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 대학 강단에서 '사랑의 제도화'를 외치다

차종관 2026. 3. 1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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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이태석 리더십과 세계시민교육'… 11인의 강연과 '임팩트 랩'으로 실천적 리더 양성

[차종관 기자]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대강당 아주홀에서는 구수환 (사)이태석재단 이사장의 '종군기자와 이태석신부: 전쟁을 넘어, 인간을 보다!' 강연이 열렸다. 구수환 이사장이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 공익저널 차종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고발은 사랑입니다."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대강당 아주홀에서는 구수환 (사)이태석재단 이사장의 '종군기자와 이태석신부: 전쟁을 넘어, 인간을 보다!' 강연이 열렸다.

최근 고려대학교에서는 의미 있는 교양 과목이 개설돼 다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바로 '이태석 리더십과 세계시민교육'이라는 학부 수업이다. 이 과목은 고려대학교의 핵심 정신인 '공선사후(公先私後, 공적인 것을 먼저 하고 사적인 것을 뒤로 한다)' 정신이 이태석재단이 추구하는 헌신적 가치와 깊이 맞닿아 있다는 공감대에서 출발했다.

이 과목을 담당하는 전민형 주임교수는 "학생들의 가슴속에 있는 뜨거운 무언가를 이끌어내는 교육이 절실했다"고 개설 취지를 전했다. 그는 "고 이태석 신부와 같이 세계 각지에서 섬김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11명의 다채로운 명사들이 릴레이로 강단에 서서 생생한 경험담을 들려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민을 위한 저널리스트의 사명

강단에 오른 구수환 이사장은 30여 년간 방송국 PD, 영화감독으로서 활동해 온 인물이다. 과거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사회 부조리에 분노했던 구 이사장은,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방탄복을 입고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등 총탄이 빗발치는 분쟁 현장을 직접 누볐다. 그는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수장, 심지어 자살폭탄대원까지 단독으로 인터뷰하며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구 이사장은 자신이 위험천만한 전쟁터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현장에서 취재해 국민들이 올바르게 판단을 하도록 돕는 것, 즉 저널리스트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이라는 사명감으로 답했다.

그렇게 부당한 권력과 싸워 온 구수환 이사장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은 다름 아닌 이태석 신부의 헌신적인 삶이었다. 숱한 탐사 보도와 매서운 비판으로도 좀처럼 변하지 않던 세상이, 이태석 신부의 조건 없는 사랑 앞에서는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기적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고발은 바로 사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불교 신자인 그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와 <부활>은 종교의 벽을 넘어 바티칸 교황청 시노드 홀에서 상영되었고, 프란치스코 교황과 전 세계 추기경들의 벅찬 눈물을 자아내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대강당 아주홀에서는 구수환 (사)이태석재단 이사장의 '종군기자와 이태석신부: 전쟁을 넘어, 인간을 보다!' 강연이 열렸다. ‘이태석 리더십과 세계시민교육’ 과목의 연사진 리스트.
ⓒ 고려대학교
사랑을 제도로 남기다

구수환 이사장은 '사랑을 기억이 아닌 제도로 남기겠다'는 확고한 철학으로 이태석재단에 합류했다. 2023년에는 이태석리더십아카데미를 설립해 지금까지 160명의 체인지메이커들을 배출했다. 불과 4명의 직원이 일하는 재단은 자본과 권력 대신 약자를 향한 묵묵한 헌신을 무기로 삼아, 2025년 마침내 UN 경제사회이사회(UN ECOSOC) 특별협의지위를 획득하는 쾌거도 이루어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재단이 실천하는 '사랑의 제도화'가 21세기의 기술과 만나 혁신적인 궤도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단은 현재 전기가 안 들어오고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남수단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학생들이 궁금한 것을 질문하면 오프라인으로 대답해 주는 'AI 교과서(태블릿 PC)'를 제작해 보급하는 대규모 작업에 한창이다. 물질적 원조를 넘어 현지의 교육 인프라를 혁신하려는 노력은, 국제적 실천 구조로 진화한 섬김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상에서 피어나는 이타심을 향한 질문

강의에서 구수환 이사장은 이태석 리더십의 본질을 ▲진심 ▲경청 ▲정직 ▲공감능력 ▲이타주의 등의 5가지 핵심 특성으로 압축해 전달했다. 이 중 '공감 능력'의 정점은 남수단 톤즈의 한센병 환자들을 향한 헌신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 56도에 육박하는 척박한 땅에서 발가락이 썩어가는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이태석 신부는 일괄적으로 신발을 사다 주는 대신 환자마다 변형된 발의 모양을 종이에 일일이 그려 맞춤형 신발을 손수 제작했다. 환자의 문드러진 발을 직접 만지며 체온을 나눈 이 행위는 버림받은 환자들에게 생애 처음으로 인간의 사랑을 느끼게 해준 기적 같은 공감이었다. 구 이사장은 이를 두고 "세상을 바꾼 '섬김의 리더십'의 완벽한 표본"이라며 극찬했다.

