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사형 구형... 가라앉지 않는 마음 한편의 의심

김안녕 2026. 3. 1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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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학이 말을 건넬 때] 시간의 겹침 속 떠오르는 얼굴

2026년 3월 27-29일간 DMZ와 파주 인근에서 열릴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은 전쟁과 분단, 혐오와 차별,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연속 기고 '다시 문학이 말을 건넬 때'는 분단과 경계, 평화, 민주주의, 디아스포라, 마이너리티라는 다섯 가지 의제를 중심으로, 세계의 문학이 경유해 온 고통의 역사와 그 너머의 가능성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어보고자 기획되었습니다. <기자말>

[김안녕]

 1980년 5공화국 정권 창출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정화라는 미명 아래 삼청교육대 입소생들이 봉체조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엄마에게는 오빠가 넷 있었다. 그중 셋째 외삼촌은 지금 이 세상에 없으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말수가 없고 외톨이였고 헝클어진 긴 머리에 허름한 옷차림은 모든 이에게 '접근하지 마시오'라는 무언의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몸집이 꽤 큰 편이었으므로 나는 그가 동화책에 나오는 야수나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 담배 심부름이나 시키고 밤낮없이 막걸리만 퍼마셔 대는 그가 엄마의 오빠라니, 가당치 않았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외삼촌이 어째서 사람 아닌 꼴을 하고 살아가는지 알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도 동네 건달처럼 지내던 그는 제5공화국 시절 '사회 정화'라는 명목하에 삼청교육대로 끌려갔고,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 돌아왔을 때는 이미 사람이 아닌 몰골이 되어 있었다. 사랑했던 아내는 고향 강물에 몸을 던진 후였고 어린 딸은 당연히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다(그의 딸은 나와 동갑내기 외사촌이다). 그 지경에 과연 누가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 집안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12·12 군사정변과 1980년 5·17 비상계엄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는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후 사회 통제를 강화했다. 불량배 척결이라는 명목으로 시작된 삼청교육대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은 국가폭력의 상징이 됐다. 삼청교육대의 설립 목적은 '사회에 존재하는 범죄자 및 인간 말종 등을 교화시켜 대한민국의 치안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날조되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신군부의 계엄포고 13호에 따라 1980년 8월 1일부터 이듬해 1월 25일까지 6만 755명의 국민이 영장 없이 검거됐다. 그리고 이 가운데 3만 9742명이 순화교육 대상으로 분류돼 삼청교육대로 보내졌다. 특정한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민중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찍히면' 그냥 가는 곳이었다, 삼청교육대는. 그리고 우리 역사는 끝내 전두환을 단죄하지 못했고, 그 불완전한 마침표 위에서 오늘을 살고 있다.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
 2024년 12월 3일 '12.3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의도 국회에 투입된 무장 군인들.
ⓒ 연합뉴스/로이터
2024년 12월 3일 위헌적인 비상계엄이 있었던 그날, 셋째 외삼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권력자의 횡포에 의해 산산조각 나 버린 한 인간의 삶과 사랑.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

몸에 전기가 일어났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의 얼굴에 전두환이 오버랩되었다. 미처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가지도 못했던 그 밤, 몸을 웅크린 채 공포와 분노에 떨어야 했다. '5·18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다니. 이건 전쟁이야. 막아야 해, 막아야 해...'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그렇게 나를, 우리를 1980년대 한복판으로 다시 이동시켰다.

돌아보면 2025년 4월 4일, 윤석열 탄핵이 선고되기 전까지 모든 일상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았다. 만약 그들의 음모가 성공했다면? 노상원 수첩 속의 플랜이 실현되었다면?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디스토피아가 떠올랐고, 도무지 시를 쓸 수 없었고, 밥을 잘 넘길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노상원의 수첩 속 '수집소'인 오음리, 현리, 화천, 양구, 인제 등은 전두환 신군부가 운영했던 삼청교육대 소재지였다. 추미애 윤석열내란진상조사단장의 말처럼 내란 세력은 국민을 반국가 세력으로 임의로 분류하고, 장기 구금할 소련의 굴라그 같은 정치범 강제 노동수용소를 기획한 거였다.

만약 그들의 내란이 성공했다면 이명박근혜 정권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들도 어쩌면 오음리로, 양구로 끌려가 수용되었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그 당시 블랙리스트 작가로 낙인찍혔으니 어쩌면 굴라그에서 하루하루를 때우는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가 되었을지도.

2026년 1월 13일, 내란 특별검사팀은 윤석열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2월 19일, 재판부는 1심에서 윤석열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금은 또 2심의 향방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판결의 무게가 어떠하든 내 마음 한편의 의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역사는 언제나 법정의 문장만으로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의심은 불신이 아니라 기억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기 위해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역사)이 겹쳐질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을 잊지 않기 위해 의심한다.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되니까. 시간의 겹침 속에서 필연적으로 어떤 얼굴은 다시 떠오른다. 나는 그 얼굴을 외면할 수 없다. 그러니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안녕 시인입니다. [DMZ세계문학페스타 홈페이지 바로 가기] https://dmzwl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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