겔 협약'이다. 당시 미국 의회의 주도로 글로벌 초콜릿 기업들이 서아프리카 카카오 공급망에서 최악의 형태의 아동 노동을 근절하겠다고 약속한 하킨-엥겔 협약이 체결됐다.

다만 협약 체결 이후에도 아동 노동과 농가 빈곤 문제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초콜릿 산업 자체가 때때로 달콤한 상품 뒤에 숨겨진 불평등한 공급망을 상징하는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가격의 변동성도 생산국 농가에 위협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정상외교의 '초콜릿 훈풍'에 시선이 쏠렸지만, 외신이 전하는 3월 카카오 농가 풍경 역시 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난 8일 AP통신은 '카카오 가격 폭락 이후 카카오빈이 썩어가고 서아프리카 농민들이 다른 생계 수단을 찾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상 외교에서 선물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상대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며 "물론 커스텀되긴 했지만,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기성 제품을 선택하는 방식은 상대국을 브랜드 이미지로 소비한 것처럼 보일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대중적 친근함을 강조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상대국이 처한 산업 구조와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들도 나온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상대 정상의 개인적 서사를 정밀하게 겨냥한 선물을 통해 이른바 '디테일 외교'를 구사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가나 정상에게 초콜릿을 건넨 이번 장면은 이전의 사례들과는 결이 다른 상징으로 읽힐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 2025년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경주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간은 이 같은 디테일의 정점을 보여준 무대였다.

경주 APEC 기간 이뤄진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위한 맞춤 선물이 준비됐다. 당시 관세 협상 교착 국면 속에서 전달된 '신라 천마총 금관 모형'은 '최고'와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로 한국의 역사적 위상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예우를 시각적으로 각인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이 대통령에게 '백악관 황금 열쇠'를 전달하며 화답했다.

같은 기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는 '본비자 나무 바둑판'이 선물로 전달됐다. 바둑 애호가로 알려진 시 주석의 취향을 고려한 선물로, 한·중 양국이 공유하는 동아시아 문화 자산인 바둑을 매개로 접근했다. 본비자는 한국과 중국에서 인정하는 최고급 바둑판 소재다. 특히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방한해 선물 받았던 바둑알과 연결되는 서사의 완성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런 선물 외교의 흐름은 올해 1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의 만남에서도 재확인됐다.

청와대는 다카이치 총리가 고교 시절 록밴드를 결성해 드러머로 활동했고,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됐을 때도 드럼 스틱을 들고 다닐 정도로 드럼 애호가라는 점을 고려해 선물을 준비했다. 나전칠기 장식으로 한국 전통의 미를 더한 드럼 스틱이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정상회담 직후 열린 환담 행사에서 깜짝 이벤트로 이 대통령과 드럼 합주를 선보이며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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