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만에 열린 국보…‘원각사지 십층석탑’ 내부 들어가보니

서지영 2026. 3. 1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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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보호각 설치 이후 첫 내부 공개…정교한 조각 눈길
시민·학생 도슨트 해설 프로그램 운영…예약 7분 만에 마감
11일 오후 한 시민이 유리 보호각 안에 있는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을 보기 위해 내부로 들어가고 있다. 서지영 기자

“아마 가장 기다리셨을 시간입니다. 원각사지 십층석탑 유리각 내부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사다리 타고 들어가 보겠습니다.”

현장 해설사(도슨트)를 따라 사다리를 타고 내부로 내려서자 웅장한 석탑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 약 12m에 이르는 석탑은 고개를 최대한 들어올려야 꼭대기 층이 보일 정도였다. 탑신에 새겨진 동물과 식물 문양은 설명이 없어도 형태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섬세했다.

조선 전기 대표 석탑이자 국보 제2호인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내부가 27년 만에 시민에게 공개됐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석탑은 훼손에 취약해 1999년 유리 보호각이 설치돼 보호돼 왔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1467년 세조 재위 당시 왕실 발원으로 건립됐다. 화강암이 일반적인 우리나라 석탑과 달리 대리석으로 조성된 점이 특징이다. 탑신 곳곳에는 불·보살상과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어 조선 전기 불교 미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1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있는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모습. 서지영 기자

도슨트는 석탑 기단부에 새겨진 조각의 의미도 설명했다.

기단부 1층에는 용과 사자, 연꽃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각각 불법 수호와 마귀 퇴치, 깨달음을 상징한다. 특히 발톱이 다섯 개인 ‘오조룡’ 문양이 눈길을 끈다. 도슨트는 “당시 다섯 발톱의 용은 황제만 새길 수 있는 문양이었다”며 “세조의 왕권 강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기단부 2층에는 삼장법사가 불경을 구하기 위해 인도로 향하는 ‘서유기’ 장면이, 3층에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른 성자인 ‘나한’상이 새겨져 있다. 탑신부에는 부처의 설법 장면 등이 층마다 다른 모습으로 표현돼 있다.

상층부에도 사연이 있다. 도슨트는 “8~10층은 한때 바닥에 떨어진 채 방치돼 있었다”며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약탈을 시도하다 실패하면서 분리됐다는 설이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이후 상층부는 광복 이후인 1946년에야 현재 모습으로 다시 쌓아 올려졌다.

이번 공개는 원각사지 십층석탑의 보존 방식 한계를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1999년 산성비와 조류 배설물로부터 석탑을 보호하기 위해 유리 보호각이 설치됐다. 하지만 두꺼운 유리와 빛 반사로 관람이 어렵고 보호각 내부의 결로와 통풍 문제도 지적돼 왔다.

원각사지 십층석탑 해설을 맡은 성균관대 동아리 ‘역사좀아일’ 팀 양서연(왼쪽), 박경은씨. 서지영 기자

이날 현장을 찾은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서울에 사는 40대 여성 김모씨는 “유리막이 없을 때 석탑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배경을 잘 몰라 큰 감흥이 없었다”며 “이후 역사에 관심이 생긴 뒤 다시 보니 뜻깊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역사학을 전공한 이정용(36·남)씨는 “대학 시절 경천사지 십층석탑과 비교 발표를 한 적이 있어 직접 보고 싶었다”며 “매진 이후 새벽에 취소표가 나와 방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원각사지 석탑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국보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형태와 구조를 계승한 후대 작품으로 평가된다.

취소자 공석으로 현장 신청을 통해 관람한 최장조(75·남)씨는 “우연히 탑골공원에 들렀다가 행사 소식을 듣고 신청했다”며 “옛사람들의 기술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직접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번 해설은 성균관대 동아리 ‘역사좀아일’ 학생들이 맡았다. 팀장 양서연(20·여)씨는 “종로구에서 학교를 다니며 탑골공원을 자주 지났지만 이렇게 많은 역사가 있는지 몰랐다”며 “시민들이 공원의 역사적 의미를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관람 프로그램 사전 예약은 이미 마감됐다. 종로구 관계자는 “9일간 진행되는 프로그램 예약은 접수 당일 7분 만에 마감됐다”며 “전 시민을 대상으로 하루 두 차례 회차에 각 10명씩 모집했고 이후 종로구민을 위해 회차당 5명을 추가로 받았다”고 밝혔다.

구는 이번 개방을 계기로 기존 보존 방식의 한계를 점검한다. 국가유산청과 함께 새로운 보존 대책을 논의해 나갈 계획이다.


서지영 기자 sur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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