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바당길, 그리고 숲길을 따라 걷는 제주시 올레

문운주 2026. 3. 1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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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17코스 ②] 제주의 민속문화와 자연 풍경을 만나는 길

[문운주 기자]

▲ 조랑말등대 제주 조랑말의 모양을 딴 빨간색과 흰색의 등대
ⓒ 문운주
4일 오후 1시, 용두암을 지나 서해안로에 들어섰다. 검푸른 바다와 바람, 바람에 밀려오는 하얀 파도, 현무암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온몸으로 전해진다. 그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제주 바다가 주는 묘한 울림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길은 다그네마을과 어영소공원을 지난다. 길가에는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천수 '섯물'이 눈에 띈다. 용천수는 지하수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을 통해 지표면으로 솟아나는 물로, 예전 제주 사람들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한 물이었다.

섯물은 여성들이 사용하던 전용 용천수로 알려져 있다. 물을 사용하는 용도에 따라 칸을 나누어 첫째 칸은 마시는 물, 둘째 칸은 채소를 씻는 물, 셋째 칸은 목욕이나 빨래를 하는 물로 사용했다고 한다.

섯물을 지나 다시 바당길을 따라 걷는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길 끝에서 도두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주시 도두동에 자리한 도두봉은 높지 않은 오름이지만 전망이 뛰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오르면 금세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 서면 시야가 시원하게 열린다. 한쪽으로는 제주국제공항 활주로가 내려다보이고, 다른 쪽으로는 푸른 바다와 해안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낮은 오름이지만 제주 바다와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덕분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도두봉을 내려오면 길은 다시 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이호테우해변에 닿으면 붉은 조랑말 등대와 흰색 조랑말 등대가 나란히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푸른 바다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색감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든다.
▲ 이호동 쌍원담 돌담을 원형으로 쌓아 밀물 때 들어온 멸치나 물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잡는 제주의 전통 어업 방식이다. 옛 문헌을 바탕으로 복원해 현재는 체험 활동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문운주
▲ 이호태우해변 제주 이호테우해변의 무지개 다리 위로 제주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가 낮게 지나가는 풍경
ⓒ 문운주
이호테우해변의 또 다른 볼거리는 쌍원담이다. 간조 때가 되면 넓은 백사장과 함께 바다 위에 원형 돌담 구조가 드러난다. 원담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제주의 전통 어로 방식이다. 이곳에는 이를 복원한 '이호 모살원'이 남아 있어 옛 제주 어민들의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머리 위로는 제주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낮게 지나간다. 무지개색으로 꾸며진 다리 위로 비행기가 내려오는 장면은 이호테우해변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바다와 등대, 그리고 비행기가 한 장면에 들어오는 이곳은 제주올레 17코스에서 만나는 인상적인 풍경 가운데 하나다.

이호테우해변을 지나 올레길은 현사포구를 거쳐 내도마을에 이른다. 해안가에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세운 내도 방사탑이 서 있다. 바다에서 들어오는 부정한 기운과 재앙을 막기 위해 둥근 자갈을 모아 허튼층쌓기로 만든 제주 특유의 돌탑이다. 예전에는 마을에 여섯 기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이 탑만이 남아 옛 모습을 전하고 있다.
▲ 내도알작지 파도와 자갈이 부딪히는 소리가 매력적으로 아름다운 알작지 해변
ⓒ 문운주
▲ 월대 광령천이 흐르는 월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제주 올레길 풍경.
ⓒ 문운주
방사탑에서 조금 걸어가면 내도 알작지 해변이 나타난다. 모래 대신 둥근 자갈이 해안을 이루고 있어 파도가 밀려왔다 빠질 때마다 자갈이 부딪히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린다. 설문대할망이 오백장군의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외도 일대를 개간하면서 나온 돌을 바다에 쌓아 두어 알작지가 만들어졌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알작지를 지나 광령천을 따라 걷다 보니 월대에 닿는다. 넓게 펼쳐진 현무암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물빛이 잔잔하다. 한적한 풍경 속에 서 있으면 오래전 이곳을 찾았다는 시인과 묵객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동쪽 숲 사이로 떠오른 달빛이 물 위에 비치면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다운 장면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옛사람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 청보리밭 올레길을 따라 펼쳐진 푸른 보리밭 풍경. 제주의 들녘이 초봄의 빛으로 물들고 있다.
ⓒ 문운주
광령천을 따라 약 4km, 한 시간 남짓 걸었을까. 무수천 숲길이다. 호젓한 시골길과 완만한 경사길이 이어지는 한적한 길이다. 무수천은 한라산 서북계곡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광령천과 만나 외도 앞바다로 흘러간다. 인간사의 근심이 사라진다는 뜻이 담겨 있지만, 때로는 물이 없는 건천의 특징을 가리키기도 한다.

숲 아래 깊은 계곡에는 기암절벽과 작은 폭포, 맑은 물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숲 사이로 부는 바람과 물 흐르는 소리가 어우러져 고요한 분위기를 만든다. 제주올레 17코스에서 바다 풍경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무수천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어 마지막 길을 서둘러야 했다. 무수천을 건너 길을 따라 디오름과 중간산간 서로를 지나 애월읍 광령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7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주올레 17코스는 바다와 마을, 시장과 숲이 이어지는 길이다. 산지천에서 시작해 동문시장과 제주목 관아, 바닷길과 마을길을 지나 무수천 숲길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자연과 사람들의 삶이 한 길 위에서 만난다. 하루 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제주라는 섬이 지닌 또 다른 얼굴을 천천히 보여준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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