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폭주, 대법원 판결 뒤가 더 위험하다
대법원이 제동을 걸었지만 트럼프의 관세정치는 끝나지 않았다. 문제는 통상질서의 공백이다. <기자말>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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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 ⓒ 백악관 |
2026년 2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밀어붙인 상호관세에 제동을 걸었다. 핵심은 대통령 권한의 한계를 확인한 데 있다. 그러나 이 판결이 곧 트럼프식 보호무역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곧바로 무역법 301조와 무역확장법 232조 같은 대체 수단으로 눈을 돌렸고, 실제로 3월에는 한국을 포함한 16개 경제 주체를 상대로 301조 조사 절차를 개시했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301조와 232조는 발동 절차가 까다롭고 적용 범위에도 제약이 있지만, 일단 작동하기 시작하면 관세율 상한이 사실상 없고 사후 조정 재량도 매우 크다. 트럼프 1기 때 301조는 약 37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7.5~25% 관세를 부과하는 근거가 됐고, 232조는 철강 관세율을 25%에서 50%로 올리는 데 활용됐다. 대법원이 IEEPA를 막았다고 해서 트럼프의 관세 정치가 멈추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지금 벌어지는 일은 "위법한 관세가 멈췄다"가 아니라 "더 법적으로 버티기 쉬운 관세수단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쪽에 가깝다. 청와대가 최근 미국의 301조 조사 개시에 대해 기존 한미 관세 합의에서 확보한 이익 균형이 훼손되지 않고, 주요국 대비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적극 협의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문제는 미국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위기는 이런 일방주의를 제어해야 할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사실상 마비 상태라는 점이다. 상소기구는 2019년 이후 미국의 위원 임명 봉쇄로 기능을 멈췄고, 그 결과 패소국이 상소만 제기한 채 최종 판정을 지연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규칙은 남아 있지만, 규칙을 끝까지 집행할 장치가 멈춰 선 것이다.
물론 대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한 다자간 임시상소중재약정(MPIA)이 상소기구 공백을 메우는 보완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기준으로 MPIA 참여는 52개국, 세계무역 점유율은 약 30% 수준에 그치며 한국도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다. 제도적 대체 경로는 존재하지만, 미국을 포함하지 못하고 포괄성도 충분하지 않다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첫째, 미국과의 양자협상에서 불리한 대우를 피하는 단기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둘째, WTO 상소기구 복원과 분쟁해결제도 정상화에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셋째, MPIA 같은 대체 장치 참여 여부도 전략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반복될수록, 개별국가의 협상력보다 다자제도의 복원력이 훨씬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관세는 미국 경제를 근본적으로 살리는 해법이라기보다, 상대를 압박해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거래의 수단에 가깝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규범보다 힘이 우선하는 통상질서가 굳어질수록, 한국처럼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가장 먼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트럼프의 자발적 자제를 기대하는 일이 아니다. 그가 규칙으로 돌아오지 않을수록 대가(비용)가 커진다는 사실을 국제사회가 집단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WTO 개혁, 분쟁해결체제 복원, 대체 중재제도 보완, G20과 유엔 차원의 규범 재확인이 함께 가야 한다. 대법원 판단 하나로 안심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 국제질서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면, 트럼프는 떠나도 트럼프주의는 남는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학교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일본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재난안전과 글로벌 위기관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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