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현직 교사가 단언한 까닭

서부원 2026. 3. 12. 11:1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장] 현직 교사가 고교학점제를 '반교육적'이라고 단언하는 이유

[서부원 기자]

 23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삼일공업고등학교에서 교직원들이 새 학기 교과서 배부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2026.2.23
ⓒ 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 고교학점제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반교육적'인 제도입니다."

지방의 한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후배 교사의 고교학점제에 대한 예언 같은 한 줄 평이다. 그는 여느 교육 관료나 전문가들처럼 '시기상조'라거나 '과도기'라고 눙치지도 않고, 공교육을 황폐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거라고 단언했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구현하는 건 애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고교학점제는 획일화한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개별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수업을 선택해서 듣도록 한다는 취지의 정책으로, 지난 2020년 마이스터고를 시작으로 2025년 전체 고등학교까지 전면 도입됐다. 아울러 교과별 성취 기준에 따른 학점 이수를 졸업 자격으로 설정함으로써 학교가 개인별 최소 학력을 책임진다는 의미도 있다. 이른바 '개별화 교육'을 통해 공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거다.

후배 교사는 취지야 흠잡을 데 없지만 실제로 학교 현장에 구현하기에는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한 게 없다고 말했다. 당장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교과를 최대한 다양하게 개설하려고 해도 전공한 교사나 외부 강사를 초빙하기가 쉽지 않다. 법적으로 학교별 교사의 수급이 학생 수와 맞물려 있다 보니 더더욱 난감한 상황이다. 지방의 소규모 학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워낙 넓다 보니,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겨를이 없다.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순간을 모면할 '대증요법'만 난무하고, 그로 인한 부작용에 대응하기 위한 또 다른 '대증요법'이 동원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에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일들이 계속되고, 고교학점제도 예외는 아니다.

수험으로 바쁜 학생들에게 여러 학교를 찾아가 수업 들으라니

그 대표적인 사례가, 고교학점제의 시행 과정에서 바늘과 실처럼 따라다니는 '공동 교육과정'이다. 초기엔 진로와 적성에 따른 아이들의 다양한 교과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근 학교들의 교육과정을 묶어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방과 후나 주말 등을 이용해 해당 교과가 개설된 학교로 찾아가 수업을 듣도록 설계됐다.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이었다. 수험 준비에다 여러 교과를 이수해야 하는 고등학생들에겐 그럴 만한 시간이 없다. 다른 학교까지 찾아가 수강할 열정이라면 차라리 독학하겠다는 자조마저 쏟아졌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이수 교과가 중요하다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거라고 고백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들에겐 수업의 '질'보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될 교과목의 '이름'이 중요했다.

초기 정부의 대응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 다른 학교로 이동할 경우, 교통비를 지원하겠다는 등의 말단지엽적인 조처를 대책으로 내놓기도 했다. 그나마 인근에 다양한 교과가 개설된 학교들이 여럿이면 다행이지만, 고등학교가 단 한 곳뿐인 군 단위의 지방에선 언감생심일 뿐이다. 다른 지역을 가려면, 아예 하루를 통째로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작용 또한 속출했다.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마다 학사일정이 다르다 보니 수업 시수를 확보하고 평가를 관리하는 데 엇박자가 나기 일쑤였다. 나아가 출결과 성적 관리에 있어서 수강 학생이 재학 중인 학교에 교과 교사의 접근 권한이 제한되는 등 까다로운 행정 절차상의 문제까지 겹쳐 수업 준비는커녕 뒤치다꺼리하느라 경황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도입된 보완책이 '온라인 수업'이다. 지역 교육청마다 고교학점제 전용 온라인 학교를 설립해 다양한 교과를 개설해 놓고 언제든 접속해 수강할 수 있도록 했다. 과거 코로나로 전국 학교가 문을 닫았을 때 활용되던 그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느새 '공동 교육과정'이라고 쓰고, '온라인 교육과정'이라 읽는 현실이 됐다.

온라인 수업,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을 가속화 했다

"정부든 학교든 고교학점제의 정착을 위해 노력할수록 교육의 '배가 산으로 갈' 가능성이 커요."

