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로 돌아간다” 나이키의 매니페스토
“나이키는 선수들을 위해 존재하는 회사입니다. 우리는 신체를 가진 모든 사람을 ‘선수’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게 바로 우리의 임무입니다.”
지난달 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나이키코리아 사옥에서 만난 체이스 테일러(Chase Taylor) 제너럴 매니저(이하 GM)가 나이키의 정체성에 대해 정의한 말이다. 지난해 11월 나이키코리아 수장으로 부임한 그는 북미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브랜드 전략을 이끌어온 내부 출신 리더다. 디지털과 마켓 전략을 두루 거친 이력만 보면 성장과 확장을 먼저 말할 법도 한데, 이날 그가 가장 많이 반복한 단어는 다름 아닌 ‘선수’, 그리고 ‘스포츠’였다. 한국 시장에서 나이키를 다시 ‘스포츠 회사’로 읽히게 하겠다는 선언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국내 스포츠 시장은 뜨겁다. 러닝은 도시 문화가 됐고, 스포츠웨어는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했다. 하지만 참여 구조를 들여다보면 다른 장면이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94.2%가 하루 1시간 이상 중강도 운동을 하지 않는다. 질병관리청 조사에서도 주 5일, 하루 60분 이상 운동하는 여학생 비율은 8.5%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용품 소비는 늘었지만, 스포츠의 저변은 충분히 넓어지지 않았다. 테일러 GM이 ‘모든 사람이 선수’라는 정의를 다시 꺼낸 이유다. 그는 “스포츠를 경험하는 건 단순히 땀을 흘리는 행위가 아닌 회복탄력성과 자존감을 키우는 과정”이라며 스포츠를 태도의 문제로 설명했다. 나이키가 다시 ‘스포츠로 돌아간다(Return to Sport)’고 말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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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그 이후를 설계하다
지금 한국 스포츠 시장의 중심에는 러닝이 있다. 테일러 GM 역시 러닝을 “우리의 DNA”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최근 한국 시장에서 신흥 러닝 브랜드들이 약진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그는 “러닝 시장이 커지는 것 자체를 고무적으로 본다”며 여유를 보였다. 제품 판매보다도 나이키 런 클럽(NRC)과 같은 커뮤니티 문화를 먼저 구축해온 ‘퍼스트 무버’라는 자부심에서 나온 여유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러닝을 하나의 스포츠 종목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러닝은 우리의 헤리티지이지만, 우리는 선수의 여정 전체를 본다”고 설명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최근 출시된 ‘나이키 마인드(NIKE MIND)’다. 바닥에 동그란 볼이 박혀있는 운동화와 슬리퍼 라인으로, 10여 년간 신경과학 기반 연구를 통해 개발된 새로운 카테고리다. 발의 감각 수용체를 활성화해 경기 전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경기 후엔 회복을 돕는 기능에 집중했다. 출시 후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테일러 GM은 “혁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선수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나이키의 숙명”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문장은 선명했다.
“나이키만큼 선수의 일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하는 기업은 없습니다. 경기장에서의 기량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준비와 회복입니다. 나이키 마인드는 신체와 정신을 연결하겠다는 혁신적 철학의 결과물입니다.”
1년에 1950억원, 스포츠 환경 조성에 써
스포츠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메시지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 나이키는 매년 전년도 세전 이익의 2% 이상을 지역사회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이 원칙에 따라 2024년(회계연도 기준)에는 1억3300만 달러(약 1950억원)를 집행했다. 이익의 일부를 환원하는 이유로 테일러 GM은 접근의 장벽을 줄이는 것을 전략의 핵심으로 꼽았다. “스포츠는 특정한 사람만의 사치가 아니라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내서도 나이키의 사회 환원 프로그램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폐신발과 의류를 재활용해 조성한 무료 스포츠 공간 ‘모두의 운동장’은 서울 금천구 독산동(1호), 강남구 개포동(2호)에 이어 올해 1월 서울시립강북청소년센터에 세 번째 공간을 열었다. 스포츠 프로그램 ‘액티브 모두’와 ‘킥키타카’는 여자아이들이 팀 스포츠를 경험하도록 설계했다. 참가자들에게 유니폼과 장비를 지원해 특히 운동량이 적은 여자아이들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물리적 장벽을 낮췄다. 그는 “어릴 때의 팀 스포츠 경험은 평생 이어진다”며 “협동과 도전을 함께 배우는 경험이 장기적 참여로 이어진다”로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들은 접근 기회 확대(Access)-긍정적 스포츠 경험(Experience)-인식 변화(Perception)로 이어지는 나이키의 SCI(사회 및 지역사회 임팩트)전략에 충실히 따랐다.
“디지털·오프라인 잇는 소통에 집중할 것”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인 테일러 GM의 이력은 기술 강국인 한국 시장에서 강력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 그는 디지털을 소비자의 일상에 스포츠를 녹여내는 ‘경험의 수단’으로 정의했다. 1000만회 이상이라는 NRC 애플리케이션의 높은 설치율에서 보듯, 나이키는 디지털 기술을 한국 소비자 개개인의 움직임과 유기적으로 결합했다.
테일러 GM의 리더십은 그의 고향이자 나이키의 고향인 미국 오리건의 개척 정신과 한국의 따뜻한 공감이 맞물려 있다. 취임식 당시 직원들에게 백설기를 돌린 일화는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한국 팀원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는 “외국인 수장이 아닌 진정한 한국팀 일원으로서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소통은 지난 6일까지 성수동에서 열린 ‘나이키스킴스’ 팝업스토어에서도 잘 드러난다. 나이키스킴스는 킴 카다시안과 나이키의 협업으로 탄생한 새로운 라인으로, 팝업은 본격적인 국내 론칭 시점에 맞춰 ‘여성 선수들’이 이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게 마련된 소통의 방법이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한국의 많은 선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나이키의 심장과도 같은 한마디를 남겼다. “Just Do It!”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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