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 고립된 차... 13일 만에 찍은 저예산 고립 스릴러
[김성호 기자]
단 13일의 촬영, 제대로 된 배우는 3명 뿐, 이야기가 진행되는 대부분의 공간은 멈춰선 승용차 한 대. 최근 한국서 개봉한 캐나다 저예산 스릴러 영화 <콜드 미트> 이야기다. 통상적인 상업영화가 50~80회 차에 걸쳐 촬영을 진행하고, 저예산 독립영화라 해도 20회 차 내외로 잡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감행했달까. 심지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출연하는 배우는 주연 2명이 전부니, 이 영화 <콜드 미트>의 특징이 명확하다.
영화는 미국 록키산맥을 가로지르는 외딴 길 위에서 펼쳐진다. 때는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둔 겨울, 심상찮은 눈보라가 예고된 지역이다. 도로를 따라 드물게 나타나는 레스토랑에 찾아든 손님 하나, 그를 맞이하는 직원도 단 한 명뿐이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점잖은 손님과 점원 사이에 오가는 짤막한 대화, 별다를 것 없던 그 시간이 변화하는 건 단 하나의 사건 때문이다. 가게에 쳐들어오다시피 한 건장한 사내는 여종업원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모양이다. 여자가 홀로 기르고 있는 딸을 만나는 일과 관련하여 술에 취한 사내는 거칠게 여자를 위협한다. 가게 안은 일순간 긴장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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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드 미트 스틸컷 |
| ⓒ 오싹엔터테인먼트 |
<콜드 미트>의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를 보는 누구라도 흥미진진하게 귀추를 주목하게 될 에피소드다. 위기에 빠진 여자를 구하려는 사내, 그로부터 남의 일이 아니게 된 위협, 어떤 도움도 구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자신과 처음 보는 여자를 구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보는 이의 주의를 사로잡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겠다. 일단 휘어잡은 관객의 관심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붙들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장편 스릴러로서 <콜드 미트>의 진짜 승부수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무사히 식당을 나선 데이비드와 그가 마주한 상황, 이어지는 위협이며 반전을 89분의 러닝타임 안에 어떻게 채워 넣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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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드 미트 스틸컷 |
| ⓒ 오싹엔터테인먼트 |
<콜드 미트>는 대부분의 시간을 눈보라 한 가운데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차 안에서 이끌어간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상황 가운데 눈보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확신조차 없다. 바깥의 도움은 구할 수 없는 가운데 안에서의 위협까지 있다. 제목처럼 '차갑게 식은 고기' 신세가 된 이에게 희망은 남아 있을까. 잘 보이지 않는 한 가닥 빛을 좇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이들의 발버둥을 관객은 얼마쯤은 응원하는 마음으로, 또 얼마쯤은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이다.
<콜드 미트>와 같은 영화는 이제는 하나의 장르를 이뤘다 해도 좋다. 고립된 환경 가운데 제한된 인원으로 풀어가는 스릴러가 여럿이다. 우선 떠오르는 건 <폰 부스>다. 조엘 슈마허의 2003년 작 영화는 사람 가득한 대도시 뉴욕 한 복판에서의 영리한 고립을 이뤄낸다. 제목에서 연상 가능하듯, 그 시절엔 많았던 공중전화박스에 갇힌 주인공(콜린 파렐 분)이 전화를 끊으면 죽여 버리겠다는 수화기 너머의 협박을 받고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대도시와 고립, 테러를 소재로 쫄깃한 작품을 뽑아내는 데 도가 튼 명감독의 솜씨를 즐길 수 있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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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드 미트 스틸컷 |
| ⓒ 오싹엔터테인먼트 |
어디 버스만 가능할까. 달리는 열차 안에서만 펼쳐지는 영화를 우리는 여럿 알고 있지 않은가. 열차의 특성상 사람이 좀 더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소스 코드>부터 봉준호의 <설국열차> 같은 작품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고개를 들어 비행기에서도, 저 바다 밑 잠수함에서도 같은 방식의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다.
추락한 비행기가 바다 밑에 처박혀 상어들의 위협을 뚫고 수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설정을 둔 <노 웨이 업> 같은 영화는 둘의 장점을 합쳐 단순하게 풀어간 노골적 작품이다(관련기사: 민망하기까지 한 상어의 공격... 해양 재난영화의 퇴보인가 (https://omn.kr/29f4w)
구태여 탈 것조차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다이브: 100피트 추락>은 바다 아래 돌뭉치에 끼여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언니를 구하려 수차례 잠수를 반복하는 동생의 이야기다. 무너진 것에 묻혀 제한된 자원으로 버티며 외부의 도움을 기다리는 영화 하면 한국영화 <터널>도 떠오른다. 외부 촬영분이 많아 저예산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고립된 상황을 극적 긴장으로 이어가는 발상은 위의 작품들과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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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드 미트 포스터 |
| ⓒ 오싹엔터테인먼트 |
때로는 명작이, 때로는 졸작이 나온단 건 다른 여느 장르와 마찬가지다. 다만 제약이 상상력이 폭발하는 계기로써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 부족한 자원으로 분투하는 이들의 수고로움을 서사와는 다른 층위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장르를 보는 재미다.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고립, 또 장소며 인물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마다 마련한 승부수가 제각각이다.
어떤 작품은 전의 성공례를 고민 없이 뒤따르기도 하지만, 다른 영화는 독자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도 한다. <콜드 미트>는 식당과 도로, 마침내 눈보라 속에 고립되고 마는 차 안이라는 병렬적이고 별개의 에피소드를 통하여, 또 마련된 반전적 장치를 통해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으려 한다. 그 수가 새롭다 느끼는 만큼 영화는 당신에게 매력적일 테다.
여기서 더 궁금한 이가 있다면 <콜드 미트> 포스터와 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은 <추락의 해부> 포스터를 비교해 보라. 내가 차마 쓰지 않은 말이 무언지 단박에 이해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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