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의거' 김주열 시신 유기한 자의 최후... 아이들 경악
[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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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에 있는 3.15의거 기념관과 도로 바닥에 설치된 3.15 의거 발원지 표지. 의거 당시 이곳은 민주당의 지구당사였다. |
| ⓒ 서부원 |
수업 시간 지나가는 말로 아이들에게 3월 15일이 무슨 날인지 물어봤다. 예년 같으며 조회 시간에 따로 이날의 역사적 의미를 간략히 설명한 뒤 함께 기억하자며 훈화라도 했을 테다. 그런데, 올해는 공교롭게도 일요일과 겹쳐서 미리 이야기를 잠깐 나눠 볼 참이었다.
"뭐긴 뭐예요. 화이트데이 다음날이죠."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겐 이성 친구들과 애정으로 표현하는 화이트데이가 3.15 의거 기념일보다 백 배는 더 중요하다. 웃자고 건넨 대답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3.15 의거를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승만이 부정 선거를 자행한 날"이라고 말한 아이를 향해 대부분의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다들 그게 맞나 싶은 표정이었다.
아이들만 손가락질할 일도 아닌 듯하다. 파란만장한 우리 현대사를 증명이라고 하듯, '3.1절'을 비롯해 '4.3 추념일', '4.19 혁명 기념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6.10 민주 항쟁 기념일' 등 날짜를 앞세운 기념일이 달력에 빼곡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가 기념일들이 국민의 관심사에서 나날이 멀어지는 느낌이다.
사건이 발생한 해당 지역의 주민이 아니면, 대부분의 기념일이 왜 지정되었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다. 3.1절이나 광복절, 개천절, 올해 공휴일로 추가된 제헌절 등을 제외하면, 아예 관심 밖이라는 표현이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달력을 부러 확인하지 않으면, 주중의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다.
스마트 기기가 보편화한 요즘엔 탁상 달력도 흔치 않으려니와 공휴일로 지정된 기념일을 제외하곤 날짜가 적힌 것도 보기 힘들어졌다. 언론이나 방송에 소개되지 않으면 알 수조차 없다. 명색이 국가 기념일인데도 사건이 발생한 지역의 방송에서 살짝 언급되고 마는 현실이다.
"오래전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배운 뒤로 지금껏 기념식에 참여하기는커녕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3.15에 대해 아는 아이들이 드물다고 했더니, 한 동료 교사가 자신의 솔직한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아이들보다 나은 거라곤, 부정 선거에 항의하다 김주열 열사가 사망한 날이라는 나름 구체적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정도다. 마산 사람이 아니면 누가 관심을 두겠냐며 둘러대기도 했다.
수백 년 전 역사도 아닌, 현대사가 그 힘을 잃은 채 형해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가 직접 겪었던 일들이 기억의 저편으로 더 빨리 사라지고 있다. 천 년 전의 역사적 사실은 알고 있는데, 수십 년 전에 벌어진 일들엔 무관심한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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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열 열사의 모교인 용마고등학교(당시 마산상고)에 조성된 열사의 기념 공원. |
| ⓒ 서부원 |
"혹시 김주열 열사에 최루탄을 쏴서 죽인 뒤 바다에 유기한 인물이 누군지 아니?"
3.15를 화두로 삼은 이상, 아이들과 한 걸음 더 나아가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3.15는 몰라도 김주열 열사는 모두 알고 있다. 그 둘을 연결하지 못할 뿐,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사망했다는 것과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에 돌을 묶어 바다에 유기했다는 걸 모르는 아이는 없다.
모두가 호기심을 보이며 귀를 쫑긋 세웠지만, 예상대로 아무도 답변하지 못했다. 수업 후 몇몇 동료 교사들에게도 물었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늘 그래왔듯, 우리 현대사는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온갖 외압에 진상규명이 흐지부지되며 책임지는 가해자는 없는, 그런 역사였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당연히 재판을 거쳐 사형당했겠죠. 그땐 지금과 달리 사형이 마구 집행되던 때였잖아요."
아이들은 이구동성 '사형'을 언급했다. 김주열 열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니, 그에 합당한 법적 처벌이 내려졌을 거라는 한 아이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도 물러나게 됐으니, 그가 살아남았을 리는 없다는 거다.
"우리가 김주열 열사의 이름을 기억하듯, 그를 죽이고 시신까지 유기하는 만행을 저지른 이름도 이참에 꼭 기억하자. 그의 이름은 박종표다. 그는 사형은커녕 몇 해 뒤 석방되어 고향에 내려가 여생을 평안히 살았다."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말에 아이들은 경악했다. 특히 그가 '자연사'했다는 사실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며 그 과정을 소상히 알고 싶어 했다. 당일 교과 진도와 무관한 내용이었기에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숙제 삼아 방과 후 자투리 시간에 직접 찾아보라고 권했다.
참고로, 박종표는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반민족행위자다. 일제강점기 헌병 보조원으로 복무하며 독립운동가들을 잔혹하게 고문한 친일파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일본군 헌병 출신의 노덕술'이라고 불릴 만큼 악명 높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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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열 열사의 고향인 전북 남원에 조성된 열사의 묘소. 열사의 시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과정에서도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만행을 엿볼 수 있다. 창원에 있는 국립 3.15 민주 묘지에 있는 열사의 묘소는 가묘다. |
| ⓒ 서부원 |
4.19 혁명 직후 그는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5.16 군사 정변 직후 박정희 정권에 의해 대폭 감형되어 불과 몇 해 만에 풀려났다. 4.19 혁명을 짓밟은 쿠데타 세력이 그를 재판의 피해자로 둔갑시킨 꼴이다. 해방 직후 친일 청산의 실패는 열사의 시신을 유기한 범죄자에게조차 관용을 베푸는 후과를 낳고 말았다.
수업 시작 전 불과 5분 남짓, 3.15를 주제로 한 즉흥적인 '계기 교육'을 통해 나 또한 깨닫게 되는 게 있다.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라면, 피해자인 김주열 열사와 가해자인 박종표를 함께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피해자만 외따로 존재하고 기억하는 역사란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3.15를 기억한다는 건, 고작 열여섯의 나이로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열사의 비참한 죽음에 분노한다는 것이고, 그를 죽이고 시신을 유기한 박종표를 응징한다는 것이며, 부정 선거로 민주주의의 국민적 열망을 외면한 이승만에 역사적 책임을 묻는다는 뜻이다. 이야말로 '3.15 의거 기념일'이 공식 지정된 이유다.
그러나 현실은 아예 딴판이다. 김주열의 죽음과 박종표의 만행, 이승만의 독재가 마치 별개인 양 인식된다. 열사의 희생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말하면서도, 공산주의의 침략을 막아낸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며 이승만을 떠받드는 아이러니를 해석할 길이 없다.
지금 교실에는 '김주열 열사도 존경하고, 이승만 대통령도 존경한다'는 아이가 드물지 않다. 열사의 죽음에 대한 최종 책임자가 이승만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모양새다. 열사의 죽음에 분노하면서도, 직접적 가해자는 누군지도 모르고, 이승만을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켜세우는 몇몇 아이들의 '인지부조화'가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박종표는 '잊혀야 하는'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짐으로써 이승만의 죄과가 희석되며, 친일파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박정희의 오점이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박종표는 김주열만큼이나 중요한 이름이다. 66주년을 맞이한 올해 '3.15 의거 기념일'에 깨닫게 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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