그가 고교학점제를 대놓고 '반교육적'이라고 비판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애초 인구 규모가 작은 지방일수록 절대적으로 불리한 제도인 건 맞지만, 딱히 '교육 인프라'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거다. 지방의 태부족한 '교육 인프라'를 보완하기 위한 '대증요법' 같은 정부의 노력 자체가 우리 교육의 본령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공동 교육과정'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수업'은, 그러잖아도 종일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아이들에게 '합법적인 통로'를 열어 준 꼴이 됐다. 최근 스마트폰 사용 제한 문제가 새삼 학교 내의 화두가 되고 있다. 얼마 전 국회에서 관련 법률이 제정되었고, 세계 각국에서 청소년들의 SNS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많은 학교가 등교 후에 걷은 뒤 방과 후에 분출하는 식으로 운영 중이라, 법률 제정 후라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 그러나 '온라인 수업'을 핑계 삼으면, 학교가 막을 방법도 명분도 없다. 기실 '공동 교육과정', 곧 '온라인 수업'은 대면 수업이 어려운 현실에서 스마트폰을 개별적 학습에 적극 활용하라는 정부의 지침이다.

이른바 '학습 완주율'이 낮으리라는 건 불 보듯 환하지만, 어쩌면 그건 사소한 문제일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더욱 악화할 우려가 크다. 수능을 코앞에 둔 고3 수험생에게 인터넷 강의 수강을 위해 일과 중 스마트폰의 활용을 허용했다가 부작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다시 일괄 금지로 돌아선 학교가 전국에 숱하다.

혹자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건 이미 불가능하다며 현실을 인정하자고 말한다. 마치 인공지능의 도입을 막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몽니'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들은 아이들 각자가 일과 중에 스마트폰을 '선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학교 교육의 역할이자 책임이라고 말한다.

말로는 뭘 못하랴. 스마트폰에 관한 한 학교 교육만으로 이미 '고삐 풀린 망아지'가 돼버린 아이들의 습관을 바루는 건 불가능하다. 등교 후 '공기계'를 내고 일과 중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적발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이젠 스마트워치의 허용을 두고 그들과 설왕설래 중이다. 이 와중에 '온라인 교육'은 그들의 주장에 날개를 달아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학생들의 대도시 소재 학교로 연쇄 이동 부추기는 제도

한편, 그는 고교학점제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대증요법'이 우리 사회의 망국병이라는 학벌 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꼬집었다. 고교학점제의 보완책이라는 게 하나같이 수능을 비롯한 기존의 대입 제도와의 정합성을 확보하는 데에 맞춰져 있다. 아이들의 다양한 진로와 적성을 보장하는 건 그다음 문제다.

초중학교에서 진로 탐색 과정이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개별적 과목 선택권은 대입에서의 유불리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학생 개개인의 소질을 계발한다는 본질적 목표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개설 과목 수도 턱없이 적고, 등급을 낼 수 없을 만큼 수강 인원도 적어 종일 스마트폰만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지방의 아이들에겐 다른 선택지조차 없다.

고교학점제조차 지방의 작은 학교에서 큰 학교로, 지방의 학교에서 대도시 소재 학교로, 아이들의 연쇄 이동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이른바 '규모의 경제'라는 논리로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는 천박함마저 엿보인다. 그가 고교학점제를 지방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을 차별하고, 지방의 소멸을 불가항력의 일로 여기게 만드는 '이촌향도의 교육제도'라고 확언하는 이유다.

사족. 고교학점제의 시행으로 학교는 종일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각자 선택한 교과가 다르다 보니 이미 학급 개념은 사라졌다. 1교시부터 하교할 때까지 교과서를 챙겨 이 교실에서 저 교실로 순례하듯 돌아다녀야 한다. 쉬는 시간 10분조차 편히 쉴 수 없는 그들의 분주한 모습을 보며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들에게 교실에서 함께 지내며 쌓이는 우정과 같은 반이라는 소속감과 같은 선택 교과를 공부하며 쌓아가는 지식 중에 뭣이 더 중할까?'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