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구청 기획과장의 위기... 그는 왜 춤을 추었나

조영준 2026. 3. 1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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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538]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

[조영준 기자]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제가 한별의 불도저가 되겠습니다."

한별구청의 기획과장인 국희(염혜란 분)는 뛰어난 업무 능력과 빠른 실행력에 완벽주의까지 갖춘 해결사다. 부구청장의 비리로 구청이 위기에 놓이자 제일 먼저 나서는 것도 역시 그다. 자신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강한 통제력으로 조직을 이끌며 팀원들을 강하게 다그치고 감정이나 여유보다 높은 업무 효율을 최우선으로 삼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 덕분일까? 승진도 코앞으로 와 있으며, 하나밖에 없는 딸 해리(아린 분) 또한 임용시험 합격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균열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국희의 삶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 완벽하게 통제된 것처럼 보이던 그의 삶에 축적되어 있던 피로와 긴장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조현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는 치열하고 딱딱한 삶의 태도를 갖고 살아가던 직장 여성이 우연히 플라멩코를 접하게 되며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춤이라는 낯선 언어를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삶의 또 다른 리듬을 배우며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정답만 요구받는 사회에서 엇박자라 여겨지는 순간이 오히려 숨 쉴 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메시지가 핵심이라고 스스로 밝힌다.

02.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먼저, 구청의 비리, 청탁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 그 사활을 위해 필요했던 지역 예술가들의 참여는 열정페이 문제로 둔갑한다. 공석이 된 부구청장 자리를 탐내던 총무과장 태식(박호산 분) 또한 이 틈을 타 온갖 구설수와 음모로 국희를 끌어내리려 혈안이 된다. 같은 과 주무관인 연경(최성은 분)은 심약한 성정으로 시키는 일마다 실수를 연발하고, 심지어 지역 민원인(백현진 분)은 청원을 올리며 구청의 문제를 언론에 제보하고자 한다.

임용고시에 합격하자마자 편지 한 통만 남기고 가출을 감행한 딸 해리의 문제도 사소하지 않다. 그동안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믿었던 가정 내부의 균열은 직장에서의 권위가 훼손되고 통제권을 잃어버리는 일만큼 결정적이다. 집과 사무실밖에 모르던 인물이 양쪽 모두의 공간으로부터 붕괴의 징조를 경험하는 것. 이제 이 문제는 단순히 어느 한쪽의 관계나 조직, 주어진 역할이 만든 삶의 형상이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온 궤적에 대한 물음이 되어 관객들에게 던져진다.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03.
"왜 이렇게 온몸에 힘을 줘요?"

이야기의 중요한 전환점은 민원인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국희가 플라멩코 학원을 찾게 되는 순간이다. 그 자리에서 처음 방문한 수강생으로 오해받게 되는 해프닝은 그로 하여금 삶의 새로운 리듬을 경험하게 만든다. 스페인 남부에서 발전된 춤으로, 강한 리듬과 격렬한 감정 표현이 특징은 플라멩코는 수직적 상하관계와 결재 체계, 철저히 규정된 업무와 직책으로 이루어진 사무실 내부의 리듬과는 완전히 다르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딸만 남기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탓에 억척과도 같은 마음으로 살아남는 것에만 몰두하며 앞만 바라보고 살아온 그에게는 더욱 그렇다. 다시 말해서, 플라멩코를 처음 마주한 국희에게 이 춤은 단순히 새로운 취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알지 못했던 삶의 새로운 방식과 다른 삶의 리듬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처음 국희의 몸은 춤의 리듬에 전혀 익숙하지 않고, 뻣뻣하게 굳은 몸 상태로 어색한 동작만 반복한다.

부정적 균열이 동시에 밀려왔듯이, 삶의 변화 또한 여러 자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영화적으로 가장 입체적으로 두드러지는 변화가 플라멩코였을 뿐, 국희라는 인물 개인의 시점에서는 이전에 존재했던 삶의 양태를 뒤흔들만한 계기가 여럿 주어지고 있었다는 의미다. 특히, 가출한 딸의 가녀린 팔뚝에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자해 흔적을 여럿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자신이 옳은 것이라 믿었을 그 리듬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기괴한 형태로 숨죽이게 되었는지 알게 하는 순간이 된다. 내가 가진 리듬의 유지가 자신의 노력으로만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뿌리 내린 자리의 흔적이다.

