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제왕적 회장'? 사람이 아닌 구조의 문제다

박진도 2026. 3. 1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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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농협중앙회의 인적 분할과 경제사업연합회 체제 구축을 위하여

[박진도 기자]

 김영수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이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농협 '정부합동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농협개혁 논의는 늘 '데자뷔'처럼 반복된다. 중앙회장의 비리가 터지면, 여론이 들끓고, 정부가 호통을 치며 개혁안을 내놓는다. 국회는 법을 고치고, 중앙회는 자체 개혁안을 내놓는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같은 문제가 다시 터진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이 '도돌이표 개혁'을 반복해서 보아왔다.

최근 정부합동감사에서 드러난 농협중앙회의 비리와 방만한 운영은 역시 충격적이었다. 특혜성 대출과 계약, 부실한 예산・재산 관리, 회원조합의 비리와 부실 방치 등 익히 알려진 구조적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부는 위법 소지가 큰 14건을 수사 의뢰하고, 96건에 대해 제도 개선 및 시정 조치를 내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협감사 결과를 토대로, 향후 다음과 같은 농협개혁의 방향을 밝혔다. ▲ 농협감사위원회를 신설하고 농식품부의 감독권 확대 등 내·외부 견제장치를 강화한다. ▲ 중앙회의 투명성을 확대하고 조합원에 의한 통제를 강화한다. ▲ 중앙회장 선거제를 개편하고 금품선거를 방지한다. 이에 대응해 농협중앙회는 ▲선거제도 개선 ▲ 인사공정성 제고 ▲ 책임경영강화 ▲ 내부통제 강화 등의 자체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만으로 농협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내용은 이미 수차례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농협법은 15차례나 개정되었지만 농협의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중앙회장의 권한을 줄이겠다며 상임에서 비상임으로 바꾸고, 선거방식도 직선제와 간선제를 오갔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농협의 문제를 지배구조나 선거제도의 문제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제왕적 회장'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초대 민선회장 이후 현 회장에 이르기까지 7명의 중앙회장이 모두 예외 없이 사법처리나 수사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계 유례없는 '공룡조직', 그 기형적 지배구조

농협중앙회장의 제왕적 권한은 선거방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농협중앙회의 구조에서 나온다. 우리나라 농협중앙회는 단순한 협동조합의 연합체가 아니라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를 거느린 거대지주회사다.

중앙회가 종합농협체제로 거대한 사업체이면서 동시에 회원조합을 지도·감독하는 구조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유럽이나 미국의 농협들은 대개 판매만 하거나 금융만 하는 '전문 농협' 형태이고, 중앙회(연합회)는 그것을 지원하는 기구이다. 심지어 우리 농협이 모델로 하였다는 일본 농협의 중앙회((JA-Zenchu)조차 사업체가 아니라 조합의 지원기구이다.

"농협중앙회장은 제왕적 권한을 행사한다."
"농협중앙회는 회원의 공동이익보다 자체 이익 중심으로 움직인다."
"경제사업은 소홀히 하고 금융사업 중심으로 운영된다."
"중앙회가 회원조합 위에 군림한다."
"회원조합의 비위와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다."
"정부 사업 수행 때문에 자율성이 없고 농정 대변 기능도 약하다."

농협중앙회를 둘러싼 다음과 같은 비판은 과거에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은 중앙회 자체가 거대한 사업조직이라는 구조에서 발생한다.

2012년 정부는 농협중앙회를 1중앙회-2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였다. 정부는 이른바 신경분리를 통해 ▲ 농협금융지주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종합금융그룹으로 ▲ 농협경제지주는 농산물을 잘 팔아주는 유통 및 판매 전문그룹으로 ▲ 농협중앙회는 중앙회 본연의 역할인 농업인 권익 대변 및 회원조합 지원센터로 육성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정부의 이러한 개혁 목표는 농협금융지주가 5대 금융그룹으로 성장하였다는 점에서는 일정한 성과가 있었으나, 경제사업활성화, 지배구조의 투명성, 중앙회 본연의 기능 회복 등의 목표는 실패했다. 이러한 결과는 당시에 이미 예견되었다.

그 이유는 2012년 중앙회 개편이 인적 분할이 아니라 물적 분할 방식을 취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주회사 체제의 신경분리의 목적은 농협중앙회 경제사업 활성화와 신용사업의 경쟁력 강화이지(특히 금융업의 경쟁력 강화), 회원조합과 조합원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연합조직으로의 개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는 금융지주회사와 경제지주회사의 지분을 100% 소유한다. 농협은행(금융)과 농협경제지주는 각각 별도의 독립법인이지만, 주인은 여전히 농협중앙회다. 농협중앙회는 정부와 여론의 개혁 압력에 대해 달갑지 않지만, 자본금 지원(5조 원 규모의 자본금 및 이자 지원), '조세 특례'와 '방카슈랑스 유예'(기득권 보호), 명칭 사용료(브랜드 수수료) 인정 등 정부의 파격적 지원을 받아 물적 분할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농협중앙회의 물적 분할을 통해 중앙회는 양대 지주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수입을 올리게 되었다. 농협중앙회는 브랜드 사용료(농업지원사업비)와 배당금으로 조 단위의 수익을 올린다. 이러한 재정구조가 중앙회의 막강한 권한의 근원이 된다. 2024년 중앙회는 교육지원사업비로 5829억 원을 사용한 반면에 판매관리비로 6471억 원을 사용하였다. 이 사실은 중앙회가 어떤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법은 농협중앙회의 '인적 분할'과 경제사업연합회 체제 구축
 정부가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등 농협 간부들의 횡령·금품수수 혐의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다고 밝힌 9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부.
ⓒ 연합뉴스
따라서 농협개혁의 핵심은 단순한 제도 보완이 아니라 구조의 근본적 개혁이어야 한다. 해법은 농협중앙회의 인적 분할이다. 농협중앙회가 농협법 113조에 규정한 '회원의 공동 이익 증진'이라는 본연의 목적으로 돌아가려면 세 가지 조직으로 인적 분할해야 한다.

