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 위해 개인 재산을 털어 산성을 쌓은 의병
[김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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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산성 |
| ⓒ 김명희 |
개인이 사비로 성을 축조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런 까닭에, 현장을 답사해서 성곽 안을 거닐어보면 다른 여느 산성에서 느낄 수 없는 감동을 맛보게 된다. 성채 아래로 보이는 김도현 지사 생가와 고향마을 전경도 1910년 경술국치 전후를 떠올리게 하여 가슴 뭉클한 기분에 젖게 된다.
검산성의 대단한 역사적 가치 두 가지
검산은 동쪽에 하천이 흘러 절벽을 이루고, 북쪽과 서쪽은 경사가 심하며, 남쪽은 경사가 완만한 대지를 이루고 있다. 산성은 이러한 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산 정상에서 남쪽을 향하여 서쪽과 남쪽에 성벽을 쌓아 올렸다.
서쪽의 경사면에는 약 200m 길이의 돌과 흙을 섞어 쌓았던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남쪽은 대지를 이용해서 그 둘레에 성벽을 쌓았으나, 동쪽은 자연 벼랑을 이용하고 따로 성벽을 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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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산성에서 내려본 김도현 지사 고향마을 |
| ⓒ 김명희 |
과거 응시 없이 독서와 학문에 전념하던 김도현은 1896년 2월 16일 고향 인근 청량산으로 찾아가 의병 활동을 시작했다. 스승 이만도가 지휘하던 제1차 선성(예안의 옛이름)의진의 잔류 병력이 그곳에서 제2차 의병부대를 결성하고 있었다.
1월 25일 창의한 제1차 선성의진은 경군(서울 주둔 조선 중앙군)과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8일 만에 해산당했다. 제2차 선성의진은 열흘 동안 봉화, 영주, 예안을 순회하며 무기와 사람을 모은 김도현의 노력에 힘입어 병력이 수백 명으로 늘어났다.
김도현의 노력으로 의병부대 규모는 커졌지만
3월 26일 선성의진을 비롯한 7개 의병부대는 문경 산양에 집결해 회맹 의식을 가졌다. 김도현은 선성의진 중군장을 맡아 3월 29일 상주 태봉 전투를 치렀다. 그러나 의병군은 경험 부족과 열악한 무기 탓에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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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산성 내부와 검산 |
| ⓒ 김명희 |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스승의 뒤를 따라
1910년 나라는 끝내 망했고, 스승 이만도가 10월 15일 자정순국했다. 스승의 단식을 말리러 갔던 김도현은 이만도에게 자신도 순국하겠다고 했다. 스승이 도리어 "자네는 어른이 살아 계시지 않은가?"라며 말리는 사태가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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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해단(김도현 지사 순국지 기념 시설) |
| ⓒ 김명희 |
붉은 피가 온 간장에 가득찼도다(赤血滿腔腸)
중년 열아홉 해를 의병으로 보냈더니(中間十九載)
머리카락이 허옇게 서리가 내렸구나(鬚髮老秋霜)
나라가 망하니 눈물이 끝없고(國亡淚未已)
어버이 여의니 마음도 아프도다(親歿心更傷)
머나먼 바다 언제나 보나 했는데(萬里欲觀海)
이레 만에 때마침 동지로구나(七日當復陽)
외롭게 서 있으니 고향 산은 푸른데(獨立故山碧)
아무리 헤아려도 방책이 없도다(百計無一方)
희고 흰 천길 물속을 보니(白白千丈水)
내 한 몸 간직하기에 부족함이 없겠구나(足吾一身藏)
그 이튿날인 12월 24일은 동지였다. 아침 8시쯤, 김도현은 동해바다를 향해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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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현 의병장 생가 |
| ⓒ 김명희 |
김도현 지사의 호를 원용한 '벽산 생가'가 공식 명칭이다. 성주 김창숙 생가, 문경 이강년 생가와 마찬가지로 벽산 생가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국가유산청 누리집 해설에 따르면 "이 가옥은 임진왜란 때 군자감정으로 선조를 호위했던 선생의 10대조 김응상이 1580년경 건축하였다고 하나 양식으로 미루어 18세기 이후의 건축으로 추정"된다.
16세기에 첫 건축, 18세기 이후 다시 지은 집
3칸으로 만들어진 대문채 앞에 서서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확인해본다. 하지만 야속하게도대문은 굳게 잠겨 있다. 당연히 일반 답사자가 집 자체를 세밀하게 관람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뒤꿈치를 들어올려 담장 너머로 건물과 뜰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집은 경상도 북부 지역 상류층 주택답게 ㅁ자형 모습을 보여준다. 앞면과 옆면이 각각 4칸으로 정사각형의 상당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구조가 폐쇄적이다. 도해순국도 그러한 정신의 발로일 것이다. 하지만 김 지사는 망국 직전 계몽교육운동을 펼쳐 신식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던 인물인 만큼 사람 자체가 폐쇄적이지는 않았다.
생가 담장을 따라 돌면서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어본다. 대문에서 오른쪽으로 중간쯤 가서 담 너머로 들여다보는 순간, 본채 지붕 위로 검산성이 보인다. 마치 김도현 지사를 직접 만나뵙는 듯한 감동을 안겨주는 장면이다. 성곽 위에서 생가를 내려보았던 감회를 되새기면서, 언제 오면 집 안으로 들어가볼 수 있을까 또 생각해본다. 지난 7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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