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 라커룸 연설, 에스프레소, 정장, 보첼리 합창까지...이탈리아 야구의 특별한 매력 [더게이트 WBC]

배지헌 기자 2026. 3. 1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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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멕시코 연파한 이탈리아, 사상 첫 조 1위 8강행
-콜레티 단장 "이민자 조상 기억하라" 연설에 라커룸 눈물
-에스프레소와 정장, 보첼리 합창...야구 낭만이 만든 이변
네드 콜레티 단장(사진=MLB.com)

[더게이트]

2026 WBC는 이변의 연속이다. 강호들이 속속 흔들리고, 예상 밖의 팀들이 판을 뒤집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강렬한 기적의 주인공은 단연 이탈리아였다. 22명의 MLB 올스타를 앞세운 최강 미국을 8대 6으로 격파하고, 다음 날 멕시코마저 9대 1로 압살하며 B조를 4전 전승으로 통과했다. 사상 첫 조 1위 8강 진출. 그 돌풍의 배경에는 이탈리아인의 뿌리와 혈통을 건드린 감동적인 연설이 있었다.

USA투데이는 12일(한국시간) 밥 나이팅게일 기자의 기사를 통해 네드 콜레티 단장이 말하는 이탈리아 야구 대표팀 돌풍의 배경을 조명했다. 마르코 마치에리 이탈리아 야구연맹 회장이 "기적"이라 칭한 이 이변 뒤에는, 경기 전 라커룸에서 울려 퍼진 콜레티 단장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한마디가 있었다.

미국전을 앞둔 선수들에게 콜레티는 '뿌리'를 이야기했다. "여러분의 증조부와 조부, 부모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 땅을 밟았다. 미래도, 생존의 보장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들은 지하철을 뚫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세우고, 구두를 만들며 머리를 깎았다. 이탈리아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위대한 이들의 후손이다. 그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뛰어라."
네드 콜레티 단장(사진=MLB.com)

"눈물은 부끄럽지 않다, 이건 기적이다"

라커룸은 잠시 정적에 잠겼고, 이내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미국전 승리 후 호텔 방으로 돌아온 콜레티 단장은 나이팅게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감동적이었고 놀라웠다"며 "눈물이 났지만 부끄럽지 않다. 역대 최강이라 불리는 팀을 상대로 우리가 이겼다"고 털어놨다. 월드시리즈를 다섯 차례 경험하고 두 번 우승반지를 받아든 71세의 베테랑 야구인에게도 이 밤은 달랐다.

LA 다저스 단장 출신인 그가 이탈리아 단장직을 수락한 건 단순한 이력서 채우기용이 아니었다. 120년 전 시칠리아를 떠난 조부모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콜레티는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다. 이번 승리는 우리 조상들에게 드리는 작은 감사"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엔 독특한 낭만과 문화가 있다. 더그아웃 한쪽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상시 가동 중이다. 홈런을 치고 들어온 선수에게 팀 주장 비니 파스콴티노가 에스프레소 한 잔을 건네고, 아르마니 재킷을 입혀준 뒤 양 볼에 키스하는 세리머니를 펼친다. 프란체스코 서벨리 감독은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삶의 방식"이라며 이탈리아 특유의 여유를 드러냈다.

선수단 복장에서도 '뿌리'가 느껴진다. 뉴욕 양키스 시절 사령탑 조 토레 감독의 영향을 받은 서벨리 감독은 모든 선수가 경기장에 올 때 수트를 차려입도록 했다. 낮 경기든 밤 경기든 예외는 없다. 콜레티 단장 역시 미국전 당일 파란 줄무늬 정장을 입고 더그아웃을 지켰다.

피닉스에서 휴스턴으로 향하는 전세기 안에선 노래로 하나가 됐다. 이탈리아 본토 고리치아 출신 백업 포수 알베르토 미네오가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를 선창하자, 미국 태생 선수들까지 하나가 되어 따라 불렀다. 통로에서 춤을 추고 와인을 기울이며, 비행기 한 대가 이탈리아어 노래로 가득 찼다. 콜레티 단장은 "40년 야구 인생에서 수천 번 전세기를 탔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고 했다.

하나로 뭉친 이탈리아 선수들은 운동장에서 연일 세계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전에선 선발 마이클 로렌젠이 4.2이닝을 2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았고, 카일 틸과 잭 캐글리온, 샘 안토나치가 홈런포를 가동하며 8대 6 승리를 일궈냈다. 9회 마지막 투수 그렉 와이서트는 지구상 최강의 타자 애런 저지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서벨리 감독은 "마지막 아웃이 저지일 줄 알았다. 지구상 최고의 선수는 항상 그 자리에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의 에스프레소 세리머니(사진=MLB.com)

역사가 된 파스콴티노의 3홈런 몰아치기

이어진 멕시코전에서는 파스콴티노가 영웅으로 우뚝 섰다. 대회 내내 12타수 무안타로 침묵하던 그가 한 경기에서 솔로홈런 세 방을 터뜨렸다. WBC 역사상 한 경기 3홈런은 파스콴티노가 최초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그날 세 번 가동됐다. 선발 애런 놀라의 5이닝 무실점 호투를 더해 9대 1 대승을 거둔 이탈리아는 조 1위라는 믿기지 않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이탈리아 의회에서는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직접 이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축하를 전했다.

선수단 21명이 미국 출신 이탈리아계인 이 팀에서, 본토 출신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이는 샘 알데게리뿐이다. 세르벨리 감독은 "이탈리아의 모든 아이가 이 장면을 봐야 한다"며 "꿈을 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우리가 직접 보여줬다"고 말했다.

기적을 쓴 아주리 군단은 이제 한국 시간 15일, 휴스턴 다이킨파크에서 푸에르토리코와 8강 단판 승부를 벌인다. 미국과 멕시코를 연달아 꺾은 저력이라면 어떤 상대도 두렵지 않을 법하다. 이번 대회 가장 매력적이고 개성 있는 팀으로 전 세계 야구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탈리아의 도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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