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만 되면 사람 몰리는 화엄사, 홍매화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정도길 2026. 3. 13. 16:52
화엄사 각황전 앞에 터 잡은 홍매화, 3월 20일 이후 절정에 이를 듯
[정도길 기자]
텃밭 옆 작은 웅덩이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뭔 소린가 궁금해 다가가보니 개구리가 떼를 지어 울어댄다.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개구리는 본래 푸른색이 아닌 거무튀튀한 색을 띠고 있다.
긴 겨울잠에 영양분을 소진한 영향으로 보인다. 물속에는 개구리 알이 터를 잡고 성질 급한 올챙이는 꼬리를 흔들고 헤엄치며 먹이를 찾고 있다. 봄은 긴 겨울을 밀어내고 눈 깜짝할 사이에 내 곁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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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엄사 봄 기운을 느끼게 해 주는 화엄사. |
| ⓒ 정도길 |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는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맨 땅에는 새 생명이 싹을 틔우고, 나뭇가지는 꽃망울을 터뜨리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 6일, 구례 화엄사 홍매화가 첫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언론보도를 듣고 다음날 화엄사를 찾았다.
아직까지 완연한 봄은 아닌지라 쌀쌀한 날씨에도 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화엄사로 이어진다. 산자락에는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고, 일주문 앞을 흐르는 계곡 가장자리는 하얀 얼음도 녹지 않은 채 덩어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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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엄사 대웅전 화엄사 대웅전(오른쪽)과 각황전(왼쪽). |
| ⓒ 정도길 |
야외 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없어
전남 구례군에 위치한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로 지리산 국립공원 내 자리하고 있다.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 스님 연기조사께서 대웅상적광전과 해회당을 짓고 화엄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경내에는 국·보물급만 하더라도 각황전(국보 제67호), 대웅전(보물 제299호),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서 오층석탑(보물 제133호) 그리고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 등이 있다. 가히 야외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또 말사만 하더라도 전국에 걸쳐 45개소가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의 사찰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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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등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 |
| ⓒ 정도길 |
화엄사가 봄철에 인기를 끄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각황전 앞에 터를 잡은 홍매화 때문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조선 숙종 때 계파선사께서 장육전이 있던 자리에 각황전을 중건하고 기념하기 위해 홍매화를 심었다고 한다.
이 홍매화는 '구례 화엄사 화엄매'라는 이름으로 국가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런 연유로 홍매화가 만개하는 3월 중순 이후에는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찾고 있으며, 이때는 발 디딤 틈이 없을 정도로 혼잡하다고 한다. 화엄사에서는 제6회 '구례 화엄사 화엄매' 프로사진 및 휴대폰 카메라 콘테스트를 연다고 한다. 작품은 지난 2월 27일부터 오는 29일까지 촬영한 사진을 대상으로 접수한다는 알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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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엄사 홍매화 2019. 3. 24. 화엄사를 방문하여 촬영한 홍매화. |
| ⓒ 정도길 |
봄이 왔음을 알려 주는 화엄사 홍매화
화엄사의 주불전은 화엄사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각황전과 대웅전 두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 대웅전은 조선 인조 8년(1630) 벽암대사가 재건한 전각으로, 목조비로자나 삼신좌불상을 모시는 중심 공간이다. 대웅전 서쪽에 자리한 각황전에는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을 모시고 있다.
이날도 많은 불자들이 불상 앞에 삼배를 올리며 각자의 소원을 빌고, 또 다른 참배객들은 불전함에 마음을 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네댓 살로 보이는 한 아이의 혀 짧은 말에 주변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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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시 대웅전 불전함에 보시하는 여행자. |
| ⓒ 정도길 |
"부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때 묻지 아니한 아이의 순수한 언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자칭 불자라 칭하면서도 온갖 언행은 부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 역시 불법(佛法)을 공부한답시고 1천배니 3천배니, 몸이 으깨질 정도로 힘든 기도를 하고서도 절간 밖으로 나가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대리석이란 돌 자체는 빛을 발하지 않지만, 갈고 닦고를 반복하다 보면 윤택이 나고, 훌륭한 건축자재로 그 몫을 다한다. 수행도 끊임없는 정진만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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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엄사 사천왕문을 지나면서... |
| ⓒ 정도길 |
화엄사 주차장에서 약 3.8km 숲길을 따라 오르면 연기암이 자리하고 있다. 연기암은 원래 화엄사의 원찰로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하기 이전에 토굴을 짓고 가람을 세워 화엄법문을 설파한 사찰이다.
경내에 들어서면 압도적인 크기로 지리산 자락을 내려다보는 문수보살상과 마주한다. 안내문에는 원옹당 종원선사께서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사찰을 복원하면서 1989년 높이 13m 국내 최대 규모의 문수보살상을 건립했다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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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담길. 경내를 한 바퀴 돌면 이런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한다. |
| ⓒ 정도길 |
대표적인 문수보살 기도 성지 연기암
연기암은 지리산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앞으로는 유유자적하게 흐르는 섬진강을 마주하고 있다. 문수보살상외 눈길을 끄는 또 하나는 대형 마니차다. 경내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마니차는 티베트 불교에서 사용되는 법구로, 우리나라 윤장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마니차는 원통형으로 내부에 경전을 넣어두고,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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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니차 마니차를 돌리면 한 권의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다고 한다. |
| ⓒ 정도길 |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문수보살상 앞에 섰다. 두 손 합장으로 목례를 하고 무릎을 꿇었다. 사찰을 찾아 기도하기는 오랜만이다. 108배를 마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기도를 이어갔다. 나는 기도할 때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생각이 나면 그것마저 지우려 한다. 그저 용수철처럼 몸이 반복돼 움직일 뿐이다.
또 복을 비는, 구복기도(求福祈禱)도 하지 않는다. 지난 과오를 참회하고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한 기도일 뿐이다. 두 시간을 조금 넘겨서 500배를 마쳤다. 오랜만에 하는 몸 기도라 온 몸은 땀으로 젖었고, 근육은 쑤시고 고통이 느껴진다. 대신에 정신만큼은 맑고 고요하면서 환희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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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수보살상 높이 13m 국내 최고 높이 문수보살상. |
| ⓒ 정도길 |
연기암은 불자가 아니더라도 다음과 같은 여행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사찰이다. 사시사철 변하는 지리산의 자연풍경과 섬진강 운해에 빠져 보고 싶은 분. 사찰과 암자여행을 통하여 불교문화와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분. 왕복 약 8km 정도로 두세 시간 걸으면서 심신을 수행하고 단련하고 싶은 분. 그리고 대표적인 문수보살 기도 성지로 알려진 연기암에서 정진기도를 하고 싶은 분들에게 잘 어울리는 여행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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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연기암에서 아래로 바라다 보이는 섬진강. |
| ⓒ 정도길 |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다. 몸을 추스르고 경내를 나서면서 입구 간판에 새겨진 글귀에 눈이 간다. 매일같이 들려오는 뉴스에 죄와 벌에 관한 소식이 빠짐이 없다. 아래 <법구경>에 나오는 가르침을 되새기며 마음 깊이 교훈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스스로 악을 행해 그 죄를 받고
스스로 선을 행해 그 복을 받는다
죄도 복도 다 내가 만드는 것
누가 그것을 대신해 받으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티스토리 블로그 <여행, 인생여정>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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