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편은 세 번째 징역을 살고 있습니다 [민병래의 사수만보]
사수만보는 '사진과 수필로 쓰는 만인보'의 줄임말입니다. <기자말>
[글쓴이: 민병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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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아들과 함께 90년대 어느 날 수원 원촌유원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
| ⓒ 구선옥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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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훈이 지은 주체사상 에세이 지금 현재 교보문고에서 팔리고 있다. |
| ⓒ 민병래 |
남편은 이번이 세 번째 징역살이다. 고려대 사학과 82학번인 남편은 삼민투(민족해방·민주쟁취· 민중해방) 위원장으로서 1985년 5월 23일 미문화원 점거 농성을 주도했다. 광주학살을 지원한 미국의 사죄를 받으려는 뜻에서였다. 그때 3년이나 징역을 살았다.
두 번째는 이른바 '일심회' 사건이다. 결혼하고 나서 강서구에 살 때인 2006년에 겪은 일이다. 아이들은 어렸고, 부부가 함께 일구고 있는 영어학원이 막 자리 잡을 때였다. 남편이 "재미교포인 장민호에게 포섭되어, 이적단체를 결성하고 국가 기밀을 빼돌렸다"라는 혐의였다.
남편이 체포되던 10월 24일은 엄청났다. 그날 아침 일찍 가양동의 텃밭에서 친구들과 상추와 고추를 수확하고 있었다. 오전 일을 한 순배 끝내고 커피 한 잔으로 땀을 식힐 즈음, 검은색 승용차가 대여섯 대 넘게 무리 지어 텃밭 맞은 편으로 달려왔다. 구선옥은 무슨 일인가 궁금해 승용차 쪽으로 다가갔는데 차에서 어두운 양복이나 점퍼를 입은 사람이 우르르 내렸다. 조폭 무리인 양 험악한 분위기인데 분위기는 말쑥해 보여 구선옥은 남편에게 문제가 생겼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세 번째 승용차에 체포된 채로 앉아있고,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다가와 압수수색 영장을 보여주며 집으로 가자고 종용했다. 한 달 내내 매스컴을 탈 정도로 요란했으나 '이적단체'는 무죄가 되고 민주노동당의 정보(변호인은 민주노동당의 홈페이지 등에 공개된 정보여서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기밀이 아니라고 주장했다)를 전달한 행위가 국가보안법상의 '목적수행'으로 인정되어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받았다. 남편은 이때도 3년을 꽉 채워 복역한 뒤 2009년 10월 23일 전주교도소에서 나왔다. 그리고 2021년 5월에 "북의 공작원과 회합통신을 했다"는 혐의로 국정원에 체포되었다. 남편은 참 징역복이 많은 팔자인 셈이다.
1심 진행 중에 구속 만기로 풀려나와 불구속 상태지만, 재판 받는 지난 4년은 피를 말리는 나날이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생계인 학원 운영도 가정 생활도 마치 공중에서 헛발질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남편은 통일시대연구원에서 꾸준히 통일 문제를 고민하고 <민플러스>나 <통일시대> 같은 인터넷 언론에 기고했다. 특히 북이 2023년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두 개의 국가론을 천명한 뒤부터는 그 선언의 의미를 해독하고 남북 관계의 미래를 살피느라 밤잠을 설쳤다.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구선옥은 자기 남편 이정훈이 성실하게 살아간다고 느꼈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그의 자세를 응원했다.
사람들이 달라졌다, 좀 생뚱맞다는 반응
구선옥은 서관 522호 법정에 들어가 방청석에 앉았다. 스무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자리가 꽉 찼다. 1심 때도 많은 이들이 응원차 방청을 와 주었다. '양심수 후원회'나 '민가협'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등등... 남편이 체포된 2021년은 국가보안법 폐지의 열기가 뜨거웠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넘기자, 시민사회는 드디어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때가 왔다고 보고, 2021년 5월 국회에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청원'을 냈다. 이는 불과 9일 만에 10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남편이 잡혀가니 시민 사회는 국보법 폐지 운동에 찬물을 끼얹으려고 국정원이 사건을 만들었다고 의심했다. 이런 마음은 재판정까지 이어져 심리 때마다 방청객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가족 외에 일곱 명만 방청을 허락해 "밀실재판 아니냐"라는 항의가 터져 나왔고 법정 복도에는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 가득했었다. 다행히 항소심 재판부는 방청을 보장해주고 있다.