첫째, 사업을 하지 않는 순수 연합조직인 '농협총연합회'다. 이 조직은 회원조합 지도와 교육, 조사연구, 농정 대변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

둘째는 '경제사업연합회'다. 현재의 경제지주를 연합회 체제로 개편해 농산물 판매와 유통을 회원조합 중심으로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주식회사형 지주회사 구조에서는 수익성이 우선되지만 연합회 구조에서는 조합원의 이익이 중심이 된다.

셋째는 '신용사업연합회'다. 금융지주를 협동조합 금융체계로 개편해 금융의 전문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경제지주를 경제사업연합회로 전환하는 것이다. 중앙회의 물적 분할로 인해 회원조합은 경제지주와 자회사에 대한 지분을 상실하였다. 중앙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지배력을 상실하였다. 경제지주를 경제사업연합회로 개편하여 경제사업을 중앙회의 지배(간섭)으로부터 벗어나 회원조합의 이익을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한다. 경제사업연합회 체제로 전환해야 농협이 본래의 '판매농협' 역할을 회복할 수 있다.

중앙회만 바뀐다고 끝이 아니다. 뿌리인 지역농축협도 변해야 한다. 신용사업에 의존한 현재의 영세한 종합농협체제로는 전문적인 판매 사업을 수행하기 어렵다. 경제사업연합회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회원조합(지역농축협)의 구조도 그에 상응하는 판매조직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현재의 종합농협 체제 자체를 당장 분리하기 어렵다면, 독립사업부제를 도입하여 사업부문 별 회계 및 조직을 완전 분리하여, 농산물 판매와 농자재 구매를 담당하는 농업경제부문의 책임경영 환경을 조성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역농축협의 대다수는 개별적으로 판매사업을 독립 경영하기에는 사업규모가 영세하다. 따라서 지역농축협이 판매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역농축협의 광역통합이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지역농협을 단순 합병해서는 신용사업 중심이라는 농협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중장기적으로는 생활권 단위로 광역합병하면서 기능(사업)을 분리하여 종합농협체제의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즉 신용사업부문은 광역 신용협동조합으로, 농업경제부문은 품목별 전문조합으로, 생활서비스부문은 지역생협으로, 교육지원부문은 폼목연합회나 시도연합회가 담당하도록 한다. 이렇게 사업별 광역통합을 하는 경우에는 광역 신용협동조합에서 발생한 수익이 어떻게 다시 지역농민과 농업경제사업 부문으로 재투자될 것인지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농협중앙회 구조개편 없는 '조합원 직선제'는 위험

농식품부는 중앙회장 선거제를 다시 '조합원 직선제'나 '선거인단제'로 개편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농민단체들은 오래전부터 '조합원 직선제'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중앙회가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를 거느린 거대 사업조직인 채로, 농협중앙회장을 조합원 직선제로 뽑는다면 상황을 악화할 우려가 있다.

농협중앙회의 총자산은 약 710조 원이고, 자회사와 손자회사 등 3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농협금융지주는 자회사인 NH농협은행과 NH투자증권과 NH농협캐피탈을 통해서 수없이 많은 회사에 지분을 갖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우리나라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총자산 약 850-900조 원)에 버금가는 거대지주회사이다. 중앙회장의 힘은 이것으로부터 나온다. 형식적으로 중앙회장을 비상임으로 하고, 여러 제도적 장치로 제왕적 권한을 통제한다 해도, 실질적으로는 지금까지처럼 '무관의 제왕'으로 군림할 것이다.

농협중앙회장 조합원 직선제가 도입되면, 중앙회장 선거는 농민단체 간의 세 싸움이 될 것이고, 거대 경제조직인 농협중앙회는 정치논리에 휘둘려 부실화할 우려도 있다. 200만 명 농민조합원의 표심을 잡아야 하는 선거구조에서 경영의 효율성보다는 정치적 포퓰리즘을 불러올 위험이 크다. 선거는 과열될 것이고, 농민단체는 자기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둘러싸고 갈등할 것이고, 선거공신의 '낙하산 인사'가 반복되면 조직의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될 것이다.

중앙회의 회원은 회원조합이고, 조합원은 회원조합의 조합원이다. 회원조합의 조합원이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없다. 농협중앙회를 인적 분할하여 사업기능을 완전히 떼어내고 순수한 '회원조합 지원기구'로 개편해야, '제왕적 회장', '임직원을 위한 농협중앙회', '비위와 비리의 온상', '관치 농협'이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 협동조합의 연합회로서 본래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번에도 곁다리 집는 규제나 선거제도 개편에 머문다면 , 우리는 몇 년 뒤 또 다시 중앙회장의 수난 뉴스를 접하고 농협은 개혁 대상이 될 것이다. 그 사이에 우리 농업과 농민의 상황은 더 악화할 것이다.

전국에는 1111개의 지역농·축협 및 품목조합이 있다. 이들 가운데는 나쁜 조합도 있지만, 좋은 조합도 많다. 농촌 현장에서 농협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농민의 이익을 위해서 밤낮으로 애쓰는 조합장과 직원도 적지 않다. 이들조차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부는 이제는 헛발질을 멈추고, 중앙회의 인적 분할을 통한 근본적 개혁으로, 농협을 농민 조합원의 품에 돌려주고, 농협 직원들도 자긍심을 갖고 일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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