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과 편의점 오가며 하루 300km... 체력·시간 갈아넣는 남자의 하루

임용현 2026. 3. 1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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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임제로 물류운송에 안전을 새겨 넣자④] 화물연대 서울경기본부 편의점지부 CU지회 신성균 조합원 동행취재

[임용현]

2월 21일 새벽, 유통 부문에 종사하는 화물 노동자의 일과를 따라가는 동행 취재 길에 올랐다. 약속 장소는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에 있는 한 유통 대기업의 물류자회사 전용 물류거점. 새벽 6시께 물류센터에 도착했더니, 한 시간여 앞서 현장에 나왔다는 화물 노동자는 박스 형태 화물칸이 있는 2.5 톤 탑차에 짐을 이미 한가득 싣고 운송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인사를 건네기 무섭게 서둘러 탑차에 몸부터 실어야 했다. 반나절을 꼬박 채운 긴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햇수로 16년째 이 일을 해 왔다는 화물 노동자 신성균 님의 하루, 그가 지나온 궤적을 나란히 달려가 보았다.

주 6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배송 시간표

탑차의 화물칸에는 물류센터의 도크(Dock, 입출하장)에서 출고된 물품이 테트리스 블록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 내심 이곳이 최종 목적지이길 바랐지만, 그럴 리 만무했다. 안성에서 출발해 예산~서산을 넘나드는 오전 배송 물량을 처리하고 나면, 다시 안성물류센터로 정오께 회차해서 오후 배송 물량을 상차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예산, 서산 일대로 편의점 배송 물품을 실어 나르는 2회전 배송을 모두 무사히 마쳐야만 성균 님의 일과가 종료된다. 일요일을 빼면 매주 6일 내내 일과표는 같은 방식으로 이어진다. 숨 돌릴 틈 없이 물량이 쏟아지는 날엔 끼니를 거르거나 삼각김밥 따위로 간단히 해결하는 때도 제법 있다.

"물류센터에서 편의점 상품 배송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유통 물류 본사에서 화물차 기사한테 고정적으로 배정하는 본 배송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기사가 맡은 노선을 대신 배송하는 지원 배송입니다. 저는 오후 물량이 본 배송 노선이에요. 본 배송은 말 그대로 기사님들이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일이고, 지원 배송은 본인 선택사항이에요. '나는 힘들게 일하기 싫으니까 안 할래' 하면 굳이 할 필요는 없는데, 대부분의 기사님들은 추가 수입을 원하기 때문에 지원 배송을 많이 하세요. 지금 저희가 내려가는 노선이 지원 배송이에요."

이날 신성균 님이 배송을 맡은 편의점 점포수는 오전(지원 배송) 네 곳, 오후(본 배송) 열 곳으로 평소보다 그리 많은 편은 아니라고 했다. 운전 중인 성균 님이 대뜸 업무용 앱에 표시된 숫자를 가리킨다. 평균 적재율이 50% 수준인데, 오늘 오전 물량은 적재율이 41.5%란다. 하지만 성균 님은 물류 거점에서 배송지까지의 거리가 어지간히 긴 편이라, 하루 운전 시간은 평소와 거의 비슷했다. 남들은 마다하는 외곽 지역 노선을 굳이 떠맡은 이유가 궁금했다.

"제 아내가 서산 사람이라 결혼하고 서산에 터를 잡고 살게 됐는데, 내려와 보니 변변한 일자리도 마땅찮고 참 막막하더라고요. 다행히 인연이 닿아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죠. 제가 지금 맡은 코스가 워낙 장거리다 보니까, 너무 힘들다고 다들 꺼리시더라고요. 저로서야 집이 서산인데, 배송 업무가 서산에서 끝나니까 두말없이 이 코스 맡겠다고 자청했죠."

만만치 않은 하루 여정을 순조롭게 시작하려면 일단 부지런하고 날래야 한다. 성균님은 서산 외곽에 있는 자택에서 새벽 세 시쯤 나와 안성물류센터로 향한다. 물류센터의 출고 시각은 다섯 시. 그는 센터 업무가 개시되기 전부터 현장에 일찌감치 도착하는 편이다. 피킹 노동자들이 도크장 바닥에 부려 놓은 오전 배송 물량을 확인한 다음, 배송 차량 화물칸에 하차 순서에 맞추어 상품을 적재한다. 물량이 많은 날엔 상차 작업만 한 시간 넘게 소요된다. 각 점포에 들어가는 상품이 다종다양해서, 주문서에 맞게 출고가 이뤄졌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편의점 행사 시즌마다 챙겨야 하는 프로모션 상품들이 꽤 있어요. 대표적인 게 얼마 전 밸런타인이, 이제 곧 화이트데이, 11 월에 빼빼로데이. 이런 행사 시즌에는 초콜릿, 과자, 또 인형 같은 굿즈들을 각 점포에서 대량으로 발주하시거든요. 그 외에, 저희는 보통 여름이 성수기입니다. 제가 취급하는 상품 중에는 음료나 생수 주문이 이때 폭증해서 상차 단계부터 배송 업무가 많이 늘어나죠."
 2026.02.21. 편의점 배송 물품을 카트에 적재 중인 신성균 님의 작업 모습.
ⓒ 임용현
시시각각 옥죄는 노동 통제 시스템