남편은 묘하게도 1985년, 2006년, 2023년, 이렇게 20년 안팎 간격으로 법정에 섰다. 세상 인심은 변해 통일운동가인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 1985년에는 장한 청년이라고 했다. 2006년에도 6·15와 10·4 정상회담의 훈풍이 남아있고 국가보안법을 없애야 한다는 공감대가 컸기에 억울한 징역살이라는 시선이 많았다. 일심회 사건 때 '간첩'이니 하면서 한 달 내내 TV에서 떠들어댔지만 텃밭을 함께 가꾸던 가양동 아지매들은 따뜻한 성원을 보내주었다. 오랜 우정 덕이겠으나 시대의 공기도 작용했다.
지금은 많이 다르다. 좀 생뚱맞다는 반응, 아직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는 사람이 있어요? 통일이요? 그게 어느 천 년에 가당키나 하나요? 다른 건 얼마든지 감내할 터인데, "이해하고 싶지 않고 황당하다"라는 반응 앞에 서면 왠지 죄인이 된 느낌이다. 엄연히 2026년 3월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외면하지 못할 한반도의 현실인데도 말이다.
남편에게는 아픈 가족사가 있다. 함경도 함흥이 고향인 시아버지는 전란이 터지기 전 서울의대에 재학 중이었다. 전쟁통에 당신은 혈혈단신이 되어 학업을 중단했다. 휴전 후 어렵사리 한국외국어대학 영문과를 나와 한때 신문사 특파원을 하다 문산에서 미군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어쩌면 남편에게 분단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부친의 존재나 미군 기지의 살풍경은 자신의 청소년기를 관통하는 상흔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남편은 런던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소리클럽'이라는 영어교육업체를 성공리에 이끌면서도 언제나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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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고등법원앞에서 구선옥 2026년 1월 26일 항소심1차 공판때의 모습이다. |
| ⓒ 민병래 |
87년 대투쟁 때 멀리 창원 금성사에서 시작한 투쟁은 구선옥의 작업장까지 밀려왔고, 그는 팔을 걷어붙였다. 파업 기간 중 회사 측 연락을 받고 달려온 부모의 설득도 뿌리쳤다. 6녀 1남인 집에 생활비도 보태야 하는 처지였으나 농성장을 빠져나올 순 없었다. 전체 4,500명 직원, 어림잡아 현장직이 3000명이 넘는데 이중 해고된 이가 20명 남짓이었고 구선옥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구선옥은 복직투쟁을 하면서 알고 싶었다. 어린 여공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24시간 맞교대를 시켜도 되는지. 자신의 부서도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갈 때는 어김없이 철야노동을 해야 했다. 이런 부당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구선옥은 해고된 동료와 수원기독노동상담소를 찾아갔다. 거기서 노동법이며 역사를 공부했다. 그때 강사로 온 이정훈이 눈에 들어왔다. 졸린 눈을 비비고 알아먹기는 힘들어도 구선옥은 그의 강의만큼은 빼먹지 않았다. 맨 앞줄에 앉아 남편과 눈을 맞추려 노력했다. 남편은 시나브로 동지에서 연인이 되었다.
