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 고립된 차... 13일 만에 찍은 저예산 고립 스릴러

김성호 2026. 3. 1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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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1291] <콜드 미트>

[김성호 기자]

단 13일의 촬영, 제대로 된 배우는 3명 뿐, 이야기가 진행되는 대부분의 공간은 멈춰선 승용차 한 대. 최근 한국서 개봉한 캐나다 저예산 스릴러 영화 <콜드 미트> 이야기다. 통상적인 상업영화가 50~80회 차에 걸쳐 촬영을 진행하고, 저예산 독립영화라 해도 20회 차 내외로 잡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감행했달까. 심지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출연하는 배우는 주연 2명이 전부니, 이 영화 <콜드 미트>의 특징이 명확하다.

영화는 미국 록키산맥을 가로지르는 외딴 길 위에서 펼쳐진다. 때는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둔 겨울, 심상찮은 눈보라가 예고된 지역이다. 도로를 따라 드물게 나타나는 레스토랑에 찾아든 손님 하나, 그를 맞이하는 직원도 단 한 명뿐이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점잖은 손님과 점원 사이에 오가는 짤막한 대화, 별다를 것 없던 그 시간이 변화하는 건 단 하나의 사건 때문이다. 가게에 쳐들어오다시피 한 건장한 사내는 여종업원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모양이다. 여자가 홀로 기르고 있는 딸을 만나는 일과 관련하여 술에 취한 사내는 거칠게 여자를 위협한다. 가게 안은 일순간 긴장에 사로잡힌다.

누구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다. 술 취해 여자를 위협하는 사내를 가로막는 일 말이다. 남의 일이기도 하거니와, 누구의 도움도 구하기 어려운 외딴 식당 안에서 이성을 잃은 거친 사내를 막아선다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이 사내 데이비드(엘렌 리치 분)는 다르다. 그는 난처한 상황에 놓인 점원 애나(니나 버그만 분)를 남편 빈센트(얀 투알 분)로부터 구한다. 그로부터 이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상황은 관객 앞에 불장난만큼 재미있다는 싸움 구경의 기회를 제공한다.
▲ 콜드 미트 스틸컷
ⓒ 오싹엔터테인먼트
위기, 위기, 위기... 이 영화가 긴장을 이어가는 법

<콜드 미트>의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를 보는 누구라도 흥미진진하게 귀추를 주목하게 될 에피소드다. 위기에 빠진 여자를 구하려는 사내, 그로부터 남의 일이 아니게 된 위협, 어떤 도움도 구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자신과 처음 보는 여자를 구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보는 이의 주의를 사로잡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겠다. 일단 휘어잡은 관객의 관심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붙들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장편 스릴러로서 <콜드 미트>의 진짜 승부수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무사히 식당을 나선 데이비드와 그가 마주한 상황, 이어지는 위협이며 반전을 89분의 러닝타임 안에 어떻게 채워 넣는가 말이다.

한 겨울의 로키 산맥에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식당을 나선 데이비드를 훨씬 큰 차를 모는 그에게 원한 있는 사내 빈센트가 뒤쫓는다. 오프닝 시퀀스의 식당 안 갈등구도는 이내 도로 위 추격전으로 이어진다. 장소와 환경을 바꿔 긴장을 유지하는 영화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다음, 그 다음의 패를 하나씩 까 보인다. 관객은 준비된 패를 하나씩 확인하며 영화가 마련한 결정적 사건에 다가선다.
▲ 콜드 미트 스틸컷
ⓒ 오싹엔터테인먼트
고립과 탈출... 장르 이룬 저예산 스릴러

<콜드 미트>는 대부분의 시간을 눈보라 한 가운데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차 안에서 이끌어간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상황 가운데 눈보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확신조차 없다. 바깥의 도움은 구할 수 없는 가운데 안에서의 위협까지 있다. 제목처럼 '차갑게 식은 고기' 신세가 된 이에게 희망은 남아 있을까. 잘 보이지 않는 한 가닥 빛을 좇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이들의 발버둥을 관객은 얼마쯤은 응원하는 마음으로, 또 얼마쯤은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이다.

