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교감 명예퇴직 급증, 국가가 답해야 할 질문 셋

오성훈 2026. 3. 1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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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사명감마저 기각당한 교단... '독박 책임'의 사다리는 끊어졌다

[오성훈 기자]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일요일 저녁, 거실 끝자락을 붙잡은 노을이 붉게 물들 때면 어김없이 오른쪽 귀에서 날카로운 기계음이 들려온다. 월요일 출근을 앞둔 교장의 몸이 보내는 정직하고도 잔인한 신호, '이명'이다.

교감 시절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 회로에 '명예퇴직'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30여 년을 교단에서 보낸 이에게 정년퇴직은 마땅히 누려야 할 영광스러운 마침표여야 했다. 그러나 공모교장 3년 차인 지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마침표를 스스로 앞당기는 상상을 한다.

방패를 넘겨받은 자의 비명, 2024 관리자 명퇴 폭증

나만의 엄살인 줄 알았다. 그러나 최근 통계는 내 이명이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 대한민국 학교 리더십이 내지르는 비명임을 보여준다. 2023년을 기점으로 교원 명예퇴직률이 정년퇴직률을 추월했다. 특히 중학교의 명예퇴직률은 2.6%로, 공무원 연금이 대폭 삭감되던 2014년의 고점마저 뛰어넘었다.
▲ 학교급별 퇴직 현황 및 명·정퇴 역전 지표 (2023) 학교급에서 명예퇴직이 정년퇴직을 추월하며 '교단 공동화'가 현실화됨. 특히 초등학교는 명퇴자가 정퇴자의 2배에 달하며 숙련된 교원들의 이탈이 임계점에 도달함
ⓒ 오성훈
주목할 점은 2024년의 기묘한 역전 현상이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 보호 5법'이 통과되면서 평교사들의 명퇴 행렬은 2023년을 정점으로 진정세에 접어들었다. 반면, 관리자들의 명퇴는 폭증했다. 평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학교 민원대응팀'의 책임자를 교장·교감이 맡게 되면서, 정책의 '풍선 효과'가 관리자들에게 집중된 것이다. 평교사들이 방패를 얻어 겨우 숨을 돌리는 사이, 그 모든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내게 된 관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학교를 떠나고 있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지금의 관리자들에게는 줄어들 연금에 대한 걱정보다, 당장 내일 마주할 악성 민원의 화살촉이 더 공포스럽다는 뜻이다.

'정년 연장'의 시대, 왜 관리직만 탈출하는가

정치권에서는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정년 연장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풍경은 기이하다. 평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이런 말이 격언처럼 떠돈다.

"정년까지 무사히 가려면, 절대 관리자가 되지 마라. 내 수업 잘하고, 내 법적 권리 제대로 찾으며, 보직조차 거부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다."

이것은 비겁함이 아니다. 시스템이 강요한 합리적 선택이다. 학교 운영의 민주화로 교장의 인사권·지도권은 형해화되었지만, 사고나 민원에 대한 법적·도덕적 책임은 오히려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권한은 1/n로 나누어 가졌으되, 책임은 홀로 100% 짊어지는 '독박 책임자'의 자리.

여기에 담임 수당보다 적은 보직 수당이라는 '보수 역전'까지 더해지니, 관리직은 이제 영예로운 정점이 아니라 '민원의 종착역'이 되어버렸다. 이 구조적 불균형 속에서 숙련된 리더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 전체가 지불해야 할 비극적 대가다.

'사람에 대한 따뜻함을 잃어가는' 한 교육자의 고백

그러나 나를 정말로 무너뜨리는 것은 경제적 불이익이나 업무의 과중함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덧 내 마음속에 둥지를 튼 '사람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다. 평생을 공동체라는 가치 아래 살아온 교육자에게, 동료와 학부모를 향한 마음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은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충격이다.

