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텃밭의 계절, 변덕쟁이 농부로 변신할 시간

이지현 2026. 3. 1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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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종하며 그려 보는 수확의 꿈... 싹 나오고 열매 맺는 행복, 겨울 동안 만든 근육 쓸 준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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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기자]

 민들레
ⓒ 이지현
활활 타고 있는 화목보일러에 장작을 가득 밀어 넣고 돌아서며 시린 손을 호호 불던 그곳에 오늘 아침 민들레가 피었다. 앞마당에는 산수유가 눈을 뜨고, 홍매화도 피고 동백꽃이 살포시 웃고 있다. 끝나지 않을 듯한 겨울이 3월 봄비와 함께 소리 없이 물러선 것이다. 그렇다면 텃밭을 사랑할 때가 되었다.

긴 겨울은 텃밭 농부에게 충전의 시간이다. 농부라 표현하니 대단해 보이지만 퇴직자에게 특별한 직함이 없으니 스스로 붙여준 나의 명함이다. 겨울 동안 동네 건강 생활 지원 센터에서 매일 오전 자전거 타기와 걷기, 어깨 운동을 열심히 하였다. 이제 마트에서 10kg 쌀을 구입하면 스스로 쌀포대를 들고 주방으로 향한다. 남편 퇴근을 기다려서 쌀을 옮겼던 이전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다.

시골이지만 건강 생활 지원 센터 맞은편에 예쁜 한옥 도서관이 있어 겨울에는 도서관을 자주 찾는다. <오마이뉴스> 책동네 코너를 보면 읽고 싶은 책이 많이 있다. 중년의 작가가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소개한 책 <삶은 도서관>은 혼자서 피식 여러 번 웃었다.

사토 신이치의 <나이든 나와 살아가는 법>에서는 퇴직자의 지역 사회에서의 활동 편을 보고 "나도 잘살고 있구나"라며 위로했다. 건강 생활 지원 센터에서 운동하며 센터 협의체 지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마을에 있는 교회에도 출석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는 한자 자격시험에 도전하여 한자 3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기회가 되면 아이들에게 한자 학습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

'마당 골프'라 이름 붙인 제초 작업
 홍매화 꽃과 산수유
ⓒ 이지현
산수유가 눈을 뜨면 나는 '마당 골프'를 시작한다. 산수유, 동백꽃 봉우리와 함께 잠자고 있던 잡초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힘차게 올라오기 때문이다. 골프를 좋아하던 친구가 어깨가 아파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어깨 상태가 시골에서 농사일 많이 한 것 같아요"라고 했다는 말을 들으며 큰 소리로 웃었던 적이 있다. 그 후 농업용 괭이를 이용하는 나의 제초 작업은 '마당 골프'가 되었다. 마당 한쪽에 잔디밭이 있으니 전혀 근거 없는 표현은 아닌 것 같다. 텃밭을 일구며 평생 궁금하지 않았던 질문을 했다.

"하나님! 천지창조 하실 때 먹을 것만 만들지 왜 잡초를 만드셨나요? 쓸모없이 귀찮기만 한 것을."

우연히 책 속에서 답을 찾았다. 잡초들이 뿌리를 깊숙이 내려서 땅속에 산소를 공급한다고. 아! 너도 필요한 존재였구나. 잡초를 제거하고 퇴비를 뿌리고 예쁘게 물고랑을 만든 후 완두콩과 옥수수, 고수를 심었다. 나는 아직 작물들의 파종 시기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걱정이 없다. 건강 생활 센터에 가면 운동 친구들이 씨앗을 가져와 파종 시기를 알려주고 관리하는 방법, 수확 시기까지 농업에 관한 모든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나는 말을 잘 듣는 착한 학생이 되면 충분하다.
 운동 친구가 가져온 씨앗 (옥수수, 완두콩, 고수)
ⓒ 이지현
2026년 첫 농사는 내가 텃밭의 승자가 될 것 같다. 다만 나의 텃밭을 아침저녁으로 살피는 똑똑한 '고라니'가 문제다. 생김새는 꼭 사슴 같은데 그 예쁜 고라니의 함성은 어찌 그리 미운지... 그 녀석은 내가 잠들어 있는 밤에도 절대 쉬지 않는다. 어느 날 혼자 왔다가 다음 날 둘이서 같이 오기도 한다. 친구인지, 연인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 부부보다 훨씬 다정해 보인다. 식성 좋은 고라니도 싫어하는 게 있다. 깻잎이랑 완두콩, 고수, 갓은 울타리를 만들지 않아도 먹지 않는다. 어린 콩잎이 나오면 나보다 먼저 발견하고 먹어버리는데, 왜 완두콩을 싫어하는지 물어도 답이 없다.
파종하며 그려보는 수확의 즐거움
 매화꽃(홍매실, 청매실)
ⓒ 이지현
사실 고수는 가을에 파종해 봄에 수확하는 게 고수 향의 거부감이 적고 단맛이 있어서 좋았는데 지난 가을 장마에 파종 시기를 놓쳤다. 옥수수는 씨앗을 여러 번 나누어 심으면 수확 시기가 달라서 보관의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지난해 수확한 옥수수는 오랫동안 아침 식탁의 단골 메뉴였다. 완두콩은 어린이날에 수확할 수 있으리라. 푸르고 탱글탱글한 완두콩 찰밥을 할 것이다. 추석에는 송편 속에도 넣을 것이고. 매실은 홍매화꽃이 청매실보다 조금 빠르게 핀다. 화사한 홍매화꽃은 9월에 달콤한 매실청으로 변신한다.

텃밭 농부인 나의 모습은 영락없는 변덕쟁이 아이다. 파종을 했을 뿐인데 수확을 꿈꾸며 즐거워한다. 제초제는 멀리하고 잡초별곡을 부를 때에는 힘들다 투덜대면서 어린싹이 올라오면 감탄하고, 토실한 열매가 있어 나눌 때는 행복이 뿜뿜 한다. 은퇴 후 고향에 내려온 동네 친구가 지난 여름에 "텃밭의 로망이 원망이 되었다"고 했는데 "어제 군고구마가 너무 맛있었다고".활짝 웃었다. 변덕쟁이 텃밭 농부가 또 있구나.

스마트 농업 시대에 농업용 괭이와 호미를 사용하는 텃밭 농부는 쉽지는 않다. 겨울 동안 만든 내 근육의 가장 아름다운 소비를 텃밭에서 하고 있다니, 이게 맞나? 싶지만 그렇다고 더 아름다운 소비를 할 곳도 마땅치 않다. 성경 말씀을 생각하며 또 힘차게 농부의 길을 가려한다. 시편 126편 6절.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동백꽃
ⓒ 이지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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