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부른데도 김치전골을 하나 더 시켰다

전세정 2026. 3. 1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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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담그신 김치와 함께 한 점 한 점 천천히 먹었다.

허리 꼬부리고 문밖만 바라보지 말고 이제는 아버지 옆에 앉아 소주 한 잔 하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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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아버지와 마주 앉은 저녁 식탁... 몇 번이나 더 이런 식사를 할 수 있을까요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세정 기자]

삼겹살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알았다. 아, 이 집은 다르다. 배가 고픈 상태도 아니었다. 자카르타에서 한국까지 오랜 비행 끝에 도착한 지난 2일, 몸은 무거웠고, 솔직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부모님이 맛있는 고기를 사주신다 하셨지만 처음엔 "저는 괜찮아요" 하고 사양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가보면 달라. 꼭 가야 해."

마지못해 따라간 식당은 외관부터 허름했다. 1994년에 문을 열었다니 올해로 30년이 넘은 집이다. 세월을 그대로 머금은 실내와 낡은 의자. 문을 들어서는 순간 솔직히 '괜히 왔나' 싶었다.
 경남 진주에 있는 30년 된 식당 ‘산청흑돼지’.
ⓒ 전세정
구수하고 고소한 맛. 자카르타에서 삼겹살을 먹을 기회는 많았지만 이런 깊은 맛은 오랜만이었다. 직접 담그신 김치와 함께 한 점 한 점 천천히 먹었다. 어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안 먹는다더니 맛있지? 잘 먹네. 실컷 먹어둬."

그 말을 듣고 나니 괜히 더 먹게 됐다. 그러다 벽에 걸린 액자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삼겹살집에 시가 왜 있지?' 워낙 활자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라 상추쌈을 싸먹으면서도 눈은 이미 시를 읽고 있었다.

시에는 평생 붕대를 감은 손으로 고기를 썰던 아버지가 있었다. 간판 불이 꺼지면 지친 손목으로 소주 한 병 기울이며 문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시간이었다.
▲ 흑돼지 김사장, 내 아버지 식당 벽에 걸린 시 '흑돼지 김사장, 내 아버지'
ⓒ 전세정
그 옆에는 또 한 편의 시가 걸려 있었다. 평생 가게를 지켜온 어머니에게 건네는 아들의 말이었다.허리 꼬부리고 문밖만 바라보지 말고 이제는 아버지 옆에 앉아 소주 한 잔 하라는 이야기였다. 지금 이 집을 이어받은 사장님이 부모님께 바친 시라고 했다.
▲ 어머니를 위한 시 식당 벽에 걸린 시 '어무이 어무이'
ⓒ 전세정
아버지의 팔순이었다. 잔치는 며칠 전 가족들이 다 모여 이미 치렀다. 그날은 그저 부모님과 같이 밥을 먹는 평범한 저녁이었다. 옆동네에서 만나 밥을 먹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자리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사남매 중 셋째인 나는 이렇게 부모님과 셋이서만 밥을 먹은 적이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다는 걸 그날에서야 문득 떠올렸다. 2012년 자카르타에 온 이후 부모님과의 식사는 어느새 당연한 일이 아니라 일정을 어렵게 맞춰야 가능한 일이 되었다. 앞으로 또 언제 이렇게 셋이서 밥을 먹게 될까,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날 저녁, 넘어간 건 고기만이 아니었다. 배가 불렀는데도 김치전골을 하나 더 시켰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조금 더 앉아 있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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