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와 마라도가 수련 잎처럼 뜨는 곳, 제주 송악산 기행
3월 3일부터 3월 9일까지 제주를 여행했다. 망설임 끝에 올라선 송악산 길 위에서 제주 참모습과 역사의 이면을 대면하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들리는 절울이의 낮은 숨소리를 통해 삶과 자연이 하나의 결로 이어져 있음을 깨달은 여정이었다. <기자말>
[전갑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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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악산의 시작을 알리는 웅장한 표지석과 제주의 상징 돌하르방이 탐방객을 맞이한다. |
| ⓒ 전갑남 |
사실 이름 끝에 붙은 '악(岳)' 자에 못내 겁을 좀 먹었던 탓도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오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번번이 발길을 붙잡았다. 지도 위 깎아지른 절벽의 형상만 보고는, 송악(松岳)이 내게 허락되지 않은 험산이라 지레 짐작하며 높게만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정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문을 열어주었다. 인근 용머리해안의 물때를 확인하니 오후 3시경이나 되어야 탐방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바다가 잠시 길을 막아선 그 멈춤의 시간이 오히려 송악산의 속살을 대면하라는 권유처럼 다가왔다. 퇴로 없는 일정 앞에, 비로소 나는 오랫동안 미뤄둔 '악'의 품속으로 조심스레 첫발을 내디뎠다.
고독한 산길에서 마주한 자연과의 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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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의 바람에 몸을 맡긴 채 금빛으로 물든 억새밭이 여정의 끝자락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
| ⓒ 전갑남 |
현재 송악산은 오름의 생태 회복을 위해 일부 구간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정상 분화구를 볼 수 있는 탐방 코스는 열려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편안한 둘레길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곁을 지키던 아내가 걱정스러운 듯 한마디 건넸다.
"난 편한 해안 길로 갈 테니 당신 혼자 다녀오구려. 딴 길로 들지 않게 조심하고."
"이 사람, 산길은 결국 다 만나게 되어 있으니 걱정 말라구."
막상 산길에 접어드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둘레길의 시끌벅적한 인파 소리가 멀어질수록 발바닥에 닿는 흙의 감촉과 바스락거리는 마른 풀잎 소리가 선명해졌다. 혼자라는 두려움은 곧 자연과 독대하는 설렘으로 변해갔다.
수평선 위 수련 잎처럼 뜬 섬들, 가파도와 마라도
드디어 시야가 수직으로 터지며 정상에 올라섰다. 가쁜 숨도 잠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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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깊게 패인 송악산 분화구 전경. 육안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거대한 분화구에서 태고의 숨결이 느껴지는 아찔한 깊이감이 전해진다. |
| ⓒ 전갑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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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앞에는 거대한 조각품 같은 산방산이 웅장하게 버티고 섰고, 그 너머로 영험한 한라산 능선이 길게 이어진다. |
| ⓒ 전갑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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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악산에 보이는 가파도, 마라도. 푸른 비단 같은 바다 위에 정갈하게 떠 있는 가파도와 마라도의 전경이 평화롭다 |
| ⓒ 전갑남 |
은빛 윤슬과 억새밭 조랑말의 평화로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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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겹겹이 쌓인 시간이 빚어낸 해안 절벽과 유려한 곡선의 데크 길이 파란 바다와 조화롭다. |
| ⓒ 전갑남 |
"그러게. 저 높은 곳까지 물은 어떻게 가져다 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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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의 속도와 상관없이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풀을 뜯는 조랑말이 송악산의 고요를 완성한다. |
| ⓒ 전갑남 |
찬란한 풍경 아래 숨겨진 역사의 아픈 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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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비경 아래 숨겨진 아픈 역사의 흔적인 일제강점기 진지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다. |
| ⓒ 전갑남 |
어느덧 약속한 오후 3시. 너울성 파도가 발목을 잡는 바람에 용머리해안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쉬움이 컸지만, 바다는 길을 막는 대신 산방굴사로 우리를 안내했다. 송악산이 보여준 웅장한 기운과 아픈 역사를 가슴에 담고, 이제 우리는 산방산이 흘리는 눈물을 만나러 다시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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