시멘트, 목재 등 건축용 원자재나 철강 같은 제품군의 적재 중량은 유통물류 제품에 비해 단위당 무게도 크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과적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낮은 운임 구조가 더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운송하도록 내모는 것이다. 반면, 편의점 배송 등 유통물류 시장에서는 고물가에 따른 내수 침체 탓인지 과적 문제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요즘 유통물류 화물 노동자들의 가장 큰 고충은 운전 업무 외에 추가 부담해야 하는 노동의 과중함이다. 편의점 배송 등 유통물류 부문에 종사하는 화물 노동자들은 운전 업무에 더해 적재 상품 분류 작업을 포함한 상·하차 업무, 반품 처리 및 공병 회수, 거래처(각 점포 관리자)와의 소통에 이르기까지 많은 업무를 정해진 시간 내에 쫓기듯 수행해야 한다.

"아무래도 윙탑이나 트레일러 같은 대형 차량을 모는 화물차 기사님들은 장거리 운행을 많이 하시니까 과로 문제도 당연히 있을 테고, 또 중량물을 취급하시니 과적 문제도 여전히 계속될 수밖에 없겠죠. 저는 장거리를 뛰는 편이긴 하지만, 우리 업종은 물류거점이 전국에 쫙 깔려 있어서 장거리 운행이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는 수작업 비중이 꽤 높은 데다, 정해진 시간 안에 여러 점포를 돌아다녀야 해서 중간에 쉴 짬이 도저히 안 나는 게 문제라면 문제죠."

성균 님과 12시간 가까이 붙어 지내며 느낀 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야말로 '빠듯한 한나절'이었다. 화물칸에서 물품을 내려 편의점 매장으로 옮기는 일부터 물류센터에서 출고된 물품을 수납하는 순간까지 온종일 시간과의 싸움·체력과의 전쟁이 이어졌다. 특히 편의점 배송은 편의점마다 도착 마감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그로 인해 화물 노동자들은 높은 노동강도와 휴식 시간 부족에 시달렸다.

"점착 시간이라고 정해진 시각에 맞춰 납품해야 하는 규정이 있어요. 가맹본부랑 물류센터에서 점포마다 물품이 도착하는 시간을 미리 정해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느 점포 점착 시간이 오후 1시면, 12시 전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1시 30분 이후에 들어가도 안 돼요. 이 시간대를 어기면 센터에서도 압박이 들어오고, 점포에서도 종종 항의를 받습니다."

유통기한이 짧은 상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고, (배송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이뤄지는 상품 검수 및 매대 진열 등) 점포 근무자의 업무 계획과 조응이 중요하기 때문에 점착 시간을 둔다고 한다. 하지만 엄격히 준수해야 하는 점착 시간은 화물 노동자들의 노동 밀도를 절로 강화한다. 만약 상차 작업이 지체되거나, 도로 사정으로 길이 막히거나, 심지어 점포 앞 주차 공간이 없어 늦어지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배송 지연 책임은 오롯이 화물 노동자가 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균 님은 운전대를 잡는 동안이 차라리 몸도 마음도 편하다고 말한다.

"따로 쉴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요. 오전 배송 마치고 센터로 회차하러 올라오는 길에 밥을 먹으면 그때 잠깐 쉬는 거고, 센터 복귀해서 좀 바쁘게 움직이면 2회전 배송 나가기 전에 쪽잠은 잘 수 있어요. 그래도 저는 쉬엄쉬엄 일하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편이에요."

불공정한 갑을 관계 벗어나 상호 대등한 관계로

화주사를 정점으로, 물류 전문 자회사, 그리고 실제 운송을 책임지는 운송사 및 화물 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그동안 화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체계적으로 억압해 왔다. 화주사가 물류정책 전반과 점착 시간 등 배송 기준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면, 운송사는 화주 사의 요구에 맞춰 배송을 담당할 화물 노동자를 모집하고, 노선 배정과 운임 지급, 페널티 부과 등을 담당하는 식이다. 성균 님은 운송사로부터 본 배송 수행에 따른 정액 운송료를 받는다. 그나마 기본급이라도 주어지는 게 어디냐 싶지만, 원·하청 자본이 일방적으로 책정한 운임 방정식에 화물 노동자는 아무런 의견도 개진할 수 없다.

"저희가 노조에 가입한 뒤로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지만 도대체 눈 하나 꿈쩍하질 않아요. 화물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나 몰라라 하면서, 기껏해야 매년 5만 원씩 찔끔 올려주는 기본운임으로는 길고 힘들게 일할 수밖에 없는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화물 노동자에게 안전운임제가 확대·적용됐으면 좋겠어요."

체력과 시간을 모조리 갈아 넣어야만 살아남는 이 구조를 바꾸려면, 우선 적정 운임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오늘 하루 성균 님의 이동 거리는 총 300㎞에 달했다. 온몸이 소진될 때까지 일하지 않아도 누구나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기반, 화물 노동자에게 안전운임제는 그런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3월호에도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임용현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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