재판장이 피고인을 들여보내세요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구선옥은 눈을 떴다. 법정으로 들어오면 남편이 눈을 맞춘다. 평생 60kg을 넘어보지 못한 몸무게다. 입도 짧아 먹는 걸 밝히지 않는다. 일심회 사건 때는 면회 갈 적마다 사식이며 사과, 우유를 가득 들여보냈으나 나중에 들어보면 어려운 재소자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테니, 알아서 사 먹고 알아서 나눠주라고 영치금만 꼬박꼬박 넣어준다. 추위를 잘 타는 데다 독방이라 몸이 시릴까 봐 걱정이다. 그래도 요즘은 서울구치소에 난방이 되어 예전처럼 냉골이 아니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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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11월 14일 덕수궁 앞에서 이정훈의 구속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정훈은 불구속상태에서 재판받다 11월 12일 징역 5년 선고를 받고 법정구속되었다. |
| ⓒ 민병래 |
남편은 2017년 4월 더플라자호텔 로비에서 고니시를 처음 만났다. 고니시는 국내의 통일운동이나 진보운동 현황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고 자신이 이른바 '일심회'사건으로 구속된 바를 모르고 있어, 적어도 북에서 내려온 공작원은 아니라고 남편은 판단했다. 그런데 고니시는 자신과의 연락을 위해 필요하다며 '암호화된 통신프로그램'을 전달하고 사용 요령을 알려주려 했다고 한다. 신뢰도 없고 서로의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비밀접촉의 방법을 제안하니 남편은 "혹시 정보기관의 프락치가 아닌가"하고 의심했다. 이후 세 차례 더 만났다가 2017년 4월 22일을 마지막으로 관계는 흐지부지되었다. 남편은 그 뒤 고니시를 잊고 지냈다.
남편은 1심 과정에서 '고니시'가 국정원과 검찰에서 주장하는 대로 정말 페루 국적인지, 재판 직전에 사망했는지를 (국제 사법 공조를 통해)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어느 나라에서도 답변이 오지 않았다. 1심 재판은 안개 속에 있는 '고니시'를 '북의 공작원'으로 단정하고 이정훈이 '회합통신'했다는 국정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남편에게 5년의 징역을 선고했다. 국정원은 고니시의 정체를 입증할 어떤 증거도 법정에 제출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법원이 검찰의 공소장을 그대로 판결문에 원용하는 전두환 시대 때 국가보안법 사건의 재판을 보는 것 같다고 성토했다.
이날 재판은 항소심 1차 심리 뒤 재판장이 바뀌는 바람에 1차 기일과 비슷했다. 변호인측에서는 남북관계가 변화한 사정, 특히 "북한이 통일노선을 포기했고, 국가보안법이 근본적으로 사상·양심의 자유'를 침해함 등을 들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다. 남편도 모두 진술에서 남북이 적대적 두 국가관계가 아니라 평화적 관계로 공존하려면 "대한민국헌법의 영토조항과 국가보안법'의 수정,폐기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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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소심 2차 심리 끝나고 고등법원 로비에서 2차 공판을 마치고 변호인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오른쪽에서 세번 째가 구선옥이다. |
| ⓒ 민병래 |
구선옥은 교대 앞에서 수지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는 유튜브를 켰다. 눈에 들어온 AI관련 대담에 귀를 맡겼다. 노동의 종말을 말하고, AI가 몰고 올 카오스를 걱정한다. AI가 디스토피아를 열건, 유토피아를 열건, 인류의 미래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는 건 분명할 게다. 그런데 왜 서초동은 변하지 않는 걸까? 무려 80년 가까이 검사의 공소장은 어찌 그리 판박이란 말인가?
남편의 다음 재판기일은 4월 6일이고 2심의 구속 만기는 5월 11일이다. 다른 바람은 없다. 3월이 가기 전 남편이 보석으로라도 나와 두 아들과 둘러앉아 '봄동김치'에 쑥갓향 가득한 된장찌개 놓고 따뜻한 밥 나누기를 소원할 뿐이다. 남편은, "가난을 대물림하는 것보다 분단을 대물림하는 것이 가장 큰 괴로움"이라는 소신으로 살았다. 그 믿음이 과연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녕을 손톱만큼이라도 해쳤는지 진정 세상을 향해 소리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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