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위해 감옥 갈 수 있나"…10조원 짬짜미 '걸려도 남는 장사' 끝났다[설계자들]④

허경준 2026. 3. 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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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식품가격 담합 근절 위한 전문가 제언
"담합 가담 직원에 대한 형사처벌 강화" 목소리
"리니언시는 담합 견제·적발 위해 필수"
편집자주
밝은색을 띨수록 고급으로 분류되는 '하얀 가루'. 조선 시대 '진가루'라고 불리며 귀한 대접을 받던 밀가루는 6·25 전쟁 이후 원조 물품으로 대량 유입돼 폐허가 된 한반도 백성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줬다. 국수부터 라면, 빵, 과자 등 국민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밀가루는 식품 산업의 필수 원재료로, 가격이 오를 경우 밀가루를 원료로 한 식품 가격뿐만 아니라 '밥상·외식물가'도 동반 상승해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키웠다. 아시아경제는 검찰의 밀가루 담합 사건 공소장을 토대로 6조원에 이르는 '밀가루 가격 담합' 설계 과정을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지난 6년간 담합이 어떻게 서민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었는지 해부했다.

"시장 지배력을 악용한 담합 행위는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고 시장 신뢰를 훼손하며 국민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암적 존재다."(2월19일 수석보좌관회의)

"주가 조작하면 패가망신한다고 했는데, 담합이나 독과점 남용도 마찬가지다."(3월10일 국무회의)

이재명 대통령이 10조원대에 달하는 설탕·밀가루 가격담합 사건과 관련해 연일 강도 높은 비판과 함께 경제적 제재를 주문하면서 정부가 짬짜미 기업에 대한 과징금을 대폭 올리기로 했다. 또 내부 신고를 통해 담합을 견제할 수 있도록 포상금을 상향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경제 제재 강화와 함께 그동안 '걸려도 남는 장사'라고 할 정도로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담합이 반복되고 있는 만큼 가담자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3일 검찰의 밀가루 가격담합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2월 기소된 송모 대한제분 대표는 2006년 적발된 8개 제분사 담합 당시 대한제분 영업차장을 지내면서 경쟁사와 담합 회의에 참석해 경쟁업체 임직원들과 밀가루 가격 및 공급량을 합의했다. 검찰은 "이미 과거 밀가루 가격 담합 사건에도 적극 가담한 사실이 있다"고 적시했다.

"담합 가담자 '형사 처벌' 수위 상향 필요"

이처럼 담합 가담자가 또다시 짬짜미에 나서는 것은 현재 담합에 대한 과징금은 법인에만 부과되고 있고 실제 담합을 논의하고 실행한 개인(직원)에 대해서는 경미한 처벌에 그치면서다.

현행 공정거래법 124조는 담합 사업자(기업)와 담합을 지시하는 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 처벌 수위가 현저하게 낮은 것이다.

경쟁법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는 개인에 대한 적극적 처벌을 통해 반독점법의 목적을 실현하고 있는데, 반독점법 위반으로 기소되는 개인의 수가 법인보다 월등히 많고 재판에 넘겨진 이들 중 절반이 넘는 비율로 실형이 선고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에는 담합 가담자에 대해 징역 5년 이하 또는 무제한의 벌금, 캐나다는 징역 14년 이하 또는 무제한의 벌금, 호주는 징역 10년 및 66만호주달러(약 6억6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할 수 있다. 덴마크, 루마니아, 일본도 최대 징역 5~6년의 중형을 선고할 수 있을 정도로 담합 가담자에게 엄격한 처벌을 하고 있다.

법무부 법무실장(검사장)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을 지낸 구상엽 변호사는 "현재 담합 가담자에 대한 처벌은 징역 3년 또는 벌금 2억원인데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과징금이나 벌금 같은 금전적인 페널티가 효과를 내지 못한다면 주범에 대해서는 강력한 형사처벌도 고려를 해야 한다"고 했다. 김형배 전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도 "기업들은 이익이 생긴다면 담합을 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담합 가담자에 대한 형사처벌 수준이 높아지고 많아져야 한다. 내가 회사를 위해서 감옥에 갈 수 있느냐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담합에 대한 고발을 오직 공정위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한 '전속고발권'도 문제다. 공정위가 고발할 경우에만 검찰이 담합 가담자를 기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검찰총장에게 고발요청권을 부여했는데, 오는 10월 검찰청이 폐지되면 중대범죄수사청 등 다른 수사기관으로 이관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담합 사건에서 독보적인 검찰의 수사 역량이 암장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담합, 단절할 수 없다면 '적발률' 높여야

담합을 단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경제학 관점에서 볼 때 담합을 통한 기업의 이익이 커지기 때문에 담합이 적발될 때 예상되는 처벌 수준보다 기대이익이 높은 현재 체계에서도 담합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담합할 경우 큰 불이익이 따른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구 변호사는 "독과점시장에서 합리적 판단을 한다면 담합을 하는 게 맞다"며 "담합을 막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위험 요인이 있어야 하고 위험 요인이 있기 때문에 담합을 하면 큰일 나겠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담합의 사회적 비용이 100억원인데, 적발률이 20%밖에 안 되면 페널티를 100억원이 아니라 500억원으로 상향해서 적발률을 높이고 담합으로 인한 리스크, 불이익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이황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농경문화의 역사적인 특성상 담합이 완전히 근절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고 담합이 다른 나라에 비해 심한 것은 억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적발률이 100%라면 과징금이 다소 적더라도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고, 과징금이 아무리 높게 책정되더라도 적발이 안 된다고 하면 담합이 계속될 것이다. 적발률을 높이려면 공정위 등 법 집행기구의 집행 능력을 향상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리니언시 적극 활용… 창구는 단일화해야"

최근 과징금 면제 창구로 비판받고 있는 리니언시(자진신고 감면제도)는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담합을 적발하기 위해서는 리니언시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리니언시는 기업들에 '담합이 언제든 발각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줄 수 있어 담합을 억제하고 적발률을 올릴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수단으로 꼽힌다.

김 전 원장은 "리니언시로 인해 언제든 담합이 적발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담합을 억제하는 효과가 아주 크다"며 "리니언시로 처벌을 면한다는 도덕적인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리니언시 제도가 없다면 담합은 적발되지 않을 것이고 담합을 더 쉽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공정위에서 담합을 적발하는 것도 자진 신고가 대부분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담합은 대부분 자진 신고를 통해 적발되는 것"이라며 "공정위에 입찰 담합의 경우 여러 분석을 통해 담합을 예측한 뒤 적발하는 시스템이 있지만, 일반적인 가격 담합은 담합을 한 기업 관계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현재 리니언시 창구가 공정위와 검찰, 두 곳으로 나뉘어 있어 자진신고를 하더라도 과징금 면제 등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정위·검찰 중 한 곳으로 창구를 단일화해 기업들이 리니언시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 변호사는 "리니언시 창구는 단일화해서 공정위와 검찰이 실시간으로 공유하면 되는데 현재 공정위와 검찰의 협업이 잘 이뤄지는 상황이 아니다"며 "(담합은) 밥그릇 싸움을 할 대상이 아니다. 리니언시가 실시간 공유되는 등 협업이 제대로 된다면 담합에 대한 적발률은 드라마틱하게 올라갈 것이고 리니언시 혜택도 공정위와 검찰에 동시에 접수한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고 했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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