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될 바엔 상가 빼고 갑시다”…공실 공포에 뒤바뀐 재건축 트렌드

# 서울 송파구 ‘잠실우성4차’ 재건축 조합은 지난해 7월 조합 총회에서 정비계획을 32층에서 49층으로 변경하면서, 상가 14개를 지으려던 계획을 함께 제외했다. 상가 조합원마저 상가보다는 아파트 분양권 받기를 원하면서 설계를 전면 수정한 것이다. 잠실우성4차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상가 조합원이 총 28명인데 상가를 받겠다는 대여섯명을 빼고 대부분은 아파트 분양을 원했다”며 “상가를 지어도 분양이 안 되면 재건축 사업이 큰 손해를 낼 수밖에 없어 계획을 수정했다”고 전했다.
재건축 시장에서 단지 내 상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아파트를 신축하는 단지에서 상가는 필수 시설로 여겨졌다. 상가 분양 수익이 조합원 분담금을 낮추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정반대다. 온라인 소비 확대와 배달 서비스 확산으로 단지 내 소규모 상가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공실 위험이 커졌다. 이런 상황이 심화되자 애초에 재건축을 할 때부터 상가를 안 짓는 단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따르면,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재건축 12개 단지 가운데 9곳이 애초 정비계획에 상가를 포함하지 않거나, 상가 수를 줄여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기존에 상가가 있었던 강남구 ‘개포주공5단지’와 ‘도곡개포한신아파트’, 송파구 ‘가락미륭아파트’와 ‘잠실우성4차’ 등은 상가 조합원과 합의해 상가를 짓지 않기로 했다. 상가 대신 아파트 배정이나 현금 청산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식이다.
관리처분인가를 받기도 전에 이미 상가를 짓지 않기로 합의한 경우도 많았다. 통합 재건축을 추진 중인 강남구 ‘대치우성1차·쌍용2차’는 2022년 사업시행인가를 받아놨지만, 2년 뒤인 2024년 상반기 상가를 짓지 않기로 합의했다. 대치우성1차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상가 조합원 중 상가 분양을 희망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상가를 안 짓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재건축 사업시행계획을 수립 중인 영등포구 여의도 ‘공작아파트’에서는 상가 면적을 축소했다. 이 아파트가 위치한 부지는 상업지역으로 분류돼 있었는데, 지난해 5월 서울시 조례가 개정돼 상업지역에서 비주거 비율을 20%에서 10%로 축소하면서 판매·업무시설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이외에 송파구 ‘가락프라자’와 ‘가락삼익맨숀’도 상가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재건축을 진행 중이다. 가락삼익맨숀아파트 단지 조합 관계자는 “2019년 조합설립 때부터 상가와 아파트 조합이 독립정산(잠깐용어 참조)을 하기로 했음에도 의견이 맞지 않아 상가를 빼고 주택 부문만 재건축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분양 안 되면 조합만 손해”
온라인 소비 확산에 1층 상가도 ‘텅’
재건축 단지에서 상가가 외면받는 이유는 사업성 때문이다. 과거에는 상가 분양이 잘되면 조합 재정에 도움이 됐다. 2019년 경기 부천 ‘힐스테이트중동’ 단지 내 상가 ‘힐스에비뉴’를 분양할 당시만 해도 최고 216 대 1 경쟁률을 기록했고, 사흘 만에 완판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분양과 공실이 늘면서 상가가 오히려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서초구 방배동 ‘원페를라’ 단지 상가 역시 아직은 불이 꺼진 채 비어 있는 점포가 많다. 전용 33㎡(약 10평) 규모 점포가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를 35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낮춰 재모집에 나서는데도 공실이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신규 입점을 준비하고 있는 한 상가조차 사무실 용도로 사용이 예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정비 업계 관계자는 “단지 내 상가가 완판될 것을 가정하고 관리처분계획을 세우면, 조합 대부분이 추가분담금을 걷는 총회를 한 차례 더 거치게 된다”며 “오피스텔이나 임대주택을 짓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가가 애물단지가 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애초에 상가가 완판되지 못하고 미분양으로 남는 이유는 높은 분양가 탓도 있다. 앞의 올림픽파크포레온 단지 내 상가 중 ‘스테이션9’의 경우 1층 분양가가 3.3㎡당 1억5000만원, 대로변 점포는 2억5000만원까지 책정됐다. 전용 33㎡ 기준 분양가가 13억~15억원 수준이다. 공실 해소를 위해 일부 물량은 최대 2억원 할인 분양이 거론됐지만 임대와 분양 모두 쉽지 않은 상황이다. 둔촌종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전용 20㎡(약 6평) 안팎 점포 임대료가 수백만원이라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외식 업체 같은 체류형 업종이 들어오기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재건축 단지에서 상가를 없애는 또 다른 이유는 조합 내 갈등이다. 과거에는 재건축에 회의적인 상가 소유주(또는 조합원) 동의를 확보하기 위해 산정비율(잠깐용어 참조)을 낮춰주는 등 우호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상가 부지를 재건축 단지에 포함시켜 대단지를 만드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에서다. 2023년 8월 입주한 ‘래미안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 재건축)’도 정관상 산정비율을 1에서 0.1로 낮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가 조합원과 아파트 조합원 사이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소송으로 번지는 사례가 적잖았다. 서초구 ‘신반포2차’ 재건축 단지는 상가 조합원의 아파트 분양 기준을 완화하는 정관 변경을 두고 일부 조합원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업 일정이 수년간 지연됐다. 정비 업계에서는 상가를 아예 없애면 이런 갈등을 차단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마침 재건축 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서울시는 지난해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상가 등 비거주시설 의무 설치 비율을 기존 연면적 20% 이상에서 10% 이상으로 낮췄다. 준주거지역에서는 상가 없이 아파트만 짓는 것도 가능해졌다. 근린생활시설 없는 재건축을 사실상 허용하지 않던 기존 방침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정비 업계에서는 상가를 제외하거나 줄여 재건축하는 트렌드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본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온라인 소비와 대형 상권 확산으로 단지 내 소형 상가는 경쟁력이 약해졌다”면서도 “일부 단지에서는 상가를 짓되 학원가 등 필요한 상권을 조성하거나, 아예 상가를 지하에만 구성하는 방식도 고민 중”이라고 귀띔했다. 일례로 한창 철거가 진행 중인 성북구 신월곡1구역 재건축 조합은 오는 4월 사업시행변경인가 신청을 앞두고 상가를 분양하되 대형 학원가를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월곡1구역 조합 관계자는 “주상복합이라 상가 규모가 꽤 큰데 인근에 대학가와 학교가 많은 점을 고려해 학원을 조성해야 한다는 일부 조합원 의견이 있어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잠깐용어 *산정비율 | 상가 조합원이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지를 좌우하는 비율. 기본 1이며, 1보다 낮을수록 상가 조합원에게 유리한 구조.
잠깐용어 *독립정산 | 재건축을 할 때 단지나 상가·아파트별로 개발이익과 비용을 따로 계산해 각자 정산하는 방식.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0호(2026.03.11~03.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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