장 자크 루소의 '사슴 사냥' 우화는 지금의 학교를 정확히 관통한다. 거대한 사슴(교육의 본질)을 잡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할 사냥터에서, 각자 생존을 위해 토끼(개인의 권리)를 쫓아 뿔뿔이 흩어지는 사냥꾼들. 사슴이 유유히 달아나는 광경을 무기력하게 목도해야 하는 관리자의 등 뒤로 서늘한 바람이 분다.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신념은 어느새 고집이 되고, 흩어지는 이들을 붙잡으려는 손짓은 꼰대의 참견으로 읽힌다.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각자도생을 선택하게 만든 구조적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이해가 내 마음의 서늘함을 지워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머리로는 납득하면서도 가슴 한켠에 남은 쓸쓸한 거리감, 그리고 그 감정을 품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어가면서까지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나는 요즘 그 질문 앞에서 자주 멈춰 선다. 그것이, 내가 명예퇴직을 고민하게 된 진짜 이유다.

아스팔트 위의 지렁이 - 살기 위해 나온 길이 죽음으로 향한다

나는 예전에 쓴 교육수필에서 아스팔트 위로 기어 나온 지렁이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땅속에 숨이 차서, 살기 위해 밖으로 나왔지만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말라 죽어가는 지렁이의 운명. 더 나은 교육을 꿈꾸며 관리직이라는 '아스팔트' 위로 올라온 수많은 교장·교감들이 지금 그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스스로와 위태로운 타협을 맺었다. 남은 2년의 임기 동안은 미친 듯이 학교장 역할을 수행하리라. 내가 사랑했던 아이들과 동료들을 다시 미워하지 않을 방법을 찾기 위해 사투를 벌일 것이다. 그리고 2년 뒤, 나는 다시 물을 것이다. 이 아스팔트 위에서 계속 숨을 쉴 것인지, 아니면 깔끔하게 물러나 학교 시스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평균인으로 돌아갈 것인지.

국가가 답해야 할 세 가지 질문

그때의 선택이 무엇이든, 그것은 비겁한 도망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개인의 결단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이제 국가와 사회가 답해야 한다. 왜 학교의 사슴 사냥꾼들이 총을 버리고 떠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첫째, 민원 대응을 외부화하라.

교장이 악성 민원의 최전선에 홀로 서는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교육청 단위의 법률 지원 전담팀과 민원 공동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 관리자 개인이 감당하는 부담을 시스템이 분산해야 한다.

둘째, 교장의 역할을 재정의하라.

교장은 시설 관리인이나 민원 담당자가 아니라 교육과정 전문가이자 공동체 갈등 중재자여야 한다. 행정 잡무를 전담 직원에게 이관하고, 교장이 수업과 교육 방향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책임에 걸맞은 보상을 현실화하라.

담임 수당보다 적은 보직 수당(부장교사) 구조는 상징적으로도 치명적이다. 이는 관리직으로 향하는 '사다리'가 완전히 끊어졌음을 증명한다. 책임은 부장이 지는데 수당은 담임보다 못한 구조가 보직 교사 기피 현상을 부추겼다. 담임을 겸하는 부장교사의 월 수당은 35만 원인 반면, 학교의 모든 책임을 지는 교감의 직급보조비는 월 25만 원이다. 이 10만 원의 역전은 단순한 금액 차이가 아니라, 국가가 학교 관리직의 노동 가치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모독이다. 책임의 무게에 비례하는 보상 체계 없이 '사명감'만으로 관리직을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은 이미 현실에 의해 기각되었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몸부림친 한 교육자의 고백이, 이 나라 교육 리더십의 마지막 경고등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무관합니다.

[참고자료]
- 2024년 10월 23일, <교육정책네트워크 교육정책포럼> 통권376호, 교육통계 '통계로 본 교원: 양성 및 수급, 나이, 퇴직을 중심으로', 임소현,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센터 소장, 선임연구위원
- 루소 인용: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5), 사슴 사냥 우화 참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성훈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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