구수환 이사장은 이러한 공감과 이타심이 아프리카 오지나 분쟁 지역에서만 발휘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시청각 영상 사례들을 학생들에게 연이어 보여주며 이해를 도왔다. 휠체어 탄 할머니가 길을 건너도록 차선 전체를 막아준 소방차, 태풍에 날아갈 위기에 처한 오토바이를 위해 거대한 바람막이가 되어준 버스 운전기사들, 암에 걸린 어머니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머리를 삭발한 아들, 기차 선로에 떨어진 시각장애인 어머니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시민의 모습까지. 이 사례들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이타심이 누구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치임을 드러냈다.

한 학생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다 보면, 주변의 긍정적 반응이나 세상의 변화에 취해 자칫 나르시시스트가 되거나 선민의식에 빠지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구수환 이사장은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순수한 이타심을 철저히 견지하는 것이 그 해결책"이라고 답했다. 계산 없는 투명한 이타심을 끝까지 잃지 않고 타인을 대할 때, 그것이 돌고 돌아 대중의 진심 어린 존경과 굳건한 신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봉사는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타인의 고통이 희망으로 바뀌는 모습을 내 눈앞에서 직접 목격할 때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자존감을 형성하게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대강당 아주홀에서는 구수환 (사)이태석재단 이사장의 '종군기자와 이태석신부: 전쟁을 넘어, 인간을 보다!' 강연이 열렸다. 구진성 이태석리더십아카데미 원장이 학생들의 질문을 경청하는 모습.
ⓒ 공익저널 차종관
지식을 넘어 주도적 실천으로

이 수업의 백미는 강연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곧바로 '임팩트 랩'이라는 실천 훈련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구진성 이태석리더십아카데미 원장의 주도로 진행되는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조별로 뭉쳐 특정한 사회적 문제 상황을 부여받는다. 가령 "남수단 한센인들이 맨발로 다녀 발에 상처가 심하게 나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라는 과제를 던져준다. 학생들은 치열한 토론을 거쳐 해결책을 스스로 도출해 보는 훈련을 거친다. 이는 타인에 대한 막연한 공감을 구체적이고 주도적인 행동으로 발현시키는 이 수업만의 독보적인 교육 방식이다.

한 학생은 취재진에게 "다가올 11인의 릴레이 강연들을 통해 일상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명사들로부터 섬김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이 소중한 가치들을 현실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 중이다"라며 앞으로의 수업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강의 막바지, 구수환 이사장은 이 감동이 대학 강의실 안의 낭만으로만 맴돌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학기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을 이태석 신부의 숨결이 여전히 살아있는 남수단의 한센인 마을로 직접 데려가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과 살을 부대끼는 현장 봉사를 추진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과거 고등학생들을 한센인 마을에 데려갔을 때, 아이들이 두려움을 완벽히 떨치고 환자들과 기쁘게 손을 맞잡으며 엄청난 내적 성장을 이뤄낸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구수환 이사장은 취재진에게 "지식과 현장의 강렬한 실천이 결합할 때 비로소 청년들의 내면에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이 자리 잡는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대강당 아주홀에서는 구수환 (사)이태석재단 이사장의 '종군기자와 이태석신부: 전쟁을 넘어, 인간을 보다!' 강연이 열렸다. 학생들이 '임팩트 랩' 시간에 토의를 하는 모습.
ⓒ 공익저널 차종관
시대의 갈등과 불안 속에서 경쟁에 내몰린 현대의 청년들에게, 이태석 리더십은 '무엇을 성취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타인과 연결되어 진정으로 행복해질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고려대학교와 이태석재단은 릴레이 강연과 실천 훈련을 통해 따뜻한 가슴과 행동력을 겸비한 미래의 글로벌 체인지메이커들을 양성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공익저널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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