하나가 더 있다. 그런 해리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는 연경과 함께 옥상에서 사이코드라마 역할극을 하는 장면이다. 연경이 딸을 연기하며 그동안 이야기하지 못했을 부분들을 쏟아내는 동안 국희 또한 설명하지 못했을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며 딸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 극 중에서 두드러지는 리듬의 전환, 이 세 자리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건 스스로 그 상황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서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해에 의한 우연, 타자의 강한 압력, 혹은 주어진 기회, 어떤 장면 속에서도 예외는 없다.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04.
"구두가 어디로 이끄는지 집중하시라고요."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에서 표면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인물은 두 사람 국희와 연경이다. 하지만 관계성으로 따지자면, 여기에 딸 해리가 포함되는 세 사람의 삼각 구조가 흥미롭다. 먼저, 이 작품은 세 인물의 관계를 단순한 가족 서사나 직장 서사로 환원하지 않는다. 세 사람은 극적 갈등과 화해의 서사를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보다는 한 인물이 서로 다른 위치에서 어떻게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치에 가깝다(후반부에서 연경이 국희와 해리의 화해를 주선한다는 점에서는 장치적 활용이 전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딸에게는 일방적인 강요와 억압으로 다가설 수 있는 어머니이자 어린 주무관에게는 롤모델로서 일거수일투족을 닮고 싶은 상사인 국희. 한 인물에 대한 상반된 시선이 이 영화의 관계 구조를 흥미롭게 만든다.

딸 해리에게 국희는 늘 일에만 매달려 있는 부모다. 공무원 조직에서 완벽한 업무 처리와 승진만이 우선시되는 인물. 그런 삶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자식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견지하고자 하는 태도가 아닌 다른 모든 경우의 모습은 일탈과 나태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로 낙인됨으로 인해서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지점들에 대해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이해할 기회도 충분히 주어지지 못했고, 필요한 대화를 가질만한 시간도 나누지 못했다. 한편, 언제나 심약한 연경에게 국희는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비친다. 불안과 공황을 겪으며 일하는 그에게 국희의 단단한 태도와 완벽한 업무 능력은 일종의 기준이자 직업적 모델이 된다. 같은 인물을 두고도 한쪽에서는 반발이, 또 다른 한쪽에서는 동경이 일어나는 것이다.

국희는 가족이라는 사적 관계와 조직이라는 공적 관계, 두 자리 사이에 놓인다. 능력 있는 과장이자 여전히 부족한 어머니, 두 세계의 대립을 그리려는 건 아니다. 한 인물이 두 세계 사이에서 어떻게 다른 얼굴을 갖게 되는지 보여주는 것. 그 경계를 경험하며 자신이 어떤 어른으로 살아왔는지, 어떤 리듬과 태도를 견지해 왔는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 구조는 단순히 세 인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사회와 가족 사이에서 어떤 의미로 존재하게 되는지 탐색하는 방식인 셈이다. 그리고 플라멩코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촉매제이자 융화제, 그리고 피날레(Finale)가 된다.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05.
"미안해, 그런 삶을 강요해서. 이제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에서 플라멩코는 단순한 취미나 문화적 도구가 아니다. 국희에게는 평생 유지해 왔던 삶의 리듬이 다른 방식으로도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경험이다. 조직의 효율과 통제, 그리고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히 묶여 있던 삶의 태도는 춤의 리듬을 통해 조금씩 풀려간다. 연경에게도 이 경험은 언제나 두려움 속에서 움츠려있던 몸을 조금씩 앞으로 내딛게 만드는 시간이 된다. 그렇게 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다른 한 사람은 처음으로 스스로의 삶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화는 그 모든 과정을 듀엣(Duet)을 시도하는 두 사람의 시간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작은 시도, 서로의 몸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움직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속에서 서서히 드러내고자 한다. 다른 리듬의 존재를 인정하고 배우는 일로부터 시작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내일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자리에서 시작된 변화는 하나의 질문이 되어 선명히 떠오른다. 우리는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또 그 리듬은 우리의 삶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가. 두 인물 국희와 연경이 더 넓은 바다와 더 깊은 호수가 되어 성장할 수 있었듯이, 우리 또한 이 질문 속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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