<콜드 미트>와 같은 영화는 이제는 하나의 장르를 이뤘다 해도 좋다. 고립된 환경 가운데 제한된 인원으로 풀어가는 스릴러가 여럿이다. 우선 떠오르는 건 <폰 부스>다. 조엘 슈마허의 2003년 작 영화는 사람 가득한 대도시 뉴욕 한 복판에서의 영리한 고립을 이뤄낸다. 제목에서 연상 가능하듯, 그 시절엔 많았던 공중전화박스에 갇힌 주인공(콜린 파렐 분)이 전화를 끊으면 죽여 버리겠다는 수화기 너머의 협박을 받고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대도시와 고립, 테러를 소재로 쫄깃한 작품을 뽑아내는 데 도가 튼 명감독의 솜씨를 즐길 수 있는 명작이다.

장소를 공중전화박스에서 달리는 버스로 바꿔보자. 이번엔 얀 드봉, 지난 세기 말을 풍미한 빼어난 촬영감독이 처음 메가폰을 잡고 연출한 전설적 데뷔작 <스피드>다.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이 주연한 1994년 작 영화는 달리는 버스를 멈추면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협박을 받은 승객들이 버스를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하는 난감한 상황을 그린다. 이 영화를 보고난 뒤 나는 아주 오래도록, 그러니까 등교며 출근 길 막히는 버스 안에서 <스피드> 속 내달리던 버스를 소환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는 했었다.
▲ 콜드 미트 스틸컷
ⓒ 오싹엔터테인먼트
명작과 졸작 사이... 차이는?

어디 버스만 가능할까. 달리는 열차 안에서만 펼쳐지는 영화를 우리는 여럿 알고 있지 않은가. 열차의 특성상 사람이 좀 더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소스 코드>부터 봉준호의 <설국열차> 같은 작품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고개를 들어 비행기에서도, 저 바다 밑 잠수함에서도 같은 방식의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다.

추락한 비행기가 바다 밑에 처박혀 상어들의 위협을 뚫고 수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설정을 둔 <노 웨이 업> 같은 영화는 둘의 장점을 합쳐 단순하게 풀어간 노골적 작품이다(관련기사: 민망하기까지 한 상어의 공격... 해양 재난영화의 퇴보인가 (https://omn.kr/29f4w)

구태여 탈 것조차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다이브: 100피트 추락>은 바다 아래 돌뭉치에 끼여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언니를 구하려 수차례 잠수를 반복하는 동생의 이야기다. 무너진 것에 묻혀 제한된 자원으로 버티며 외부의 도움을 기다리는 영화 하면 한국영화 <터널>도 떠오른다. 외부 촬영분이 많아 저예산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고립된 상황을 극적 긴장으로 이어가는 발상은 위의 작품들과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고립된 상황 그 자체에 더욱 집중해 나머지 많은 것을 제한 극단적 작품 또한 많다. <배리드> <폴: 600미터> <127시간> 같은 작품들. 무덤에서, 높은 탑 위에서, 바위 사이에 끼인 채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이들이 구조를 기다리는 작품들이다. <쏘우>나 <큐브> 시리즈처럼 타의에 의해 고립된 이들이 맞이한 위험을 장르적으로 살린 작품군도 살펴볼 만하다. 장소, 또 등장인물을 제한함으로써 예산을 크게 낮춘 영리한 영화들로, 규모가 결코 영화의 성패와 직결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 콜드 미트 포스터
ⓒ 오싹엔터테인먼트
그래서 '콜드 미트'는?

때로는 명작이, 때로는 졸작이 나온단 건 다른 여느 장르와 마찬가지다. 다만 제약이 상상력이 폭발하는 계기로써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 부족한 자원으로 분투하는 이들의 수고로움을 서사와는 다른 층위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장르를 보는 재미다.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고립, 또 장소며 인물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마다 마련한 승부수가 제각각이다.

어떤 작품은 전의 성공례를 고민 없이 뒤따르기도 하지만, 다른 영화는 독자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도 한다. <콜드 미트>는 식당과 도로, 마침내 눈보라 속에 고립되고 마는 차 안이라는 병렬적이고 별개의 에피소드를 통하여, 또 마련된 반전적 장치를 통해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으려 한다. 그 수가 새롭다 느끼는 만큼 영화는 당신에게 매력적일 테다.

여기서 더 궁금한 이가 있다면 <콜드 미트> 포스터와 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은 <추락의 해부> 포스터를 비교해 보라. 내가 차마 쓰지 않은 말이 무언지 단박에 이해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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